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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Mar 01. 2019

멀리서 불어오는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때. 3.1



아직 쌀쌀한 바람이 몸을 스치우지만, 그 끝에 머나먼 곳에서 불어오는 따스함이 문득 느껴지는 때

3월 1일이 찾아온다.


해마다 비슷한 마음으로 보냈지만,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울림이 크다 보니


올해의 3월 1일은 좀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일제감정기 시절을, 독립운동투사들의 헌신을 역사로 처음 접하고 난 후 늘 따라다니는 생각은 너무도 다른 삶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모진 고문과 폭력을 저지른 자들도,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신념을 잃지 않던 이들도, 모두 말이다.


누군가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었으며

또 누군가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희생적일 수 있었을까.


그 가정의 끝은 언제고 '나라면'으로 이어졌다. 어렸을 때는 호기를 부리며, 독립운동의 선두에 서서 목숨을 바쳤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상황은 겨우 '가정'에 불과했다. 아무리 총과 칼 혹은 죽음을 상상하더라도, 내 상상이 끝남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그러나 100년 전 그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당장의 눈 앞에서 벌어지던 일들이다. 귀를 찢을듯한 총소리와 간담을 서늘케하는 쇳소리, 그리고 쓰러져가는 누군가 혹은 자신을 덮치는 죽음까지. 그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되는 곳에서 나는 독립을 외칠 수 있었을까.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들이 목놓아 외치던 자유와 독립은 나의 자유와 우리의 독립이 되었다. 어쩌다, 우연으로, 그저 그렇게, 지금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는 아무런 희생없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종의 부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겁거나 부담스럽기보단,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그렇게 내 안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정으로 남게 된것에 감사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종종 느끼지 못하는 지금의 소중함을 그런 감정 덕분에 놓치지 않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인지, 영웅이 그 시대에 태어나는 것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루에도 수십번 마음이 변하고, 감정이 요동치고,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무엇이 변할까 라며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할 수도 있다. 밤에는 잠을 뒤척이고 낮에는 자신의 생을 뒤적거렸을 테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어섰고, 나갔고, 소리쳤고,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을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들이 나와 다를것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위대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100년은 멀고도 가깝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지금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기에 멀게 느껴진다. 그 시대의 누군가는 10년 뒤를 아니, 10년 뒤면 너무 짧은 것 같다며 100년뒤를 상상했을 지도모른다. 끝없는 막막함이 10년 뒤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머나먼 100년 뒤를 떠올린다. 그때 쯤 이라면, 우리나라는 필시 광복을 되찾고 우리 민족은 되찾은 나라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이 상상한 모습과 지금이 비슷할까. 나라를 되찾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다른 나라와 어울리는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한 민족끼리 적으로 간주하고, 헤어져있는 현실은 아마 상상과는 매우 다른 모습일 테다. 삼일절을 하루 앞두고 이루어진 북미회담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반목과 대립을 반복해온 남한과 북한이 그 어느때보다 진전을 이루고 평화에 가까워졌을 때, 다른 나라로부터 그 진전이 중단되기도 하고, 앞으로의 관계가 다른 나라 손에 달려있다는 걸 깨닫는 것은 매우 씁쓸했다.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며 만세를 외쳤던 삼일절 전날에, 어쩌면 아직 우리의 만세는 다 오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은 일본과의 역사에서 분노를 가르치잖아.' 그 말이 끝나자자 나는 no! 라고 크게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아주 추운 겨울이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리 춥지 않은 12월 쯤이었다. 어쩌다 나온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라는 이야기 속에서 영어 선생님이 그 반의 한국인들에게 던진 말이었다. 내 생에 가장 분노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기기 까지 했다. 그 당시 그런 나의 분노는 그저 수십년전 과거에 얽매인, 이성을 가로 막는 쓸데없는 감정으로 정의되었다.


누구도 분노하라고 강요한 적 없다. 우리가 살던 곳에 멋대로 침범하여 자주권을 빼앗고, 우리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고 목숨조차 하찮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고 나라가 있었다. 그들에게 분노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에 분노를 해야할까.


감정적이다. 미래를 봐야한다. 과거에 얽매인다. 라는 말들로 지울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과거지향적이다. 그러나 과거 없이 현재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제대로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3.1운동이 100년이나 지난 후 지만, 여전히 아직 우리에게는 되찾을 것들이 남아있다. 그것을 되찾는 날까지 우리의 만세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로 통일 혹은 평화를 의심의 여지 없이 되찾게 되는 날, 벅차오르는 기쁨과 슬픔 속에서 만세를 크게 외치고 싶다. 고문과 폭력은 없을 테지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지난한 시간과 끊임없이 갈등을 마주해야하는 어려운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 나아가겠다. 100년전 그들의 희생이 숭고한 이유는, 희생의 결실을 떠나 그럼에도 한 발 더 내딛고, 한 번 더 외쳤기 때문이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김구 나의 소원


김구의 소원은 아직도 우리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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