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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츠이너프 Feb 19. 2021

나에게 맞는 수면 온도는 따로 있었다.

미니멀리스트의 전기장판 비우기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가, 나는 원래 추위를 많이 타는 성격은 아니었다.

중학교 졸업식인 2월 한파에 스타킹을 안신고 교복 치마만 입고 나가서 엄마를 기함하게 만들기도 하고, 정장만 입는 회사에 다니며 얇은 코트를 입고 또각구두를 신고 다녀도 꽤 버틸만 하다고 으쓱하는 나였다.

겨혼 후에도 보일러를 계속 돌리는 일이 없었고 늘 코가 살짝 시려워야 프레시한 기분이었다. 한파에도 꼭 환기는 해야 하는 사람...


그런 내가 이상하게도 아무 생각 없이 겨울만 되면 세팅하던 기기가 있었으니, 바로 전기장판. 결혼 후 첫 겨울 전, 시어머니가 보이로 전기장판을 주셔서 아무 생각 없이 깔아두던게 시작이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추위를 꽤나 타는 편이기도 하고, 겨울에 코가 시려울 때 극세사 이불 아래 깔린 전기장판 속으로 쏙 들어가면 처음에 느끼는 그 포근함이 꽤 중독적이긴 했다.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에 틀어두고 그 따스함에 만족감을 느끼긴 했지만, 늘 내 쪽 온도를 가장 저온에 맞춰두고 잠들었고, 그 마저도 절반정도는 새벽에 깨서 끄는 일이 다반사였다. 너무 답답해서...


작년에 이사를 오면서 많은 물건들을 비웠는데 그 때 먼저 극세사 이불을 비웠다. 보온성이 극강으로 중요하지는 않았던 나, 그리고 장판 정도면 충분히 따뜻하다는 남편에게 두꺼운 이불의 무게감과 답답함은 쓸모가 없었다. 이사 오기 전 마지막 겨울, 극세사 이불을 세탁 맡기고 장판과 봄가을용 차렵이불로만 살아봤는데 추위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몸소 체험하고 미련 없이 비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사온 후 맞이하는 올 겨울, 생각 없이 전기장판 2개를 꺼내다가 (우리집은 싱글매트리스 두개를 각각 사용한다) 사실 나는 장판도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문들 들어, 춥다고 느끼는 순간까지 장판을 세팅해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 영하 17도를 넘나드는 극강의 한파 이후, 나는 미련없이 장판을 비우기로 결정했다




두 벌의 홈웨어가 딱 맞는 체온을 만들어 주었다.


귀가를 해서 집에 들어와 외투를 벗으면 우리집은 항상 살짝 쌀랑-하다. 평균 17도 정도인 것 같다. 굳이 온도를 높이려 하지 않고, 일단 '곰돌이 홈웨어 세트'(이름 내가 지음...)로 옷을 갈아입는다.


남편이 3개에 2만원인가를 주고 2년전에 산 수면잠옷. 겨울잠옷으로 쓰라고 줬는데, 극세사 이불에 수면잠옷까지 입으려니 숨이 막혀서 한동안 비울까 엄청 고민했던 녀석이다. 무조건 적인 비움이 꼭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게, 지금 이 녀석이 전기장판을 비우고 보일러 돌리는걸 미니멀라이징 시켜준 녀석이니!

수면 잠옷이지만 수면용으로는 쓰지 않고, 샤워하기 바로 전까지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홈웨어로 입고 있다. 위아래로 입고 있으면 썰렁하다는 느낌이 금새 사라져 보일러 다이얼을 돌리고 싶다든지, 전기장판이 생각난다든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샤워를 하고 나서는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입는 플란넬 잠옷으로 갈아입어준다. (너무 생활감이 있는 주름샷... 이해해주세요) 나는 꽤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나면 체온이 꽤 올라간다. 그 때문에 보일러를 아예 꺼버리지 않는 이상, 샤워 후에 수면잠옷을 입으면 굉장히 덥고 답답하다. 때문에 이 적당한 두께의 플란넬 잠옷을 입고 봄가을용 차렵이불이 깔려 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면 (전기 장판이 있었을 떄의 후끈함은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점차 내 체온으로 나에게 딱 맞는 숙면온도가 설정이 된다.


올 겨울을 지내본 결과, 한파.. 그러니까 -15도 이하가 되면 실내온도를 18도로 맞춰놓더라도 이 플란넬 잠옷이 살짝 춥긴 했다. 그 때 새벽에 일어나서 곰돌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한파에는 이녀석이 답답하지 않더라. 그 이 후 영하 10도 이하인 날에는 곰돌이 홈웨어를 잠옷으로 장착해준다.




모두가 갖고 있다고 꼭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겨울이 되면 으레 의식처럼 극세사 이불과 전기장판을 꺼내고 있었지만, 사실 내 온도에는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녀석들임을 깨달았고, 한파를 보내고 나서 확신을 갖고 전기장판을 비울 수 있었다. (마침 전기장판이 필요해 사려고 했던 동생의 자취방에 갖다 주었다)

 

모두에게 맞는 실내온도가 있는데,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세팅해주신 그 온도에 익숙해져 버려 그만큼 보일러를 더 돌리고 전기장판 온도를 높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실제 결혼 후 독립을 하고 나서 해를 거듭할 수록 실내온도를 낮춰갔고, 그 온도가 생활감에 있어 더 활력을 주었다. 무조건 뜨듯한 것만이 안락함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태하고 루즈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성향이 아니고, 집에 아이도 없어서 조금 춥게 생활할 수 있다. 보일러 평균온도를 낮추고 전기장판을 비운것도 단계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무조건적인 비움은 결국 재소비라는 낭비를 초래하니 조금씩 조금씩 실천해보기를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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