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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May 23. 2024

발길 따라 교토 여행기 1

신혼부부의 일본 여행기록  

왜 일본으로 가세요?  

신혼여행을 휴양지가 아닌 일본으로 택한 뒤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친구, 어른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물어보는 탓에 "가깝고 편해서요."라고 대답했다. 


정말 단순하게 가깝고 편한 곳,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일본이라서 신혼여행지를 골랐다.  

결혼 준비 초엔 시원한 푸른 바다가 펼쳐진 하와이 같은 휴양지도 꿈꿨으나 체력 게이지가 바닥남에 따라 

그냥 마음 편하게 갔다 올 수 있는 곳으로 가자가 돼버린 것이다.      


그와 이미 2번의 일본여행 경험이 있으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생에서 일주일 넘게 머문 일본은 처음이니까. 그렇게 우린 일본으로 떠났다.        

지명만 정하고 갑니다.

숙소, 항공권, 교통편 예약, 끝!  원래 내 여행 계획 스타일은 심플하다 못해 뭐가 없다. 

신혼여행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 없이 딱 저렇게만 준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계획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메모장에는 [오사카, 교토, 오카야마] 지명만 덜렁 적혀있다.  

그나마 각 장소에서 머무를 숙소들 덕분에 얼렁뚱땅 [숙소 근처 동네 구경하기]가 추가된 정도이다.  


쏟아지는 지인들의 추천 맛집, 명소들 중 과연 한 곳은 가볼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첫 번째 장소로 도착했다.


숙소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 무계획 여행의 장점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분일초까지도 계획하는 후배에게 들려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짐은 무겁고 해는 뜨거워 짜증이 나려는 찰나 선물처럼 눈앞에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이 맛있었을 때 그리고 잘 가꿔진 작은 화단들 앞을 지나칠 때 즐거움을 느낀다.  


일정이라고는 [숙소에서 체크인하기] 뿐인 우리에겐 숙소를 찾아가는 길도 마치 시간 모험 같다. 

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으니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아라시야마? 

유일한 여행 로망이었던 온천을 위해 고른 료칸 숙소는 예약 사이트에서 본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좋은 시설도 시설이지만, 만족도 점수에 큰 몫을 차지한 건  아라시야마 텐류지 정원과 그리 멀지 않은 그림 같은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닐까. 


큰 산을 뒤로하고 아담한 높이의 집들을 즐비한 골목을 넘어가면 동네를 가로지르는 큰 강을 볼 수 있다. 

짐을 끌고 20분간 걸어온 보람이 있다.  


체크인을 끝내고 한껏 가벼워진 우리는 달을 건너는 다리라는 뜻의 '도게츠교'를 지나고 있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을 가리키며 그는 말했다.  

   

[저 아래, 강가 따라서 내일 아침에 뛰면 되겠다.] 

신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약속한 유일한 미션은 아침 달리기였다. 순식간에 달릴 장소도 정해진 것이다.   


약간만 아래로 걸어갔을 뿐인데 조용한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대신 관광객의 활력 넘치는 소리로 뒤바뀐다. 전 세계 곳곳에 온 관광객들 그리고 틈사이 인력거들도 함께 서있는 탓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걷는 길 위에서 우리는 걸음을 멈춰 방향을 틀었다.

어차피 딱히 정해진 일정도 없으니 아무렴 어때.


그렇게  대나무숲과 기념품 상점이 모여있는 관광지 대신 조용한 주택가로 흘러들어 갔다. 


마치 새로 이사 온 주민처럼 설렁설렁 동네를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하나도 읽을 줄 모르는 종이 전단이 마냥 흥미롭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끝까지 뛰어볼까. 

다음 날 아침 눈뜨자마자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 나와서 한 일은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이었다. 

오전 7시, 미리 챙겨 온 운동화를 신고 우리는 가볍게 숙소를 나섰다.


아침부터 비 예가고 있었는데 어쩐지 하늘에 검은 구름이 가득했다. 

우스갯소리로 이 동네는 오래되고 튼튼한 나무가 많으니 중간중간 비를 피할 수 있겠다고 했다. 


강을 따라 이름 모를 동네와 산책로(?)가 펼쳐진다. 

우연히 들어선 길이었지만 매일 뛰던 사람인척 앞을 향해 내달렸다. 


조금만 나가면 사람이 바글바글한 관광지라는 사실도 잊을 만큼 한적하다. 가끔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커다란 까마귀들이 날아올라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 빼곤 조용했다.

 

곧게 난 길을 따라 계속해서 달리니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한 둘씩 보인다.


그때 나보다 앞서  빠르게 뛰고 있던 오빠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무얼 하나 봤더니 공터에서 야구 훈련을 하는 유니폼 입은 학생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재밌어 보이네. 나도 저 사이에서 뛰고 싶다."  

그의 표정에서 공터의 학생들에게 보이는 표정이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긴 했으나, 더 많은 비가 내리기 전에 서둘러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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