더크라운 시즌 1 (2016)
[더크라운] (The Crown) 시즌 1은 영국 1950년대를 배경으로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즉위 과정과 재위 초반의 모습을 근접한 거리에서 관찰한다. 영국 왕실이라는 큰 이야기보다 당시 20대 후반/30대 초반을 지나던 여왕이 겪었을 성장통 속 미묘한 감정을 세밀하고 솔직하게 묘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 왕실의 민낯을 들어내는 작업이다. 그 작업이 영국 특유의 화법인지, 변한 사회적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어느덧 재위 기간이 반세기가 넘어버려 역사적 관찰이 가능해진 탓인지 알 수 없다.
[더크라운]의 색감은 어둡고 무겁다. 안팎으로 급변하는 1950년대의 영국 사회가 주는 색감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대영 제국의 해체가 본격화되고 서방 세계의 헤게모니는 미국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사회와 경제의 동력도 도통 보이지 않는다. 4회 [Act of God]의 주제가 된 1952년 런던 스모그에 강타당한 영국 사회와 무기력했던 영국 정부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몸도 가누기 힘든 19세기의 인물들이 아직도 득실 되는 웨스트민스터와 다우닝 10번지의 정치는 시즌 1 내내 오만과 시대착오에 잠식돼있다.
특히 8회 [Assassins]는 노쇠한 제국의 이런 마지막 모습을 영리하게 그려내 인상적이다. 영국 의회가 처칠의 80세 생일을 맞아 화가 Graham Sutherland (그래햄 서덜랜드) 에게 의뢰했던 초상화가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서다. 우여곡절 끝에 공개된 초상화를 보고 처칠은 자신의 초라해져 버린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다며 치욕스러워하고 분노한다. 어렵게 쌓은 Sutherland와의 우정 또한 처칠 특유의 냉소적 언어로 비난당한다. 하지만 이는 처칠의 처절한 자기부정이었을 뿐이다. 자신의 작품에 독설을 쏟아내는 처칠을 향해 젊은 화가 서덜랜드가 일갈한다.
"Age is cruel!... If you are engaged in a fight with something, then it's not with me. It's with your own blindness." (노년은 잔인합니다!... 당신은 저와 싸우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보지 못하는) 눈먼 당신 스스로와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서덜랜드의 대사는 되돌릴 수 없이 쇠퇴하던 대영제국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던 당대의 엘리트들에게 놓는 일침으로 다가온다. Sutherland의 한방에 소파 위로 쓰러져 축 쳐져있던 처칠의 쓸쓸한 모습이 바로 1950년대 영국이었다. 고집으로 가득 차 있는, 영광스러웠던 과거에만 기대어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던 80세 처칠의 노년만큼 대영 제국의 황혼기를 표현할 만한 대상이 있을까. 멋들어진 은유법이었다.
1950년대는 왕가의 세대교체 시기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재위 기간: 1936-1952)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그를 중심으로 구축되어있던 왕실의 안정감이 빠르게 와해되던 와중에 엘리자베스는 즉위를 준비한다. 그러나 시즌 1을 이끄는 엘리자베스의 발목을 잡은 주된 걸림돌들은 대단한 정치 싸움이 아닌 그렇고 그런 우리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여왕의 삼촌인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 세기의 결혼을 감행하며 왕위를 내놓았던) 윈저공은 불편한 언행과 행동으로 왕가 가족들, 여왕과 갈등을 일으키고, 여동생 마가렛 공주는 자매간 경쟁심리를 자극하며, 남편 필립공은 집안의 헤게모니를 잃는 과정에서 점차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다.
화려한 장신구와 연회, 해외 순방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있지만, 겉의 화려함을 들춰놓고 민낯을 보니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얘기였던 것이다. 작은 일 하나에 담겨있는 삶의 딜레마를 어쭙잖게 덤벼들다 종종 제대로 풀지 못하고 마는 과정의 연속. [더크라운] 시즌 1은 어린 여왕 엘리자베스가 겪었을 인간적 딜레마와 실수, 성장 과정을 보여주며 우리들과의 공감대를 만들고자 한다. 마지막 편. 갈팡지팡하던 엘리자베스 2세가 마침내 마가렛 공주, 필립 공과의 마찰을 뒤에 두고 언니와 아내가 아닌 감정없는 위엄서린 영국 여왕의 눈빛으로 카메라를 노려보면서 마무리된다. 그것은 그 성장 과정의 종결이었을까, 아니면 새로운 굴레의 시작이었을까. [더크라운]은 그렇게 물음표를 던지며 시즌 2를 예고한다. 아직 노쇠하지 않은 영국 문화가 엿보인 세련된 피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