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게 아니라 찾는 중이야. 두브로브니크에서의 마지막
두브로브니크를 떠나기 전에 꽉찬 이틀이 남았다. 길게 머무는 만큼 하루 정도는 다른 곳을 다녀오라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터였다. 다른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이 곳이 맘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난 이 곳에 머무는 4박5일 동안에는,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디작은 이 곳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이 전에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을 돌아다녔다. 이 모든 곳에 내 발자국을 남기겠다는 목표라도 있는 것 마냥 구석구석을 누볐다.
걷다가 많은 갈림길을 맞닥뜨렸지만 큰 고민은 없었다. 다음엔 저 길을 걷게 될거라는 걸, 그리고 그 모든 길을 돌아 언젠가 돌아오게 될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목적지도 없었고, 내가 서있는 곳이 가늠도 안됐지만 헤맨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 발다음엔 다음 발을 움직이며, 이어지는 길들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어려서 종종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때면, 나를 둘러싼 소음이 매우 큰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소리를 내어도, 어느 곳 하나 닿지 못하고 사라져버릴만큼의 큰 소리였다.
나와 전혀 무관한 소음과 사람들 틈 속에서 나는 내 자신 조차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옷 앞섬을 단단히 잡았다.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길을 잃은 것 뿐이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 같은 얼굴을 했다. 그러다 ‘길을 잃으면 더 이상 가지 말고 그 자리에서 도움을 청하라’는 엄마의 말을 겨우겨우 떠올렸다. 그래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렇게 서 있다보면 나는 내가 가야할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놀이터가 시시해질 만큼 성장하고, 어디서든 연락이 가능한 핸드폰이 생긴 이후에는 길을 잃지 않았다. 잠깐 낯선 곳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맨적은 있었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만큼 길을 잃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낯선곳이 어렵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들고, 길을 상세하게 알려줄만큼 핸드폰이 똑똑해진 이후에도 난 종종 길을 잃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려 했는지, 그 곳이 정말 길이 맞긴 했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이 자주 나를 찾아왔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머리가 새하얘져서 우뚝 멈춰서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에 가까웠다. 아마 난 그때처럼, 그렇게 있다보면 내가 가야할 곳을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날에는 희망이 내 마음을 부풀게하며 나를 이끌었다. 또 어떤 날에는 그저 나와 비슷해보이는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때론 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고 걷기도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다시 길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동안 ‘어디를 가야할지’가 아닌, ‘어딘가를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길을 걸었다. 정작 어딘가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무작정 걷고 있었다. 어느날은 그 어딘가에 엄청나게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가, 또 어느날은 너무도 멀어보여서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길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 곳에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려 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걷는 것이 곧 내 길이었고, 걷다가 우뚝 멈춰선 곳이 쉼이었고, 앉아서 숨을 돌리는 곳이 목적지가 되었다. 어디를 가든 길을 잃는게 아닌 길을 찾는 여정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걷는게 좋았다. 길을 잃어버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쯤 왔는지, 얼만큼 가야하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이런 길을 계속 걷고 싶었다.
이 곳 길목에서 자주 마주쳤던건 나와 비슷한 여행객, 햇살에 빛나는 베이지색 건물들, 식당 바깥으로 나와있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분홍색 꽃을 든 여성과 빨간 넥타이가 인상적인 턱시도를 입은 남성이었다. 이 아름다운 곳을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촬영중인 신혼부부였다. 따라다니려는 건 아니었지만, 발걸음을 멈출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곳이 대부분 겹쳤기 때문에 그 날 길을 걷는 내내 자주 마주쳤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날 두껍고 긴 옷을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건 쉬운일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얼굴에서 피곤함을 엿 볼 수 있었다. 오히려 촬영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와 설렘이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거나 축하한다는 말을 외치며 지나갔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내가 있는 곳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인지, 나의 특별한 순간과 누군가의 특별한 순간이 겹친다는 느낌 때문인지 사람들은 오늘 처음 본 이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늘 아래에 앉아서 숨을 돌리며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있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백발의 노부부는 다정히 서서 이제 막 결혼이라는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있는 남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쳐가는 사람들 틈 속에서 그 노부부만이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그저 미소를 띈채 서 있었다. 아마 그들은 지금처럼 늙어가기를 바라던 '그 때'를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제 시작점에 선 부부와 그 시작점에서 오랜시간 함께 걸어온 부부를 건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길게 비추고 있었다. 그 네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하늘의 조명인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모두가 떠날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곳을 다시 찾아, 이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하나 생길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날은 로브리예나츠 요새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림을 그려서 파는 노점상을 지나치지 못하고 작은 그림을 하나 샀다. 이 곳에서 태어난 것을 갖고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많은 기념품들은 오히려 한국과 가까운 등지에서 만들어진 가공품이다. 물론 그 사실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 여행지에서 만나, 어쩌면 나 처럼 이 곳에 온지 얼마 안 된 물건을, 이 곳의 공기와 때가 묻은 채로, 여행 내내 나와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념할만한 물건들이었다. 그래도 지금, 바쁘게 움직이는 손에서 이 곳의 모습을 점차 닮아가는 이 그림은 조금 더 특별해보였다.
땀을 식힐 겸 시킨 레모네이드는 한 모금 삼키기 어려울정도로 신 맛이 강했다.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휘휘저으며 천막 그늘 밖의 햇살을 바라보았다. 저 곳을 거닐때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어느때보다 그립다. 하지만 내가 만끽할 수 있는 시원함은 이렇게 천막하나로 만든 그늘 아래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뿐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와서 여행을 떠올리면 지금이라도 당장 뜨거운 바람이 내 살결에 와 닿는듯하다. 강렬한 여름날의 햇살이 목에 닿아 느껴지던 따끈거림, 콧등에 몽글몽글 내려앉던 땀, 햇살에 눈을 감을 때면 보이던 주황빛, 날이 갈수록 그을려가는 손과 발 등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름날과 어울리지 않는 시원함 대신, 그 때 그 곳의 뜨거웠던 날씨가 오롯이 기억에 남는다. 강렬한 여름날에서 피어난 강렬한 기억들이었다.
결국 음료수를 남긴 채 일어서서 다시 그늘 밖으로 나왔다. 함께 있던 이가 우체국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여행을 가기 전, 아니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 참 전에 여행 중 도시마다 엽서를 써서 보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곳에서 느낀 감정과 마음을 누군가에게 혹은 훗날의 나에게 전한다니,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언젠가'가 당장 오늘이 되어서도 엽서를 쓰지 못했다. 첫날 부터 바쁜 일정과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편지를 쓰기 커녕 밤마다 지친 몸을 뉘우는데 여념없었다. 그렇게 엽서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잊고 있다가, 우체국이라는 단어를 듣고 지금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골목 깊숙히 숨겨진 우체국을 발견하고 들어섰다. 가장 이쁜 엽서 3개를 고르고 골랐다. 그리고 하나는 나에게, 나머지 두개는 각각 엄마와 아빠에게 쓰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엽서들은 결국 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엽서를 써 내려가던 그 당시의 내 마음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엽서를 앞에 두고 나는 마음이 무거워서 쉽게 써내려가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지 몰라서가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어서 쓰기 어려웠다. 매일 일기를 쓰자던 약속도, 매일 그림을 그리자던 약속도, 도시마다 엽서를 보내자는 약속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지킨 것 없이 벌써 여행이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엽서를 쓰고 우표를 붙이고 나오는 순간에도 그런 무거운 마음이 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어떤 이야기도 갖지 못한 여행이 되는 것 같아 문득 불안해졌다. 기억과 사진과 배낭을 뒤적거려도 남는 것은 감탄이 나올만큼 잘 찍은 사진도 아니고, 특이한 사건 사고에 대한 기억도 아니고, 이전과 달라진 가치관과 태도도 아니었다.
이 여행의 끝엔 그저 41일이 지난 '나'만 있을 뿐이라는게 어쩐지 실망스러웠다.
그저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한 여행이었는데.
어쩌면 이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난 목적지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내가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어떤 곳을 가서, 그 곳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들에 귀를 귀울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난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다이어리를 빽빽하게 채우거나, 우체국을 찾아다녔을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꿈 꿔온 건 그저 비행기를 오래 탈 정도로 머나먼 곳을 가서, 홀로 하는 여행이었기에, 떠나온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여행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여행은 숙제가 아니었다. 잘 혹은 멋있게 해낼거라는 다짐을 품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머물다 언젠가 돌아오는 잠깐의 낯선 시간이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것 또한 계획이 되는 낯선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한 번 성벽위에 올라, 이 곳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올랐을 때보단 늦은 오후에 홀로, 사진보단 눈으로 모습을 담으며, 천천히 다시 성벽을 걸었다. 이 성벽에서 내려올 때 쯤엔 해가 저물어갈 터였다. 그래서 조금 더 천천히 걸었다. 오늘의 해를, 마지막 오늘을 조금이라도 늦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첫 날의 밤 처럼, 부자카페에 앉아 마지막 밤을 보냈다.
붉은 하늘과 푸른 바다에 같은 색 어둠이 내리고 달만이 환하게 떠올랐다. 그 어둠 속에서 가늠할 수 있는건 오직 달과 달빛뿐이었다. 달에서 발광하는 빛들이 바다에 우수수 떨어져 물결을 따라 일렁거렸다. 누군가 반짝이를 실수로 바다에 쏟은 것 같은 반짝거림이었다. 길게 쭉 이어지며 반사된 달빛은 밤마다 비밀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바닷길처럼 보였다. 저 길을 따라가다보면 달에 가닿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어둠속을 헤치며 달빛이 바다 위에 긴 길을 내고 있었다.
밤 바다는 칠흙같은 어둠이라 두렵기까지 했다. 그 곳에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어두운 이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동이 트기를 바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 바다에는 작지만 큰 달도 있었다. 어찌나 작은지 한 손에 들어올 정도지만, 그 빛은 얼마나 큰 지 가려보아도 손 틈사이로 삐져나온다.
그 날 그 밤, 그 어둠과 그 달과 그 바다에 비친 달빛을 보며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겨우 달빛에만 의존해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때가 있더라도, 돌아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삶이 되길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