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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란 Sep 16. 2019

지난 3주간 학교생활 회고

아직 3주밖에 안되었다니!

몸살이 날 법하면 기절해서 자고, 그러면 그날 새벽에 다시 깨서 멀쩡해지고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산다고 해서 해야할 공부를 다 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요, 아이들도 엄마 사랑을 충분히 받느냐 그것도 아니요, 집안일은 후순위로 미룬 게 꽤 되었다.


어느날 같이 앉아서 공부하던 친구들이 나더러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했을 때,

"이게 내 인생에 마지막 기회라서 그래."

라고 했더니, "우리도 마찬가지야."라며 대답하더라.


나는 그나마 신랑의 경제활동과 내 밑으로 푼돈이나마 매달 학생보조금을 받으면서 생활하지만, 개중에는 다른 공부를 하다가 이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 중에서는 정말 학생 잡(알바)이 없거나, 학생 대출을 내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아이들도 있더라. 그렇지만 또 내 입장에서는 훌훌 털어버리고 오직 본인만 신경쓰면 되는 친구들의 처지가 복에 겨웠다고 생각했다. 난 정말 엄마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게 힘겹다.


이번 학기에 듣는 과목 세 가지를 차례대로 훑어보자면 이렇다.


1. Introductory Programming:

자바를 배운다. 나야 그나마 혼자 독학한 게 있어서 아직까지는 복습의 느낌으로 하고 있다. 곧 알던 게 다 바닥날 것 같지만. 이론을 아는 것과 코딩을 직접 하는 건 물론 다른 문제기 때문에 버벅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의 과목 특성상 '아직까지는' 한 문제를 풀고, 정답 아니면 오답이 있어서 하나씩 클리어하는 맛이 있다. (다음학기에 efficiency나 algorithms을 본격적으로 배우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


학교에서 주어지는 과제 이외로 Kattis라는 사이트에서 풀 만한 문제 리스트를 주기도 한다. 나라, 학교 별로 랭크도 볼 수 있 만만하지가 않다. 학교 수업 일환으로 주어지는 문제보다 내 체감 난이도가 높다. Leetcode라는 사이트는 코딩 면접을 준비할 때 필수사이트라고 해서 북마크에 저장해놨었는데, Kattis도 이런 사이트 중에 하나인가보다. 아직까지 내 이해는 그렇다. 다만 어떤 특정 컨셉에 대한 문제를 좀 추려서 풀어보고 싶은데, 그런 기능은 아직 못 찾아서 약간 두서가 없는 느낌이다.


어떤 학생들은 겨우 제출해야하는 과제 따라가느라 Kattis 문제는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 같고, 또 재야의 고수들은 엄청난 속도로 Kattis를 푸는 것 같다. 지난주에 엑서사이즈 시간에 들어갔다가 내 옆에 앉아있던 이름모를 덴마크남자사람의 점수를 보고 난 깨달았다. 언제나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넘쳐난다는 것을.


타고난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뒤늦게 배우는 것이라 타고난 머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거저 얻는 컴퓨터 다루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 더디다. 예를 들면 커맨드프롬트 터미널을 써야한다거나 그럼 완전 까막눈이 된다. 학교에서도 선택적으로 듣는 시간에 커맨드를 어떻게 쓰는지, GUI 대신 터미널을 쓰면 얼마나 파워풀한지에 대해서 설명하던데, 혼란만 가중되었다. 몇 개 키워드는 이제 겨우 익혔는데, 갈 길이 참 멀다는 생각이 든다.



2. Discrete Mathmatics:

유럽 애들이 수학을 드럽게 못한다는 걸 깨닫고 나름 위안이 되는 과목이다. 나름 수능수학 만점자로써, 아직까지는 교수님 슬라이드만 봐도 문제 푸는 것에는 문제가 없네. 물론 우리 과에 오는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 수학을 배우지 않았던 애들도 있고 그래서 그런 건 알겠다만 소인수분해의 개념도 없고, 분수 곱하기 더하기, 이차방정식 풀이에 쩔쩔 매는 걸 보니까 따로 시간을 더 내지 말고 금요일 수학 수업 시간에만 집중하자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집합 이런 것도 배우고 있는데, 왜 중학생 때는 이런 게 헷갈렸을까 과거의 나를 소환하는 느낌이다.


같이 앉아서 연습문제를 풀던 아이들이 나더러 계산기 같다고 하던데, 한국의 교육을 받고 자라면 정말 "왜"라는 질문은 생략하고, 결과 도출은 참 잘하는 것 같다.


어차피 이 과목은 1월달에 혼자 시험장에 앉아서 네 시간 문제 푸는 과목이니까 혼자 페이스대로 하면 될 듯하다.



3. Software Engineering:

제일 시간 소모가 많으면서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수업이다. 일단 노교수가 참 말을 횡설수설한다. 그래서 난 더이상 수업을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읭?) 그시간에 그냥 혼자 교재를 보고, 팀플에 해야할 일을 하는 것으로. 그리고 팀플에 알게 모르게 시간을 정말 많이 쏟아야 하는데, 내 성격상 또 남들 궂어서 하기 싫다는 일을 종종 맡아서 하고 있다. 좋든 싫든 랜덤으로 맺어진 팀원들과 학기말까지 같이 가야하기에 몸을 뺀다고 한들 나만 손해볼 것 같아서다. 정말 둘이 나눠서 일을 하기로 해서 받아봤더니, 어떤 모델의 장점으로 다짜고짜 better output, good performance이런 식으로 적어놓은 걸 보고 욕이 나왔다. 그 와중에도 일을 잘 하는 똑똑한 애들은 눈에 콕콕 들어오고 일하기도 훨씬 편하다 싶다.


팀플이 14주동안 어떤 케이스를 잡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롤플레이를 하는 것인데, 학기 말에 소프트웨어가 떡하니 나오는 게 아니라, 가상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팀으로써, 그 프로세스를 규정하는 것이다. 프로세스모델, 리스크 관리 등의 모든 가상 설정에 기반한 보고서를 쓰고, 조교가 상사다 생각하고 매주 회의를 하는 게 주된 학습목표다.


개발자의 업무 중 사실 코딩 자체에 쏟는 시간은 일부라 하지 않나. 어쨌든 프로그래밍을 통해 서비스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고 회사 내에서 다른 팀들과 협업을 해야하는 것이니 이런 과목을 들음으로써 어느 정도 일하는 환경을 미리 겪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정말 무엇을 해야하는지 갈피도 못잡았는데, 지난주에 학기 전체 스케쥴표를 내가 우리팀 "스크럼 마스터"로써 스크럼 보드에 다 작성하고 나니까 감은 잡혔다. 새벽 세시에 스크럼 보드를 짜면서 뭔 뻘짓인가 하긴 했지만, 대략 이 수업의 방향성은 깨달은 것 같아서 헛되진 않았다고 자평한다.


 


수업 논외>


사람관계가 난 어렵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긴 해왔지만, 나를 '친구'로 대해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각자 다들 삶이 바쁘기도 하고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완전 아싸를 하기에는 배짱이 부족하다. 그런 것까지 학교에서 기대하는 건 아마 사치겠지.


개발 공부를 시작한 후로 기회는 넓어진 느낌이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이야기 나눈 이웃에게 소프트웨어 개발 공부를 이제 막 시작했다 했더니, 본인이 (내가 예전에 알아본 적도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Business Anaylitics Vice President라서 학생 잡이 필요하면 언제든 Reference를 써주겠다며 그자리에서 링크드인에 나를 추가하기도 하더라. 참 덴마크 사는 5년간 이런 기회가 잘 없었는데 이제야 쓰임이 있는 곳에 있구나 싶었다. 딸 유치원 친구 학부모 중에서도 생일파티에서 내가 이쪽 공부를 이제야 시작했다고 했더니, 본인이 인공지능 개발자라면서 공부하다면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달라는 아버님이 계셨다. 백 번 잘 한 결정이라면서 때늦은 공부를 응원해주는 이런저런 낯선 사람들을 만나니 참 좋고 위안이 된다.


아이들을 재우며 기절하듯 잠들고 새벽 두시, 세시에 깨는 날이 많은데 그 고요한 시간만큼은 방해받지 않고 몰입을 하고 싶다. 그런데 참 예민한 우리 둘째딸은 엄마냄새가 안 나면 설잠을 잔다. 지난주에 만 네살이 된 큰딸은 참 깊게 자는데, 둘째도 두 살이 되면 좀 잘 자려나 싶다.


집에서 공부를 좀 한답시고 폼을 잡았더니, 지난주 엄마 학교 투어를 했던 큰딸이 말하길,

"엄마 엄마가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했잖아. 집에서는 우리랑 놀아야지."


2년간의 시간이 마라톤처럼 페이스를 유지해야할지언대, 벌써 숨을 헐떡거리는 순간이 찾아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한국에서는 덴마크 사람들 워라밸을 따라잡고자 하던데 나는 덴마크에서 워라밸이 완전 엉망진창인 이런 삶을 부디 2년 후엔 청산하고프다. 사람 노릇하면서 밥벌이하며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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