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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이 Mar 28. 2018

87.5

특별할 것 없이 지나온 나의 보통의 날들

내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불행하게도(?) 지나온 내 삶은 "87.5"의 삶이었전 것 같다. 백분율로 표현했을 때의 87.5. 학점으로 치면 4.5점 만점에 3.8점 정도 되려나. 등급으로 치면 B+ 정도. 뭔가 대단히 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못하는 것은 아닌 아주 보통의 인생, 87.5의 삶. 이 다채롭고도 예상 불가능한 삶을 한 단어 또는 문장으로 표현-또는 규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여전히 내 삶은 진행 중이고 지나온 삶보다 앞으로의 삶이 더 창창할-그러하길 믿지만-것을 알기에 자칫 이런 표현이 나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때로는 이 87.5라는 숫자가 마치 내 인생의 불변의 법칙으로 작용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중학생 시절, 본격적인 대한민국 입시경쟁에 뛰어들 때 내 성적은 대충 이러했다. 약 40명 못 비치는 한 클래스에서 대략 7-9등 정도. 약 300명 조금 넘는 전교생 중에서는 대략 30-40등 내외 정도. 이 정도 성적이면 나름 우수한 성적이면서도 소위 사회에서 인정하는 엘리트 등으로의 진출을 위한 첫째 관문인 외고, 과학고 등의 특수목적고등학교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등에 들어가기에는 어려운 성적이다.

그래서 나는 그럭저럭 조금 한다(?)하는 평판으로 인문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전교에서 10-15등 안에 드는 친구들, 그러니까 한 클래스에서 최소한 5등 안에 드는 친구들이 특수한 목적의 학교로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보통의 인문고등학교에서는 조금 더 높은 성적권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나는 고등학교에서도 중학교 시절과 같은 성적권에 위치했다. 여전히 한 반에서 7-8등 정도. 전교에서 30-40등 정도 위치한 그럭저럭 착하고 나름 성실한 보통의 학생으로 말이다.

대학도 결국 그렇게 맞춰서 갔다. 그때 당시에는 내 실력보다 조금 더 나은 대학에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낙방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따지고 보면 내 수준에 맞는 대학에 간 것 같다. 대학에서의 성적도 87.5의 법칙을 그대로 이어갔다. 어쩌다 마음에 쏙 드는, 아주 흥미로운 강의에서는 A+를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며, 가끔 장학금도 받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성적을 갉아먹는 C+ 등의 수업이 있었다. 결국 최종 성적도 대략 4.5 만점에 3.8 정도 B+의 성적을 받고 졸업했다. 장교 임관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장교 후보생도 아니었고, 그렇게 덜떨어지지도 않은-체력은 조금 떨어졌다고 부끄럽지만 고백한다-그런 후보생이었다. 결국 우수하지 않지만, 그리 모자라지도 않은 보통의 장교로 임관했다.

87.5의 삶은 어떤 삶 일까? 뭔가 못하는 것은 아닌데,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애매모호한 고착 상태.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나름 잘 하는데, 뭔가 조금 하나가 아쉬워요." 내가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나는 그러한 87.5 정도의 사람이다. 어쩌면 자만일 수 있겠다. 아주 아주 잘 쳐주고 잘 쳐줘서 87.5 정도의 사람이라고 하자.

아마도 87.5 이상의 삶을 살기 위한 노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더라도 나름의 노력과 열정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뽐내 듯이 이야기할 만한 피나는 노력에 의해 달성한 것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으니까. 내 삶의 자세는 '뭐 이만하면 됐지'라는 문장으로 표현할 만큼 낙관주의적이다 못해 관대한 게으름으로 행해진 것이 사실이다. 네가 그 정도밖에 못했으니 87.5의 삶인 것을 그 누구를 탓하냐고 물으신다면 전적으로 동의함과 동시에 누군가를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내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인생을 어찌 성적에 비교해서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당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한다면 87.5로 정의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이 87.5 같은 삶의 근거를 앞서 성적과 같은 수치로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결국 그것은 내 삶이 참 보통의 삶이라는 것, 그리고 평범하다 못해 애매모호한 보통의 삶을 지내온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하게 87.5의 삶을 산 보통의 사람들이 참 많다. 다들 나와 비슷한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못나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 그럭저럭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살아가면서도 자랑할 것 없는 사람들. 그래서 역시나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또다시 조금의 노오력과 성실한 엉덩이 힘뿐인 사람들. 우리는 그런 보통의 사람인 것 같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보통의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를 노력해야겠다. 특별한 special one이 아닌 normal one. 그래서 보통의 존재로 여겨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그 행복함을 누리며 겸손하게 살아보자.


보통의 사람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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