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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Aug 29. 2019

로마 안녕, 내 여행도 안녕.






2017년 6월 29일에 시작하여 8월 8일에 끝난 내 여행은 글자 그대로 끝난지 한참이다. 이제 막 2년을 지났고, 지금껏 그래왔듯 눈 깜짝할새 세월은 흘러 여행이 끝난지 10년, 20년 후도 곧 다가올 것 같다. 2년 이라는 시간보다 훨씬 짧은 41일이지만, 지난 2년의 다른 모든 날보다 가장 선명하다. 10년이 흘러도 이럴까. 그렇다면 조금 슬플 것 같다. 소중했던 첫 여행이니만큼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지만, 그 추억들만이 앞으로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찬란한 기억들이 된다면 씁쓸한 일 일테니 말이다.

 

글 쓰는 것을 엄청나게 미뤄온 탓에 아직 마지막 여행지인 로마에 대한 글이 남아있다. 아마 난 오랫동안 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글을 끝내는 순간 진짜로 내 여행이 끝나는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을 외면해 왔다. 이대로 끝맺지 않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여행이 끝난 후 지난 2년 동안은 조금 힘들었다. 여행자에서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을때, 나를 기다리는건 예전의 내 모습 뿐만이 아니었다. 앞이 안보여서 막막하고, 내 자신이 가끔은 한심하고 쓸모없서 참을 수 없는 그런 낯선 역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여행에 대한 추억을 꺼내어 글을 썼다. 그럴때면 그때로 잠시나마 돌아간 느낌에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에 다달았다. 이제는 이 여행을 보내주고, 앞으로의 내 삶을 여행하듯 살아가고 싶다. 아침에 눈뜨면 오늘에 행복해하고, 작은것 하나하나에 감동받고, 누군가의 일상을 나의 특별함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나의 일상을 특별하게 느껴보고 싶어서, 그 강렬했던 여름날의 여행 이야기를 두번의 여름을 보낸 지금 끝맺으려 한다.







그 당시 나에게 로마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큰 곳이었다. 이미 살인적인 더위를 베니스와 피렌체를 통해 경험한 탓에 더 밑에 있는 로마의 더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소매치기나 강도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였다. 기차를 내려서 숙소를 찾아가는 동안 캐리어와 핸드폰을 든 양쪽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더위에 흘러내리는 땀과 긴장속에서 피어난 식은땀이 뒤섞였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는 너무 작고 열악했다. 7-8명이 자는 곳에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 한 대만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도저히 잘 수 없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지금 다시 어디서 숙소를 구해야할지 막막했다. 축 처지는 더위에 찾을 힘 조차 없었다. 그때 나와 여행일정이 비슷하게 겹쳐 자주 보았던 동행으로부터 자기가 지내는 곳의 숙소는 에어컨이 있으며 한 자리가 남아있다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바로 숙소의 주인에게 여기에서 지낼 수 없을것 같다고 통보했다. 날 둘러싼 주인 가족들 앞에서 인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돈 얘기를 꺼내는 것이 무척 불편하긴 했지만, 지금 이 더위만큼 불편하진 않았다. 다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돈을 돌려받고 그 곳을 떠났다.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곳을 얼른 떠나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로마에서의 첫날은 숙소를 옮기는 것만으로 끝났다. 한국음식을 먹고 개운하게 씻은 뒤 침대에 누우니 하루종일 짐보다 무겁게 날 누르고 있던 긴장이 확 풀렸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한국어 소리가 그렇게 반가웠다. 다들 로마에서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각자 본것은 달랐지만 느낀 것은 같았다. ’너무 더웠다. 너무 긴장하며 다니느라 피곤하다.’나의 로마에서의 첫 하루도 그랬다.


 아무리 아릅답고 누구나 가고싶은 곳일지라도, 가장 기본적인 편함이 있지 않으면, 불편함이 어떤 추억보다 선명하게 남는다. 날씨도 소매치기도 로마의 탓이 아니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통제가 가능한 부분은 나의 감정과 여유뿐이다. 예측불가한 날씨와 그 곳 상황이 나를 어떻게 괴롭힐지 모르니 내 마음만이라도 언제나 쉽게 여유로움을 되찾을 있도록 해야한다. 상공 최대 13km와 약 9,013km의 거리라면 걱정과 근심 미련 등은 충분히 두고올 수 있는 높이와 거리라고 생각한다.  







바티칸 투어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침 일찍 도착해도 줄이 길게 늘어진 곳을 단체입장이라는 이유로 비교적 빠르게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도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 곳에서 새삼 미켈란젤로가 얼마나 천재인지 깨달을 수 있는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설명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면 할말을 잃는다. 이게 정말 나와 같은 사람이 가진 손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말인가. 이런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는 분류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천장을 바라보며, 피에타를 바라보며 감탄섞인 신음을 뱉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또 금방 누군가로 채워질 것이다. 언제나 그대로인 이 곳에서 대부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감탄을 토해내며 발걸음을 옮길것이다. 이 작품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곳에 남겨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고 또 가슴에 남게 될까.


내가 느낀 감정은 너무도 개인적인 것이고, 너무도 쉽게 잊혀질수 있는 것이고, 감정을 소유한 나도 그 자리에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또 다른 이로 쉽게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 새롭게 서있게 될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오래오래 남겨진 아름다운 작품의 존재이유는 아닐까. 이것을 통해 너무도 유약하고 너무도 짧게 머물다가는 우리들이 무엇보다 단단하고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작품을 남긴이가 살짝 부럽기도 했다. 대부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머물다가는 사람들중 이렇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같은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난 아마도 전자 같아, 눈을 감아도 선명한 그 흔적이 부러웠다.







어제 살짝 로마를 돌아보며, 바로 다음날 버스투어를 신청했다. 도저히 걸어서 다닐 기온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버스 타는 곳으로 모여 여러 목적지를 다녔다. 이런 투어는 알다시피 자유여행에 비해 제약이 많다. 특히 시간이 그렇다. 하지만 사진 찍으라고 준 얼마 안되는 투어의 자유시간 조차 고역일 정도로 매우 더웠다. 셔터를 몇번 누른뒤 카메라를 내려놓고 얼마없는 그늘을 찾아 옹기종기 모이며 버스를 기다리기 일쑤였다.


분명 로마의 유적은, 생에 한번쯤은 꼭봐야할 찬란한 것이겠지만 지금 바로 위 하늘에 떠있는 태양만큼 찬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겐 햇살만큼 뜨겁고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또 물었다. ‘그래서 버스는 어디쯤인가요?’



역시 현재가 가장 중요했다. 과거의 것의 존재이유도 현재의 내가 지금 그것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에 따라 달라지는게 아닐까. 과거의 것이 현재에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에 달려있지는 않을까 하는, 살짝 건방진 생각도 해봤다. 더위를 배부르게 먹고, 탈수 증세 비슷한것을 느끼는 지금의 나에겐 과거의 유적보단 에어컨이라는 현대과학이 가장 감동적이게 다가왔다. ‘살 것 같다’ 버스의 에어컨 바람 아래서 중얼거렸다.


로마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소를 바쁘게 다녔다. 그 곳들의 이름조차 희미하지만, 그곳에서 맞았던 뜨거운 바람과 끈적이는 땀은 이렇게 비슷한 여름을 맞을때면 문득문득 생각나곤 한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기억에 남는 곳은 투어 막바지에 있던 성바울 참수터와 로마수도교였다. 투어의 막바지다보니 해가 많이 저문터라, 더 좋게 느껴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은 내리쬐는 햇빛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 마음도 제대로 열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기 어려웠다. 짜증과 피곤함이 자주 내가 서 있는 곳들을 침범했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오후 느지막히였다.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있든 변치않은 고요함을 품은 곳이었다. 참수터로 향하던 그 길을 걸어보아도 성바울의 심정은 감히 헤아릴수 없다. 난 여행자로 여기 서있고, 무성하게 드리워진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시원하고, 그 사이로 비추는 저물어가는 햇빛이 반가워하며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길은 그저 길이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 길을 걷는이가 누구인지에 따라 참수터도 여행길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간극의 차이가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마지막 도착지였던 로마 수도교는 넓직하게 자리한 초원에 기다란 나무들이 길을 내고 있는, 가슴 뻥 뚫리게 넓은 곳이었다. 그 사이로 바라보는 하늘과 땅이 아름다웠다. 사람들도 소란스러움도 긴장감도 없는 곳에서, 그저 하늘과 이곳저곳 부서진 오래된 수도교가 있는 이 넓은 길 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큰 수도교가 주는 웅장함 때문일수도, 마지막 푸른빛을 내는 그날의 하늘 때문일수도, 마지막이라는 의미 때문일수도 있는 아름다움이 이곳저곳 뿌려져있었다.






남부투어를 위해 어제보다 더 일찍 눈을 떠야했다. 적응할 수 없는 이곳의 더위를 떠나 더 남쪽으로, 더 더운곳으로 향해 가야한다니.. 등골에서 식은땀이, 아니 땀이 났다.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포지타노였다. 더위에 지친 와중에도 미처 흘러버릴 수 없는 풍경을 보여준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난간에 걸터 앉아 입꼬리를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땀이 흐르는 것보다 사진이 잘나왔는지, 이 곳 풍경이 잘 담겼는지 신경쓰이는 곳이었다.



카메라에 푸르게 담긴 바다를 더 가까이서 보기위해 천천히 내려갔다. 땀샘이라는 곳이 여기에도 있어나 싶을 정도로 모든 곳에서 땀이 났다. 땀과 함께 굽이진 골목을 돌아 내려갔다.


어려서 유독 예뻐보이는 단어들이 있었다. 체리나 스트로베리 처럼 과일들을 지칭하는 영어단어였다. 그래서 아이디나 닉네임같은 것을 만들때면 어떻게든 이 단어들을 넣으려 애썼다. 레몬도 그 중 하나였다. 레몬이라는 어감이, 글자 자체에서 느껴지는 상큼함이 너무도 예뻤다. 작고 아기자기한 이 곳에 레몬은 무척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반짝이는 햇빛을 머금은 푸른 바다와 골목을 따라 줄지어선 작은 집과 상점들 그리고 초록잎들 사이에서 햇빛보다 선명하게 노란빛을 내는 레몬을 아름답게 품은 곳이었다.


레몬샤베트를 한 입 크게 들이마셨다. 온몸을 짜릿하게하는 상큼함에 두 눈을 감았다 떴다. 이 곳의 멋도 이 맛과 비슷했다. 뜨거운 햇살이 두 눈을 찡그리게 했지만, 다시 뜨면 전율이 흐를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섬을 떠나는 배 안에서 멀어지는 포지타노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행이 끝나갔다. 멀어지는 건 포지타노의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로마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불꺼진 버스 안과 해가진 바깥엔 모두 똑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 허허벌판의 도로 위에서 이 곳이 로마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기위해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직 비행기가 아닌 버스에 있다는 것만이, 이곳이 로마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벌써 여행이 끝난 것 같았다. 아니, 끝났다.









다음날 저녁 9시 비행기임에도 나는 오전 11시 체크아웃 시간에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왔다. 더운 여름날에 땀을 흘리며 돌아다니다 공항으로 와서 씻지도 못한채 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타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매우 지쳐있기도 했다. 떠날 날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곳에 머물고 싶었다. 한국이 그리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여행이, 낯선곳이, 오랫동안 머물필요가 없는 곳이, 곧 떠날곳이 그리워졌다.



꼭 다시 떠나오자고 이번 여행은 고작 시작에 불과한 그런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까맣게 탔던 피부가 돌아오고, 사진들도 한참을 올라가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다짐도 흐려졌다.


나는 다시 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여행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꼭 다시 가고싶다는 것. 그리고 그 전보단 떠나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 언제든 여행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행에서 가져온 건 바래더라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기억들과 이 마음 뿐이었다.




투어끝나고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본 석양처럼 내 여행도 곧 저물어 언제 있었냐는듯 사라지겠지만,
어느때보다 뜨겁고 길고 특별했던 올해의 여름은 그을린 팔처럼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아있길.
유럽 안녕.  
201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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