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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Feb 15. 2020

끝에서 한 번 더를 외치는 용기






작년 겨울의 시작쯤에 요가와 필라테스를 시작했었다. 나름 각오하고 시작했지만 나의 뻣뻣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자유롭게 시간에 맞는 클래스를 듣는 방식이었는데, 어느 클래스를 들어도 나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 몸은 매번 남들과는 조금씩 다른 동작을 취하며 눈에 띄곤 했다.


겨우 몇 개의 동작에도 식은땀인지 모를 땀들이 흘러내렸다. 2n년동안 앉고 서고 눕는 이 3가지의 움직임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쌓아온 뻣뻣함과 굳은 몸은 쉽게 풀릴만한 것이 아니었다. 먼지 쌓인 기계에서 나올 법한 삐걱 혹은 쿨럭 같은 소리가 내 몸에서 흘러나왔다.


요가 선생님이 세는 10초는 세상 어느 10초보다 길었지만, 특히 나에게는 더 길었다. 한 공간에 있던 어떤 사람들보다 괴로웠기에 나의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러갔다. 딱 열 번만 더 할게요.라는 말처럼 무시무시한 말은 없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나의 몸에게 말을 건다. 일종의 협상 같은 것이다. 후들거리는 다리에게, 거친 숨을 내 쉬는 입과 코에게, 당기는 근육에 헉 소리가 날만큼 고통을 느끼는 배에게, 딱 이 열 번만 한 번 해보자고, 참아내자고. 이 정도에 무너지지 말자고. 대신 이 열 번 뒤에 꿀맛 같은 휴식을 보장해주겠노라고. 긴박했던 협상은 체결되고,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를 속으로 세며 동작을 따라 했다.


숫자 끝에 다달아서 마지막 한 번이라는 간절한 외침으로 다리를 힘겹게 올렸다. 이제 남은 건 내려놓는 것뿐이라고, ’ 열!’이라는 외침과 함께 협상에 적힌 휴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런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 열 번 더!라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많았다. 내 몸은 이미 모든 동작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간 상태였다. 협정에 적힌 것을 지키라는 듯 팔다리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 없다. 남은 모든 에너지를 끌어올려 상정한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그런 힘 빠진 기분. 다시 몸을 일으킬 힘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움직이세요’라는 나를 겨냥한 말에도 힘이 빠진 팔다리는 허공에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열 번이 아닌 스무 번이라고 생각했더라면, 내가 상정한 목표가 스무 번 이었다면, 난 분명 그 스무 번이라는 목표를 향해 어떻게든 몸을 움직였을 테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를 곧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공부를 좋아서 한 적은 없었다. 채워지는 빨간색 동그라미가 좋았을 뿐이다. 동그라미가 많을수록 내 삶도 동그라미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좋았다. 높은 점수는 높은 자신감, 엄마의 기분 좋은 하이톤 목소리, 높은 만족감으로 연결되었고 그런 부수적인 부분이 좋아하지 않던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대학만 가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거짓말을 믿었다.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래도 믿었다. 끝없는 공부량과 쏟아지는 시험이라는 그 그 힘든 순간들을 견뎌내기 위해선, 해방이라는 꿈, 즉 ‘끝’이 필요했다. 대학 진학은 그 끝의 기준으로 삼기에 충분해 보였다. 끝을 바라보며, 천천히 줄어드는 숫자를 세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했고, 나는 그 끝 이후에 올 것이라 생각한 보상을 얻으려 했다. 적어도 매일 아침 공부 계획을 적고 공부계획에만 맞춰 움직이던 날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할당량이 없는 나날을 보내길 원했다. 그래서 끝없는 휴식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나날을, 여행이라는 유람을 가지며 하릴없이 뻗어있었다.


그 이후에는 답도 범위도 없는 취준 생활을 했다. 정해진 범위도, 답도 없는 시험 앞에서 무얼 해야 할까 생각하다 보면 끝도 없이 범위는 커졌다. 그래서 이 정도면- 하는 기준을 세웠다. 일주일 동안 해야 할 기준을 세웠고 그 기준에 맞춰 움직였다. 기준을 세운다는 게 그만큼만 해도 충분하다고 합리화하는 한계를 세운 것인지도 모른 체 말이다


내 재능은 분명 싹수가 있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크지 않더라도. 남들보다 크지 않으니 더 큰 노력이 필요했지만 난 그 싹수가 말라버리지 않을 정도로만 노력했다. 더 깊게 뿌리내리고 더 높이 성장할 뒷받침이 되어주지 못했다. 미완성하지 않을 만큼의 완성만 해나갔다. 결국 한 뼘도 자라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한 번만 더라는 외침에 이미 내가 정해놓은 기준 밖이라며 손을 놓아버린 요가 시간의 나처럼,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넘어서면 손을 탁 놓았다. 거기서 ‘조금만 더’를 참지 못했다. 내 기준이 높은지 낮은지 따져보지도 않고 그 안에서만 노력했다. 그리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충분한 노력이 아니었다.







내가 정한 기준보다 하나 더를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여기까지 읽기로 한 책이라면 그 뒤에 한 장을 더 읽고 덮었다. 쓰기로 생각한 분량보다 한 자라도 더 쓰려고 노력했다. 한 번만 더라는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하는척하며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 어딘가 남아있을 일으킬 힘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연습 중이다. 나에게 지금 한 번만 더 해보자라는 소리가 너무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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