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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츠이너프 Apr 04. 2021

미니멀리스트가 선물 고르는 기준

'선물'이 '애물'단지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나는 선물 주는 것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다.


종종 선물을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써, 선물을 준비해주신 그 마음과 정성에는 가슴 깊이 감사드리지만 (정말이다), 내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선물들이 꽤나 높은 비율로 들어오게 된다. 일례로, 나와 딱 맞는 텀블러 하나를 찾는데 3개월이 넘게 걸리는 미니멀리스트인 나에게 내 취향이 아닌 콜드컵 텀블러를 보내주시기도 하고, 아주 미니멀하고 자연스러운 무드의 주방용품을 좋아하는 나에게 강렬한 빨간 주방용품을 선물 받은 적도 있다.


받는 당사자에게 취향에 맞지 않는 선물은 골칫거리다. 특히 미니멀리스트라면 더더욱.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면 비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고 나와 맞지 않는 물건들을 비우기 시작할 때 가장 어려웠던 물건들이 바로 선물로 받은 물건이었다. 과장된 표현인 것 같지만, 정말로 '죄의식'이 느껴졌다.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성과 마음을 외면해버리는 느낌이랄까. 많은 책과 컨텐츠를 보면서 물건과 마음을 동일시하지 말고 마음만 정말 감사히 받는 방법을 많이 체득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꽁꽁 싸매고 버리지 못하는 선물이 몇 가지 있긴 하다. (주로 시어머니의 정성... 비싼 브랜드 식기들과 모피코트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받는 사람에게 꼭 맞는 선물을 하지 못할 바에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고, 정말 꼭 성의를 표해야 할 때를 말고는 딱히 선물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말 만으로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인간관계가 좁고 밀도 있게 변하면서, 내 애정의 총량이 적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다 보니 그들에게 무언가를 더 퍼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요즘에는 축하할 일이나 위로할 일, 응원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선물을 주고 있다.

단, 내 선물이 그들의 서랍장에 처 박혀 2년 후 이사를 갈 때 발견되며,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미니멀라이프 지향자로써 아주 자존심 상하는 선물 셀렉이다. 그래서, 몇 가지의 기준을 두고 선물을 고른다. 꼭 받는 상대가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이 기준으로 선물을 전달했을 때 대부분의 친구들이 크게 기뻐하며 잘 소비해주었다.


1. 취향을 많이 타지 않는 실용성 있는 소모품을 고른다

나는 데코레이션 용품이나 굿즈 같은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이쁘기만 한(?) 선물은 잘 하지 않는다. 오브제나 인형, 액자 같은 선물이 그 예다. 취향을 아주 많이 타는 제품일뿐더러, 사용한다고 없어지는 제품이 아니다 보니 받는 사람의 스타일이 아닐 경우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대신 취향을 크게 타지 않는 소모품을 고른다. 커피나 외식 기프티콘이 있긴 하지만 뭔가 상품권을 주는 느낌이라 가벼운 선물을 줄 때만 쓴다.


2. 그중에서도 내 돈 주고 사기 아까운 것들을 고른다

매일 쓰는 소모품에 큰돈을 들이는 건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진다. 한번 써보고는 싶지만 그 물건을 그 돈 주고 사기는 좀 아까운 그런 것들. 선물로 제일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 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사던 핸드크림과 아주 동일한 브랜드의 핸드크림을 생일선물로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취향도 저격이고 꼭 필요한 물건이라 안성맞춤이긴 하지만, 선물로 받았을 때의 의외성과 기쁨은 다소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내 돈 주고는 잘 사지 않을 법한 워너비 브랜드의 생활 소모품을 주로 선물로 구매한다. 필요한 아이템이지만 선뜻 지갑이 열리지는 않는, 약간의 사치성이 곁들여진 그런 물건들.


3. 잘 모르면 누구나 다 쓰는 아이템을 선택하기.

얼마 전 임신을 한 친구에게 축하 선물을 사 줄까 싶어서 백화점 아동 매장에 갔다. 나는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없으니 친구들이 출산선물이 늘 가장 고민이었다. 결국에는 대충 가격대에 맞춰 나도 들어본 유명한 아기 브랜드의 우주복을 구매하면, 점원이 '어차피 전국 매장에서 다 교환돼서 엄마들이 다 교환하러 오세요~ 너무 신경 쓰시지 않아도 돼요!'라고 이야기해준다. 뭐... 그게 실용적이긴 하지만, 받는 순간 고마움과는 별개로 전혀 원하는 제품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작은 돈을 내는 게 아닌데 괜스레 마음이 허해지는 경험을 몇 번 했었다. 별 수 없이 이번에도 그렇게 대충 무난 아기 템을 골라야 하나 하고 매장을 도는데... 받았을 때 기뻐할 만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아기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나는 아이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 대신 친구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결국 1층 이솝 매장으로 내려가 친구와 형부를 위한 바디 제품을 골랐다.


그래서 뭘 주는데?

내가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던 제품, 좋았을 때 반응이 좋았던 제품을 써보자면

코스메틱 브랜드 이솝(Aesop)의 바디워시, 핸드워시, 룸 스프레이

흔치 않은 브랜드들의 디퓨저나 캔들. 호불호가 크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풀숲향을 주로 선택

(주로 편집샵에서 알게 된 브랜드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선물한다. 나의 경우 호주 브랜드 Plain&Simple이나 국내 브랜드인 chomaroo 제품을 좋아한다)

조금 더 가볍게 선물할 때에는 약속 장소 근처 맛집의 디저트들, 백화점 식품관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패키지가 이쁜 스낵이나 드링크 정도.

아, 그리고 작은 꽃다발. 내 돈 주고 사기 아깝지만 받으면 기분이 아주 좋고 취향에 조금 맞지 않아도 죄책감없이 며칠 후 처분이 가능하다.


이왕 마음을 담아 선물해 준다면, '선물'이 '애물'단지 되지 않도록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 상대가 기쁜 마음으로 받아 아낌없이 잘 쓸 수 있도록, 버리지는 못하면서 죄의식(!)을 갖지 않는 선물을 픽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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