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서평
초등학교 생활을 되돌아볼 때, 기억에 남는 숙제가 하나 있다. ‘항구도시 부산’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부산에 살고 있었는데도 내가 경험한 부산은 ‘항구’와 의 관련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숙제를 하는 내내 다른 도시를 대하는 생경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산에 붙이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는 이름도 나에게는 이질적이다. 성인이 되어서 ‘제1의 도시’라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아무래도 서울과 부산의 차이를 1과 2로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도시는 인구 규모나 주요 산업, 교환되는 상품들로 설명될 뿐이다. 도시를 살아가거나 드나드는 사람들, 그들의 주관적 경험과 기억, 감정은 괄호 안에 있다.
도시는 많은 학자들이 설명하려고 애쓰는 공간 중 하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무수한 노력을 통해 도시가 충분하게 설명 되었는지, 사람들은 도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지,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는지 하는 것이다. 어떻게 도시를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 이에 이탈로 칼비노(1923~1985)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모든 사실과 정보 주위에 남아있는 공간”으로서의 도시를 그려냄으로써 이 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리를 지탱해 주는 돌은 어떤 것인가?"
"다리는 어떤 한 개의 돌이 아니라 그 돌들이 만들어내는 아치의 선에 의해 지탱됩니다."
이 책은 이탈리아 상인이자 탐험가 마르코 폴로와 중국 원나라 5대 칸이었던 쿠빌라이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에게 자신이 방문한 55개의 도시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의 신임을 받아 약 17년 간 원나라에 머물면서, 각지에 특사로 파견되었으며 쿠빌라이에게 꼼꼼하게 보고하였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 중국 전역에 이르는 원 제국을 통치하게 된 쿠빌라이, 그에게 각지의 도시를 설명하는 마르코 폴로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칸은 손짓으로 마르코 폴로를 불러, 그가 방문했던 도시들에 대해 체스 말만 가지고 설명해 보라고 했다.” 책에서 쿠빌라이는 제국의 통치를 체스 게임처럼, 제국의 도시를 체스 말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제국에 속한 도시를 하나하나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체스 게임의 규칙을 알면 제국을 소유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에게 설명하는 내용은 체스 판이나 체스의 규칙 따위가 아니라, 체스 판을 구성하는 나무, 나무의 새싹, 나무가 있던 숲과 강, 강물의 뗏목들, 뗏목의 도착지들, 창가에 있는 여인네들에 관한 것이다. 쿠빌라이는 마르코 폴로를 통해 “도시들을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질서들과 규칙”이 있음을 알게 된다. 도시가 “발생하고 형태를 취하고 번영하고 계절에 순응하며 쇠퇴하고 소멸해 가는” 방식, 비가시적이고 비언어적이며 무질서해 보이는 도시의 질서- 이것이 칼비노가 책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도시의 과거는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있습니다.
칼비노가 주목하는 도시의 본질 중 하나는 ‘기억’이다.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석양이 아름다운 도시 ‘디오미라’는 아름다움에 대한 행복한 경험과 그 행복에 대한 질투로 살아가고, 대도시로 화려하게 변한 ‘마우릴리아’는 잃어버린 우아함에 대한 향수로 살아간다. 반면에 기억할꺼리가 없는 도시는 도시로 존재할 수 없는데, 잊혀진 도시 ‘조라’가 그렇다. ‘조라’는 보다 잘 기억되기 위해 꼼짝하지 않고 똑같은 모습으로 있다가 결국 서서히 세상으로부터 잊혀졌다. 저자는 기억으로 살아가거나 기억으로부터 사라진 도시들을 통해, 도시(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기억, 추억, 향수와 같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도시는 계단 수, 건물 입구의 모양, 지붕의 종류와 같은 것이 아니라 과거 사건들과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
모든 기억과 추억에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칼비노는 도시를 “모든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완전체”로 보았다. 유리공 안에 있는 도시 ‘페도라’는 사람마다 욕망에 들어맞게 선택해서 볼 수 있으며, 사막에서 온 낙타몰이꾼이 바라본 도시와 바다에서 온 선원이 바라본 도시 ‘데스피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저자에게 도시는 도시 그 자체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하고 바라보고 즐기는 모든 사람들은 도시에 투영된 욕망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또 인간의 욕망이 도시를 만들지만, 도시의 삶은 그 욕망과는 무관하게 지속되기도 한다. 욕망으로 세운 도시 ‘조베이테’가 결국 욕망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지고 “탈출로가 없는 함정 같은 도시”로 전락하는 장면은 이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기억과 욕망이 도시를 존재시키는 한 방편은 ‘기호’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마는 권력을, 철학자의 책들은 학식을, 머리띠와 발찌는 우아함과 관능을 나타내는데, 칼비노에 따르면, 도시는 이러한 기호의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존재한다. 책에서는 기호로 존재하는 도시에 다녀온 여행자들의 독특한 기억이 묘사된다. ‘지르마’에 다녀온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 비행선이나 문신을 새기는 선원 수가 제각기 다르고, 소리로 기억되는 도시 ‘히파티아’를 다녀온 여행자는 도시의 소리를 통해 관능의 이미지를 재생시킨다. 이에 저자는 도시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소리나 동작, 이미지와 은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올리비아’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풍요로움, 도시인들의 근면한 정신, 자유로운 삶과 세련된 문화 지향성을 설명하려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칼비노가 공들여 묘사한 도시의 또다른 장면은 ‘교환’이다. 이때 교환은 상품과 서비스의 시장경제적 교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도시 ‘에우페미아’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이 도시를 찾는 이유는 물품을 교환하는 시장 때문이 아니다. 가족과 연인, 소중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 갈등과 고민 등 자기만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도시에서는 만남이 이루어지고, 경험과 추억의 교환이 일어난다. 이는 거미줄과 같은 도시 ‘에르실리아’, 은밀한 길들이 가로지르는 도시 ‘에스메릴다’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저자에게 도시는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들의 망이자 다양한 길의 조합이다. 여기서 오고가는 것은 비단 물질만이 아니라 사건, 이야기, 감정과 같이 보이지 않는 것들도 포함된다. 보이지 않는 교환을 통해 도시가 더 복잡하고 견고해 진다는 저자의 도시관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종종 국내외 도시들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들을 기회를 갖는다. 도시의 어떤 모습을 어떻게 주고받을 때 도시의 모습이 잘 공유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칼비노가 전하는 메시지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언어나 수치로 표현되는 정보는 그 도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부족하다. 우리도 책 속의 마르코 폴로처럼 몸짓과 표정, 눈짓에 의존하여, 우리의 기억과 감정으로 도시를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칼비노의 글은 경험과 오감을 통한 도시 인식론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글의 강점은 도시 대한 적확하고 날카로운 존재론적 이해가 뒷받침된 글이라는 데 있다. 도시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공간이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유무형의 것들과 그 질서를 바탕으로 도시를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칼비노는 도시에 대한 인간의 기억과 욕망, 인간이 만든 기호와 여기에 부여한 의미 등을 도시의 주요한 구성으로 보고 그 교환 장소로서 도시를 파악했다. 그래서 도시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단순하고도 복잡하고 방식, 우연적이면서도 질서있는 도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일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쿠빌라이가 마르코 폴로에게 했던 요구, 체스 말과 체스 판만으로 방문했던 도시를 설명하라는 것은 도시의 본질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가 야기한 무리한 요구였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환상소설답게 그 내용과 표현이 공상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러나 그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잊혀져 사라진 도시, 꿈의 내용을 재현하기 위해 세운 도시, 기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도시 등은 언뜻 듣기에 황당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도시의 삶을 여과 없이, 오히려 정확하게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도시가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도시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켜볼 수 있다. 도시가 온몸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피라’라는 이름은 제 머릿속에 이런 광경, 이런 빛, 이런 벌레 울음소리, 누런 흙먼지가 날아다니던 이런 대기를 상기 시켰습니다. (도시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을 의미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