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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란 Oct 28. 2019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기

나는 나사빠진 모난 사람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참 모난 돌이다. 어릴 때 읽은 이야기 중 세모 네모는 모가 나서 굴러가지 못하고, 동그라미는 데구르르 잘 굴러가던 이야기가 문득 기억나는데, 나야말로 세모였고 네모였던 사람이다. 때때로 나보다 더한 세모 같고 네모 같기도 한 남편이지만, 아무튼 나는 남편을 만난 후로 어쨌든 굴러가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또한 자식 새끼가 생긴 이후로 자식 새끼들 덕택에 모가 많이 깎여나간 건 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잘 것 없는 이방인 아줌마가 된 덴마크 생활 역시 나의 모들을 주춤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못하는 일을 그냥 생각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만, 내 실수와 부족함을 받아들일 때 유난히 뼈아플 때가 있다. 그래도 엄마사람만으로 살 때는 그래도 비로소 나의 모가 많이 깎여나갔구나 생각했는데, 다시 학생이 되고나니 타고나길 그런 나의 모들이 뾰족뾰족 솟아난다. 지난 두 달간 참말로 잠 한 번 푹 자보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쫓기듯 학교생활과 엄마사람 생활을 병행해왔다.


지난주 두번째 프로그래밍 수업의 중간고사가 있었다. 완전 이 시험에 올인을 했다고는 나도 말하기 부끄럽다. 사실 패스만 하면 되는 시험이라 큰 타격이 있는 시험도 아니었고, 나는 요즘 다른 관심사도 있어서 그 호기심을 충족하는 데도 분명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오로지 자바 책만 붙잡고 있기에는 너무나 따분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시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넉넉잡아 20%에 드는 성적일 테다. 그럼에도 내가 너무나 불편한 점은, 나라는 사람이 책을 무려 세 번이나 보고, 모르는 걸 다 짚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실수들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내가 모르는 게 뭔지 몰랐단 말이요! I didn't know what I didn't know!


완전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는 것이다 보니 정말 배움에 끝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알면 알수록 이런 순서대로 이거, 저거 다 해야할 것 같고 하고 싶은데 내게 한정된 자원(주로 시간)으로 어떻게 해나갈까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내가 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이 2년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직업인이 되기 위해 하는 공부다보니, 사실 커리어 쪽에도 관심이 많고 기웃기웃한다. 또한 분야가 IT이다보니 아카데믹한 지식만큼이나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에도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Spark, ElasticSearch 이런 것 제대로 뭔지 공부해보고 싶다. 그전에 데이터베이스부터 공부해야겠지만ㅋ Azure 자격증 공부도 해보고 싶고). 데이터 엔지니어링으로 목표는 잡았고 이런 저런 내용을 공부가 최소 조건임은 이제 알았으니, 학교 공부가 조금 지루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할 만큼은 다 했다고 생각했으니.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학교 수업 과목에 내가 온 에너지를 더 쏟는다고 가정하더라도 80에서 100이 될까? 95까지는 어떻게 간다면 갈 수 있을텐데, 100을 해도 안될듯? 차라리 80임에 만족하고, 그냥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힐끗하는 데 시간을 좀 쏟으면 80도 챙기고 다른 쪽에 20-30정도도 챙길 수 있는 게 아닐까? 분명 100을 채우지 못한 자의 변명거리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 어차피 내가 몇 년 개발자 경력을 쌓고 지금을 되돌아보면 한참 뒤떨어질텐데 굳이 아둥바둥하며 100을 채우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특히 학점보다 경력이라는 현직자들의 말을 들었는데도, 성적에 연연하는 나를 보자니 참 수능세대 한국인의 근성은 못 버렸구나 자아반성도 했다.


특히 엄마 아줌마 학생노릇을 하자니, 시간이 모자라 내가 일등하고 싶다고 욕심낸다고 일등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는 현실판단도 했다. 내가 하는만큼 나보다 어리고 상황이 좋고 머리까지 좋은 인간들도 동시에 열심히 하는데 나라고 어찌 하겠냐 하는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욕심이고, 내 모인데 아무튼 중간고사가 있었던 날에는 스스로가 실망스러워 짜증이 났다.


아무튼 나의 모를 숨기기 위해 깎기 위해 나는 오늘도 마음을 닦는다. 새끼들과 이리저리 북적한 주말을 보내고 나니 일요일 밤이 참 조용하게 감사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특히 이번주말에는 유난히 덴마크어만 쓰는 시간도 많았기에 (학부모 상담, 아이 친구 생일파티, 남편 친구 방문) 나의 모가 저절로 움츠려 들기도 했는데, 이나라 말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늘듯이 지금 하는 공부도 짬밥이 쌓이면 더 쉽게 즐기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겠지. 이만큼 노력도 하는데!! 과연 몇년 후엔 개발자 일도 덴마크어로 내가 할까요? 안할까요??!!


매일 어떻게 드디어 다했다 뿌듯한 마음을 느껴볼 틈도 없이 또 새로운 펀치에 맞는 하루하루가 계속될 수 있는 건지, 참 바쁘다 바빠.


이런 모나고 못난 나란 사람에게, 이런 "완벽한" 새끼들이 둘이나 와줘서 겁나 감당 안되게 힘든데 감당 안 되게 행복키도 하다. 공부 때문에 살 부비는 시간이 줄어들어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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