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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란 Dec 17. 2019

숨돌릴 시간.

기말 프로젝트를 제출했다. 드.디.어.

어제 기초 프로그래밍 수업 프로젝트를 제출하며, 1월 (구술) 시험 전까지 잠깐 숨돌릴 여유가 생겼다.


4주간 네 명이 한 그룹이 되어 검색엔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했다. 자바로 백엔드를 구성해야하고, 웹까지 구현해야하니, 부가적인 것으로 웹서버 쪽이나 웹프로그래밍도 살짝씩 건드려야 했으며(난 사실 감당 못해서 다른 조원들이 했지만), 깃허브도 이번에 처음 본격적으로 써보고, 유닛테스트도 해야했고, 벤치마킹도 해봐야했고, 또 보고서는 Latex라는 스크립트언어를 또 써야했다. 막상 닥치니까 하게 되긴 하더라.


 4주가 길고도 짧은 시간인데 워낙 휘몰아쳤다보니, 원래 태풍이 지나고 다음날 뭔 일 있었냐는듯 햇살 비추는 날 마냥, 태풍 속의 크고 작은 드라마는 또 그렇게 드라마처럼 느껴지지 않네... 이게 정신승리인가욤...;;


울고 짜고 하면서 난 못하겠다 한 날도 있었고, 그 사이에 아기가 아파서 일주일 넘게 (사실은 뭐 4주 내내) 멤버들에게 민폐가 되기도 하고. 진짜 나름 극한의 스트레스를 겪었다. 수면 부족까지 겹치면서 지금은 기침도 쿨럭이고 난리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난 큰 그림도 좀 그려보고 어느 정도는 계획을 세운 후에 하나씩 했음 좋겠다 생각했는데, 아주 잘나신 조원들이 코드를 하룻밤새 다 짜버리고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들이랑 그룹을 할 때 그 나름대로 빡쳤었는데, 이번엔 내가 원하는대로 똑똑이들 있는 그룹에 속한 것까진 좋았는데 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 그 하다하다 멍청과 게으름을 내가 담당하다니 하는 마음이 들어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아프면서 꼼짝말고 아이를 봐야하던 상황에 처하면서 내 낯짝이 두꺼워지는 걸 경험했다. 조원들은 아홉시부터 만나 하루종일 같이 일하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아이를 봐야하는 처지이니, 집은 집대로 엉망이고 내 일은 내 일대로 폭망임을 그냥 목도해야했다. 아무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편과 그냥 필사적으로 교대해가며 남편이 새벽부터 출근해 몇시간 일하고 점심때쯤 돌아오면 내가 바통터치해서 학교를 가는, 그런 살인적인 나날을 보냈다. (밤에 잠은 당연히 헌납이고) 나라고 아홉시부터 만나 치열하게 일하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후 두시가 훌쩍 넘어서 "하이" 하면서 그자리에 나타나는 게 마음이 편했을까. 학교 앞 도착할 때까지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훌쩍훌쩍 하다가 캠퍼스에 들어가면서 눈물 닦고 조원들 있는 자리로 가서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앉았다.  


이맘때쯤 되니, 첫 주에 내가 원하는대로 코드를 짜지 못해서 오던 스트레스는 웬걸, 그냥 얘네가 욕심 많고 잘하는 애들이니 어쨌든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진 않고 뭐라도 결과물이 나오고 있어 업혀라도 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물론 소소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 것 같다 느끼기도 했지만, 그런 걸 더이상 따질 입장이 아닌걸...


더이상 세상은 내가 너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상대평가), 내가 나를 이기는 (절대평가)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잘하고 거기다 열심히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나도 하면 쟤네만큼 할 수 있을텐데 내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걸 적시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덴마크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딱 그만큼의 역량이 있었다면 한국 사회에선 루저가 되었을 사람들이 이 나라에선 나름 받춰주는 베이스가 있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우리 그룹 덴마크인 둘을 보면, 어릴 때 아무리 성적을 안 매기는 둥, 자연에서 뛰어놀며 크는 둥 해도 타고난 독한 천성은 어쩔 수 없어서 스트레스 만땅으로 받아가며 본인을 몰아부쳐가며 악에 받쳐 하는 것 같다. 웬만한 경쟁에 단련된 한국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순둥순둥은 하나도 없더라는. (우리 남편은 얘네처럼 고집쟁이긴 마찬가지지만 나름 순둥이였어ㅜㅜ) 부모가 억지로 공부를 시켜봤자 어른 되어서 본인이 이렇게 악바리로 하는 건 누가 억지로 시킬 수 없는 부분이지 않나. 그냥 어차피 타고난 그릇대로 크는 것 같으니, 나도 애들이 어릴 때 억지로 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말아야지, 어차피 할 놈은 다 알아서 하는 거다라고 마음수련도 했다. 딸 유치원 같은 반 친구 덴마크인 엄마는 유치원 교사인데, 내가 요즘 학기말 시험때문에 힘들다고 했더니, 그런 힘든 걸 사서 하는 나더러 갸우뚱했다. 본인은 아이들이 어리니 일하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니, 사서 고생하는 내가 별천지 사람일테다.

 

"나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언제쯤 비등해질 수 있을까." 아이가 있다는 점에서 오는 불가피한 나의 비생산성과, 비효율성, 그리고 이런 게 언제쯤 원점으로 돌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답이 없다. 애들 출가하는 18년 후쯤...? 그냥 이런 비생산성과 비효율성을 인정해야하고, 내 그릇이 그만큼 작아졌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잘나고 어린 덴마크인 동기들은 1군에서 일하고, 멍청하고 나이만 먹은 나는 적당히 2군을 노려야지. 한국에서의 삶처럼 내가 노력만 하면 자동으로 1군이 보장되었던 삶은 이제 사치임을 깨닫자.


1월 중순의 구술시험이 최종적으로 성적을 결정한다. 같은 코드와 보고서를 들고 개별시험을 치기 때문에 조원들이 제각각 다른 점수를 받는다. 내 생각에 우리 그룹에 다른 친구들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그들이 쏟은 노력과 재능을 생각하면 그게 마땅하다. 그런데 그들보다 적게 기여를 한 내가 같은 점수를 받는다면 그것도 불합리일 것 같다. 나도 나름의 노력은 또 하겠지만 하나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고 해도 마음 아파하지 않도록. 필수과제는 다 지분을 뺏겨 못하고 겨우겨우 보너스 점수 받을 부분만 줍줍해서 했으니 그부분을 어필해야하려나.


<그리고 다들 아줌마 주책이세요 할 말> 같이 그룹을 한 남자애가 우리 과에서 거의 유일한(?) 내가 친분이 있는 남자사람이다. 학기 첫 주 랜덤으로 조원을 짰던 다른 과목에서 그룹을 하면서 얘가 정말 빠릿하고 잘해서 이번 프로그래밍 수업까지 내가 얘랑 같은 그룹을 하고 싶어서 원해서 한 것이다. 얘는 이상한 아줌마한테 잘못 걸렸다 생각할지도 ㅋㅋㅋ (사실 나이로는 내가 한 살밖에 안 많다.) 학기 초에 분명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 얘가 우리 과에서 제일 잘 생겼네. 깎아놓은 조각이구만." 그런데 이번학기에서 두 과목이나 같은 조를 하면서 거의 맨날 보고 겪어보니 잘생김 필터가 사라졌다... 그냥 사람으로 보임... 애초부터 못생겼던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더 못생겨 보였을까나.

 

오히려 프로젝트 마지막 주에, 어쩌다 유투브에서 요즘 화제의 옛날 가수 양준일 영상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진짜 못 말린다. 우리집 아저씨를 바라봐야 하는데 쩝. 결혼까지 다 하고 돌릴 수 없는 상황인데 요즘 들어 한국 연예인들이 잘 생겨보인다. 아무튼 극한의 스트레스에 놓이니 생전 안 해본 덕후질을 했네. 어쨌든 연예인에 별 감흥 없는 내가 정말 오랜만에, 연예인을 통해 감동을 느꼈다.


특히 50대의 그가 20대의 그에게 했던 말,

"네 뜻대로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 밖에 없어"

라는 부분이 큰 감동이고 위안이 되었다.


나는 그에 비하면 큰 시련과 굴곡을 겪었다며 명함을 내밀 수도 없는데, 삼십대가 되어 지금 이런 생고생을 하며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애를 키우는 내가 때로는 안쓰럽기도 했단 말이다. 나도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하며 살았는데 나도 모르게 나이만 먹고 이뤄놓은 건 없으니 (평생 소원이었던 남편과 예쁜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이뤘다) 말이다.


물론 이 분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데 제때 빛을 못 발한 것, 나는 그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이제라도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재능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게 다르지만, 나도 훗날에는 이런 태풍같은 날을 지나는 나에게 위안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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