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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새롬 Dec 04. 2017

#12 공간으로 자본주의 읽기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서평


공간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있고, 공간으로부터 배제된, ‘공간을 갖지 못한 자’들이 생겨난다. 이러한 상황은 공간의 특성이나 규범으로 간주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추상화 … 추상화와 그 것의 사회적 사용에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르페브르(1901~1991)는 공간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던 프랑스 신맑스주의자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축적론에 동의하나 축적의 조건을 화계경제 내로 한정짓는 마르크스의 설명은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도시혁명’을 기점으로 새로운 성격의 도시적 공간이 점차 퍼져나갔고, 이 공간이 축적의 도구이자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 『공간의 생산』(1974)에서 이는 ‘추상공간’으로 명명된다. 책의 「절대공간에서 추상공간으로」 장에는 ‘축적의 공간’인 추상공간의 탄생과 추상화 과정에 내재된 폭력, 이를 내면화한 ‘공간적 실천’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 공간에 대한 그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서 그는 신맑스주의자답게 마르크스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한계를 보완하는 작업을 하는데, 그가 마르크스를 넘어 어떻게 자본주의를 도시적 공간에 위치시키고 자본주의 재생산의 도구로서 공간을 분석하는 지가 핵심적이다.



  우선 르페브르가 추상공간과 대비시키는 공간은 절대공간이다. 절대공간은 사원, 궁궐, 추모, 장례 기념물 등 상징을 간직한 장소이다. 문화마다 용인되는 상징적 의미가 다르므로 절대공간은 다양성이 특징이다. 동서남북, 좌우의 방향성이 중요하게 간주되고 상징적 가치를 지닌다. 반면, 추상공간은 공간의 가치가 균질하게 환원되는 유클리드 공간이다. 설계도나 지도가 추상화된 공간의 대표적인 예다. 근대철학적 사유을 열었던 데카르트식 ‘직관(intuitus)’으로 합리성을 획득하는 ‘인지된 공간’이 추상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추상공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공간이 추상화됨으로써 공간의 도구적 활용이 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보기에 동질적인 유클리드 공간으로의 환원이 일단 이루어지기만 하면, 다른 종류의 환원이 용이해질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 용도까지 보장해 준다. 즉, 공간의 추상화는 공간을 아무런 특성을 지니지 못한 공백 혹은 백지로 축소시키고, 공간의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생산’을 허락하는 것이다. 추상공간이 “생산되면서 동시에 생산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추상공간은 생산된 결과이자 도구가 된다.


도구 중에서도 가장 일반화된 도구가 공간이다. 공간이란 도구적이다.


  그렇다면 추상공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추상공간의 존재양식에 대해서는  도시와 권력,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된다. 도시와 권력은 추상공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자 결과라는 것이다. 우선, ‘도시혁명’이란 말에서 암시되듯이, 저자는 도시가 새로운 삶의 공간을 생산해냈다고 보았다. 바로 세속화된 공간이다. 시장이 들어선 광장은 고대 아고라나 중세 수도원의 정치적, 종교적 신성함이나 금기의 의미가 사라지고 누구에게나 허용된 공간이다, 또 교회나 성의 종탑보다는 도시의 시계탑이 분할하고 지배하는 시공간이다. 이처럼 도시적 삶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시공간의 동질성은 다르게 말하면, 도시적 삶이 보편화될수록 절대공간은 사라지고 공간의 추상화가 증가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저자가 적절하게 밝힌 것처럼, 도시혁명 이전에도 추상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로마 제국의 도로는 공간의 추상화 없이는 생산될 수 없고, 수많은 로마의 목욕탕은 다분히 사회적, 정치적인 용도를 가지고 계획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12세기와 16세기 서유럽에서 ‘굉장한’ 공간적 단절을 발견했다. 공간의 추상화 관점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라는 것이다. 12세기 새로운 건축양식(고딕건축)의 대성당들은 이전 시대 종교적 건축물과 달리 (초월적 힘이 아니라) 합리적 권력의 강화에 일조하는, 보다 사회적인 공간으로 전도되었다. 16세기에는 경제의 중심이 농촌이 아니라 도시, 즉 계산과 교환, 타협의 공간, 상인들의 합리성을 지닌 공간이 우위를 점하면서 적극적인 공간의 추상화가 진행되었다. 저자는 추상공간이 만개할 수 있었던 한 조건이자 산물로서 도시에 주목한 결과, 공간과 자본주의의 결합 지점들을 발견하고 역사적 증거와 사건들을 끌어온다.


1615년 파리


  추상공간의 또 다른 존재양식은 권력이다. 이때 저자가 말하는 권력은 약탈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간 사이의 질적 차이를 축소하고 지역성이나 개별성을 해체하는 작업은 폭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테면, 전쟁으로 파괴된 공간에서 국가의 ‘전체주의적 소명’ 아래 동서남북으로 뻗은 도로와 산업체 건설은 폭력과 강제성을 통해 이루어지며 동시에 자본축적이라는 경제적 역할을 수행한다. 또 추상공간의 생산은 ‘합의’, ‘의회 민주주의’, ‘국익 우선주의’, ‘기업 정신’과 같은 은유를 통해 폭력이 정당화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설명을 통해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즉 그동안 마르크스에 의해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았던 국가는 자본주의의 공간을 생산, 재생산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부상하며 그 역할은 실재적인 것이 되었다.




  르페브르는 상부구조-토대로 구조화 된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간과되었던 공간의 역할을 조명함으로서 마르크스의 설명을 보완한다. 이에 따라 도시와 건축, 국가, 전쟁 등이 자본주의를 향하여 어떻게 작동되어 왔는지가 흥미롭게 재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공간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들로 가득하여 사회학의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에 기여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공간은 살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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