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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Jun 21. 2020

달래 향 가득한 외할머니 집



충남 서산시 음암면, 옆집이라기엔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단층의 집들, 그 사이사이를 드넓게 메우고 있는 논과 산. 그곳에 외할머니댁이 있다. 내게 할머니의 집은 모습보단 냄새로 그리고 소리로 더 많이 기억된다. 비탈길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느껴지는 흔들림, 숨을 멈추게 하는 소똥 냄새,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메-하는 염소소리가 외할머니댁에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어릴 적에는 인터넷은커녕 전화도 잘 안 터지는 이 곳이 답답했다. 할 거라곤 걸리는 것 없이 넓게 펼쳐진 땅과 하늘의 경계선을 가늠하고,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적만 한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뿐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상쾌한 공기가 들어왔지만, 그 사이에 숨어있는 흙내음이 낯설었다. 할머니의 주름진 세월만큼 이곳저곳 부서지고 곰팡이가 핀 낡은 집도 꺼려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가움이 큰 곳이었다. 이 곳은 엄마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담긴 집이었고, 언제나 따뜻하게 나를 반겨주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오래된 보금자리였다. 그리고 매번 오랜만에 가는 곳이기도 했다.


할머니 집 한편에 닭과 돼지 그리고 소까지 기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쌀도 수확하고 고추도 땄었더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로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모든 것을 관리하기 어려워졌고, 할머니 댁에선 무언가가 하나씩 사라져 갔다. 그럼에도 종종 엄마는 할머니와 통화를 할 때면 농사일 좀 그만 하시라고 성을 내기도 했다. 평생을 해온 농사일이 질릴 법도 한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만두는 법이 없으셨다. 세월에 무릎도 건강도 가축들도 뺏겼지만, 달래 캐는 일만큼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시지 않았다.


매서운 추위가 물러가고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되면 달래는 식탁 위에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다. 막 밭에서 캐온 달래들이 쟁반 가득 담겨있었고, 활짝 열린 대문으로 바람이 들어올 때면 달래 향이 코끝에서 맴돌았다. 쉼 없이 농사일을 하며 7남매를 키워낸 할머니의 세월이 담긴 달래는 씁쓸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간직했다. 달래의 둥근 뿌리 아래에서 뻗어져 나간 얇은 뿌리들은 할머니의 야윈 다리 같았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끊어질듯한 그 연약한 뿌리를 다듬는 것은 어려웠다. 할머니는 고단한 세월이 담긴 거친 손으로 달래를 살살 달래며 덕지덕지 묻은 흙을 씻었다. 금세 깨끗하게 씻기는 달래와 달리, 할머니의 주름진 손 이곳저곳에 박힌 흙의 흔적은 쉽게 씻기지 않았다.


한평생 삶을 꽉 움켜쥔 탓인지, 쫙 펴지지 않고 자꾸만 둥그렇게 말리는 손으로 할머니는 달래를 한 움큼 잡았다. 그리곤 아주 작게 썰기 시작했다. 쫑쫑 썰린 달래 위에 간장과 매실액을 휘리릭 둘러 넣어주고 고춧가루, 다진 마늘, 통깨와 참기름 등을 차례차례 퐁당 빠트린다. 금방 내가 좋아하는 달래장이 완성된다. 계량 없이 오로지 눈대중으로 만든 달래장이지만, 언제 먹든 같은 맛이 났다. 언제나 향긋한 봄내음을 머금고 있었다. 달래장을 한 숟갈 퍼서 하얀 쌀밥 위에 올렸다. 그리고 맛있는 붉은빛을 띨 때까지 비볐다. 그거 하나면 다른 반찬 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할 수 있었다. 알싸한 본연의 달래의 맛과 짠맛 매운맛 고소한 맛의 다양한 양념들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조금 짜다 싶으면 고소한 밥이 등장해 달래주었다. 사이사이 씹히는 달래의 식감도 좋았다. 김에 싸 먹거나 콩나물 밥에 얹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밥상이었다. 그렇게 먹고 나면, 할머니 댁에서 달래를 얻어 집에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먹었던 것 같다.


뼈가 시린 겨울과 파리가 기승인 여름 사이, 할머니 집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바람과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구름의 그림자가 슬쩍슬쩍 들어온다. 그 안에서 할머니가 조물조물 만들어낸 달래장이 흰쌀밥과 함께 어우러져 내 입안에서 씹히던 그 맛과 냄새. 내 기억 속 외할머니 집의 봄은 이러했다.


언제고 봄이 오는 것처럼 달래 철이 찾아왔지만.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봄은 다시 오지 않았다. 몇 해 전 막 봄이 다가오는 찰나에 할머니는 겨울바람과 함께 머나먼 곳으로 떠났다. 이제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할머니의 집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을 띄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음소거를 해둔 듯한 이 곳의 적막함이 좋다. 저 멀리서부터 나무를 간지럽히고 너른 들판을 달려온 바람을 맞을 때면 나도 함께 달리는 듯해 좋았다. 불빛 하나 없이 어둠이 깔리는 밤에는 별빛 주얼리가 촘촘히 박힌 밤하늘이 좋았다. 이 곳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느낌은 어릴 적 느끼던 것과 너무도 달라있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야속한 세월 속에서 할머니의 삶도 함께 흘러갔다.


할머니의 숨결이 곳곳에 묻은 이 곳에 다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달래의 파아란 줄기가 길게 자라난다. 연약한 뿌리로 거친 곳에서 자라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찾아오는 달래는 작은 몸으로 더운 여름의 햇살도 추운 겨울바람도 묵묵히 이겨내며 밭을 지킨 할머니의 삶과 닮아있었다. 다시 한가득 파란 달래가 쌓인 어느 봄날, 할머니 집의 녹슨 초록색 대문을 열면 그 문 뒤에 할머니가 있을 것 만 같다. 그런다면,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인사를 하고, 할머니의 소풍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고 싶다.


아마, 할머니의 그곳은 항상 달래 향이 가득한 봄날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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