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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Apr 04. 2019

피렌체를 갔다.

피렌체를 갔나,



이탈리아에서 가장 기대되는 도시는 피렌체였다.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미술가와 조각가,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던 도시는 그 자체로 예술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게 피렌체는 연일 40도를 넘는 뜨거운 도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피렌체의 뜨거움을 처음 느낀것은 막 역사를 벗어날때 쯤이었다. 역 바로 앞에있는 트램 정류장을 가기 위해 큰 캐리어를 이끌고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앞에 서서 으레 그렇듯 크게 숨을 한 번 내쉰 뒤 왼손으로 캐리어를 붙잡았다. 캐리어를 내 몸에 기대게 하고 오른손으로 난간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두 손을 화들짝 떼고 말았다. 긴 여행으로 둥굴게 부풀어 오를때로 오른 캐리어가 나뒹굴며 떨어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난간으로 덴 것 같이 욱씬거리는 손을 살펴볼 틈도 없이 캐리어를 쫓아 계단을 급하게 내려갔다. 간신히 캐리어를 붙잡고 나서야 실감을 했다.


나는 피렌체에 도착했다. 아무생각 없이 붙잡은 난간이 엄청난 열기를 지니고 있고, 뜨거운 더위와 강렬한 햇빛 빼고는 모든 것을 빼앗길수도 있는 이 곳에 도착했다.


숙소는 트램을 타고 내려서도 꽤 걸어야했다. 그 큰 캐리어를 몰고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야 했다. 그래서 정말 숙소가 그때 당시 느꼈던 만큼 매우 멀었는지 아니면 그렇게 느껴졌던건지 확신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의 여행은 모두 이랬다. 모든 거리가 생각보다 멀고, 모든 곳이 생각보다 좋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탓도 이탈리아의 탓도 아닌 사람의 한계를 시험하는 뜨거운 더위 탓이었다.




활기차거나 즐겁게 돌아다니지는 못하더라도 아침이면 심호흡을 하고 문밖을 나섰다. 때론 더위를 먹어 어지러움을 느끼고 한참을 거리에 앉아야 했지만, 그래도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던 피렌체의 풍경이었다. 두번이나 올랐는데, 아마도 그때가 해가 점차 꺾이고 이따금씩 바람도 불어와서 어느때보다 마음이 차분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의 여행에선 부지런히 걸어왔다. 누가 시킨것도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시킨것도 아니었다. 그때 그 시간의 나는 이것도 저것도 보고 싶었고 저기도 가고 싶었고 앞에 있는 길을 따라 걷고 싶었고 때론 길을 잃다가 찾고도 싶었다. 생각보단 발이 먼저 나가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이만큼 걸어왔고, 이만큼의 추억들이 생겼다. 그래서 걸은만큼 추억의 양도, 모습도 다양해진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힘든것은 희석되고 좋은 추억만 반짝이며 남는다. 그래서 후회가 남는다면 대부분 더 돌아다니고 더 많이 볼 걸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때론 가고싶은 충동을 억누르고서라도,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것도 필요했다. 굳이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스스로 다른 모습을 띄는 것들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피렌체를 그저 내려다보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처럼, 좀 더디고 단조로운 여행을 했다면 그 곳에서 더 좋은 기억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해온대로 그 땡볕 아래서도 걷는 것을 멈추지 않다보니,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건 점점 길어지다 다시 짧아지는 내 그림자 뿐이었다. 때론 쉬다가 멈추다가 결국은 돌아서게 되더라도 괜찮다는 것을 몰랐었다.


돌아오고나서 한참 뒤,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피렌체를 방문했다. 해를 피해 급하게 지나쳐왔던 모든 것들을 천천히 잡아주는 카메라를 보며, 한 발자국 움직일때마다 나오는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내가 본 피렌체는 정말 일부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본 것은 사람을 지치게하는 더위가 내려앉은 8월 어느날의 피렌체였다. 피렌체를 거닐고, 머무르고, 아침과 밤을 보았지만, 피렌체를 보고 느꼈다고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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