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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란 Nov 07. 2019

벽에 부딪히는 느낌 :)

그래도 집에 있는 아줌마보다는 낫다.

1. 


벌써 11월이 되었고, 공부할 건 너무나 밀려있다. 요즘 내 기분은 이렇다. 상대방이 공을 마구 마구 던지는데 나는 그 공을 주으러 다니고, 양손에 넘쳐서 잡은 것마저도 흘리는데 바닥에 공은 난자해 있다. 정말 수업에서는 이런 것도 있어, 이런 것도 있지! 하면서 짧은 강의 시간에 방대한 양을 흘려주는데, 그것 하나를 익히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정말 똑똑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던지는 공을 커다란 바구니에 쏙쏙 다 담아간다. 나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



2.


프로그래밍 수업 기말 프로젝트를 하는 자격으로 지난 십 주간 매주 과제를 제출해야했다. 10개 중 최소 7개 이상의 과제를 통과해야만 하는 조건이었다. 7주까지는 나름 수월하게 즐기면서 과제를 제출했다. 즉 기말을 칠 수 있는 자격은 쉽게 갖추었는데, 8주차 과제는 미루고 있다가 갑자기 터진 (무려 2년 반만에 처음 하는) 생리통에 아파서 못 냈고, 9주차 바로 지난주 과제는 어려워서 한참을 붙잡고 있다가도 못했다. 8주차 과제를 제출 못 했을 때는 그냥 아팠으니까 못할 수도 있지뭐 하며 그리 큰 상심을 않았는데, 이번에 9주차 과제를 내지 못하고는 크게 낙심했다. Regex를 이용해서 풀어야 한다고 끙끙 댔는데, 결국은 조건문과 약간의 Regex로 풀 수 있는 문제였다. 내가 여태 해온 공부는 (물론 몇몇 시험도 합격 낙방 두 가지 양면밖에 없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하면 그래도 배웠다 싶은 뿌듯함이 있는데, 이건 내가 한참을 붙잡고 있었다 한들 답이 안 나오니까 결국 난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실패하는 과정에서 뭔가 배운 게 있었으리라...



3. 


지난주에 개별 세부전공을 신청했는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승인을 받았다. 주제는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의 데이터 엔지니어링이다. 나름 책임감이 생기고 어깨가 무거워진다. 내가 스스로 알아보고 커리큘럼을 짰고, 누가 떠먹여 주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쨌든 이걸 해보겠노라 내가 우겨서 한거니 말이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고, 앞으로 진로에 대한 대략적인 가닥은 잡혀서 좋다. 


가장 하드한 스킬을 학교에서 배워야지 초반엔 그런 마음이었다. 완전 코드 잘 짜는 디벨러퍼가 될 거야!! 이랬는데, 결국 Project Management나 다른 개발자를 어느정도 써포트해주는 직군에 끌리는 걸 보면, 천성은 역시 문과구나 싶다. 엔지니어링이라고 하드한 것만 있는 건 아니란 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업에서 배우고 있는데, 정말 글 쓰는 능력과 매니징하는 능력은 내가 좀 괜찮은 것 같았다.  



4. 


여전히 사람이 어렵다. 그렇지만 또 거기에 무뎌지는 나를 발견하는 점이 야릇하다. 지난주 뉴스에 세계 60여개국 조사를 했는데 덴마크가 친구 사귀기 가장 힘든 곳으로 꼽혔다. 나도 덴마크 사람들과 지인을 넘어 '친구'가 되는 것은 아직 못했다. 이렇게 부대끼면서 학교 생활을 하면 친구 하나는 사귈 수 있으려나 했는데 쉽지 않다. (같이 공부를 하는 한국인 친구가 가장 큰 힘이 된다.) 모두들 살 길이 바쁘니 그러려니 한다. 별로 거기에 대한 아쉬움도 안 생기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먹었고 내 삶이 그만큼 팍팍하구나 싶다. 덴마크에 있는 한국인 언니들과의 카톡챗이 가장 큰 위로고 위안이다. 



5. 


그저께에는 Simcorp라고 파이낸스 소프트웨어 회사의 이벤트에 다녀왔다. 지난달 학교 취업박람회에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자리에서 링크드인을 맺었던 그 회사 직원이 초대해줘서 다녀왔다. 코펜하겐의 IT 학생들을 대상으로 Agile로 어떻게 일하는지 알려주는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너무 적은 사람들이 와서 놀랐다. 나는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이제 놓치고 싶지 않다. 정말 학교에서 배우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업보다도 훨씬 와닿았고 많은 걸 배웠다. Product owner, Scrum master, Machine learning developer 등 총 7명의 직원들이 정말 고퀄리티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와서 난 이 회사에 큰 관심이 생겼다. 기회를 찾고 싶다. 


그리고 어쩌다 이 회사에서 한 달간 무급 인턴십을 하는 졸업생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열 명 중 몇 명만 추후 채용되니 엄청 빡세게 공부중이라고 했다.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해보고, 또 이 한 달간 Microsoft Azure 클라우드 자격증을 취득해야한다고 했다. 이 회사가 Agile을 시작한 게 2016년이었고 정말 큰 변화였으며, 지금은 나름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Cloud로 옮겨가는 걸 진행중인데 앞으로 이게 5-10년간 가장 큰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도 실제로 Azure Data Engineering Associate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두고 있으니, 크게 잘못된 길을 택한 것 같진 않았다. (2년 후에 나를 채용하시라!)


또한 이벤트에 온 직원들이 중년 여성들이 많았다. 나의 편견 상 HR, 커뮤니케이션 쪽 사람들이려나 했는데, 실제로 20년 이상 개발자로 일한 중년 여성들이었다. 그게 굉장히 신선했다. 덴마크에서도 요즘 들어서야 IT인력에 여자가 더 필요하다 곳곳에서 이야기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지 않나. 그런데 4,50대의 여성들이 이렇게 건재함을 보니까, 나도 저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꿈을 꿀 수 있었다.



6.


앉아서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몸은 둔해지고 눈은 뻑뻑하다. 더 노련하게 살 방법을 강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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