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기록자 Apr 29. 2024

예비 신부의 도둑맞은 체력

코 앞으로 다가 온 결혼식을 준비하며  

친구의 결혼식을 대하는 자세 

결혼식을 2주 앞둔 지난 주말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했었지만 이토록 긴장되는 지인의 결혼식은 처음이다. 아마 곧 닥쳐올 미래의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보여서 그렇겠지 싶다.  

그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사이에 검은 흑심도 하나 곁들여 갔다. 

바로 "결혼식에 뭐가 필요한지 잘 살펴보고 와야겠어"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정작 신부대기실을 들어서는 순간, 제일 먼저 보인 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친구의 얼굴이다.  

오전 일찍 식을 진행한 친구는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온 듯해 보였다. 어쩐지 남일 같지가 않다.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초, 친구 무리 중 제일 빠르게 시집간 친구가 있었다. 

그때 친구는 마냥 뽀송뽀송해 보이고 행복해 보였다. 드라마 속 신부처럼 반짝거렸다. 

 

하나 세상의 근심과 고민을 가득 싸안고 시작하는 친구와 내겐 그 뽀송함을 찾는 건 조금 무리일 듯하다. 

그래도 어느 누구보다도 빛나고 아름다운 신부가 된 친구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조금 눌렀다. 


그리고 다가 올 결혼식에 내가 무엇을 빠뜨렸는지 알 수 있었다. 

셀프, 셀프의 늪 

불과 얼마 전까지는 결혼식은 '스드메'면 끝이 나는 알았었다.

계획과는 담을 쌓고 사는 인간이고 능력 만렙 플래너님 덕분에 굵직한 준비는 진작에 다 끝내놓고 맘 편하게 탱자탱자 있었다. 식장으로부터 메일이 오기 전까지는.

 

"신랑, 신부님~ 식순, 식전영상, 부케, 음원.. 등등"을 준비해서 00일까지 보내주시겠어요? "


아하?.. 아직 끝난 게 아니구나... 


식순은 결혼식장에서 보내 준 양식이 있어 후다닥 준비하면 된다. 문제는 식전 영상과 음원이다.

업체에 돈 주고 맡기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두고 나는 어리석게도 '셀프' 방식을 선택했다. 


3분 이내 영상을 만드는 일이 뭐 그리 힘든 일이랴. 

거기다가 사람들이 집중해서 보지 않는 영상이니까 후다다닥 만들어서 보내자라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셀프의 늪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충은 난이도 : 상

요즘은 유료 플랫폼만 사용하면 영상 작업도 쉽고 간편하다. 하지만 내 욕심은 쉽고 간편하지 않았다. 

세상엔 대충 해도 될 일과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 따로 존재하지만 강약 조절을 못해서 작은 일도 대충대충이 잘 안 된다. (슬픈 건 모든 일에 시간을 들이지만 결과물이 썩 좋지도 않다)  


예전 대표가 항상 하는 주문이 있었는데

"00아 대충 해, 어차피 그건 또 수정할 수 있는 거야. 너무 에너지 들이지 마" 


나도 안다. 모든 일에 우선순위 없이 너무 많이 에너지를 쓰면 오히려 결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잔소리를 밥먹듯이 들어도 고쳐지지 않는걸, 고질병인 걸 잘 안다.   


심지어 남들이 모두 중요하지 않다는 식전 영상을 붙들고 있는 지금도 참 '대충'이 안된다. 

체력이 소진되었습니다.

이젠 일주일도 남지 않은 결혼식이라 부랴부랴 편집한 결혼식 음원과 식전 영상까지 웨딩홀에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자료들만 보낸 게 아니라, 내 체력도 함께 보낸 듯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체력은 어디로 도망간 것일까?  

오늘 아침엔 눈에 풀을 붙여놓은 것처럼 눈이 잘 안 떠졌다. 몸도 그 어느 때보다 뻐근하다. 


새삼 주변에 결혼한 지인들이 대단해 보인다. 

결혼식 준비만으로도 피곤한데 육아까지 하는 나의 30대 동지들은 체력을 얼마나 갈아 넣고 있는 것일까.

그 와중에 

그 와중에 결혼 생활을 잘해보고자 [예비부부 결혼준비교육]도 2주간 들으러 다녔더랬다. 

가족 상담학을 전공한 덕에 결혼과 육아는 부부 서로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 교수님께서 '너네 나중에 결혼하기 전에 꼭 예비 남편이랑 같이 교육 들어봐. 꼭"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용케도 그 말을 기억해 내 결혼 준비 막바지에 교육을 신청했다. 

감사하게도 국가에서 무료로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라 부담 없이 예비 신랑을 꼬셔 참석했다. 


우리와 같이 결혼날을 잡아둔 예비부부도 여럿 보였는데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듯한 부부도, 서로가 아직은 알아가야 할 단계인 사람들도 있었다. 10년을 사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하나 정작 강사님의 지시에 따라 나눠본 서로의 대화 속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새삼 결혼식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은 정서적 결합향해가는 과정이라는 강사님의 말씀에 따라 체력 게이지를 끌어올려야겠다 싶다. 

자~ 이제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어나, 달리기 할 시간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