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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Oct 27. 2023

영화 "밀양"과 밀양방문기 - 밀향기(密鄕記)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

용서는 누구의 것인가? 용서는 누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인가? 영화 "밀양"의 주인공인 신애는 아들을 납치 살인한 도섭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그를 용서하여 그는 용서를 받았다는데, 어떻게 자신이 또다시 용서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도섭에 의해, 신애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빼앗긴 것이 되어버렸다.


도섭 :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서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애는 도섭이 아닌 하나님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목사의 설교 현장에 "거짓말이야"라는 가사가 가득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재생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미워할만한 짓만 골라서 다른 유부남과 간음을 하려고 한다든지, 자해를 한다든지.



 이러한 내용의 영화 "밀양"을 촬영지이자 같은 이름의 지역인 밀양에서 보았다. 방문한 밀양은 이름대로 따뜻한 곳이었다. 밀양시의 캐치프레이즈("해맑은 상상, 밀양")처럼 볕이 따습게 도시를 덮고 있었고, 사람들의 따스한 정(情)도 서울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정 많은 밀양 사람들은 손님이 택시를 내릴 때에도 미터기의 100원이 더 오르길 기다리지 않았고, 치킨을 배달해 주면서도 비용은 숙소 들어가서 알아서 보내달라며 재촉하지도 않았다. 별 거 아닌 것에도 밀양사람들의 소소한 정이 느껴졌다. 영화에서 종찬은 밀양이 어떤 곳이냐는 물음에 "뭐라캐야되노 뭐. 경기가 엉망이고, 인구는 많이 줄었고"라고 대답하는데, 그 말대로 줄어든 사람들끼리라도 옹기종기 오순도순 나누며 사는 볕 따스한 도시로 보였다. 끓는 솥에서 밥알들이 엉겨붙어 살아내듯한 서울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면 왜 하필 이곳 밀양에서, 신애는 아이를 잃고 용서를 빼앗겨야만 했었을까?


종찬 : 밀양이 어떤 것이냐고예? 뭐라캐야되노 뭐. 경기가 엉망이고, (중략), 인구는 많이 줄었고


 신애는 밀양의 뜻을 잘 모른다는 종찬에게 밀양이란 "한자로 비밀 밀, 볕 양. 비밀의 햇볕"의 뜻 아니냐 되묻는다. 영화는 신애의 말대로 밀양을 외지인에게는 비밀스러운 밀실로, 내지인들에게는 햇볕처럼 밝은 광장으로 그린 것처럼 보였다. 내지인들은 미용실이며 양장점이며 할 것 없이 여럿이서 몰려다니며 세상 오만사 들추어내듯 쑥덕거리면서도, 외지인인 신애를 경계하고 험담했다. 죽은 남편의 고향에 와서 산다는 것이 섬뜩하다나 이상하다나 모여서 흉을 보기도 하여, 신애가 남편 없다는 사실을 모든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 않았는가. 내가 도착한 밀양역 앞 버스정류장에서도 내지인 중년 여성 2명은 서울말 쓰는 우리 일행을 흘겨보며 경계했고, 묵고 있던 숙소의 직원도 우리에게 말하기를 숙박객에게는 넷플릭스 리모컨을 건네주기 어렵다 하였다. 밀양이 나를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소외하는 것으로도 느꼈다.

 그러나 외지인에게는 비밀이요, 내지인에게는 햇살인 것은 비단 밀양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울과 같이 외지인의 왕래가 잦은 도시가 아니고서야, 아옹다옹 도란도란 모여사는 소도시나 작은 마을에서는 바깥사람이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 "곡성"에서 작은 마을 경찰 종구가 원인 미상 사고의 용의자로 외지인을 의심하고 쫓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수많은 소도시 중에서도 영화는 왜 밀양을 골랐을까?



 내가 밀양을 방문한 이유는 밀양에서의 결혼식 덕분이었다. 처음 가본 밀양은 내 눈에 독특해 보였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인간으로 치면 심장과도 같은 위치에 섬이 있었고 섬을 중심으로 안팎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생활권을 이루고 있었다. 생긴 모양도 심장과 닮은 그 섬이 도시 사람들을 전부 보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심장 부근의 높은 곳에는 바로 영남루라는 누각이 있었는데, 영남루는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또한, 밀양의 교통은 이 영남루를 통하지 않을 수 없어 보였다. 버스를 타면 영남루를 지났고, 택시를 타도 영남루를 지났다. 밀양사람들은 밀양의 혈관을 타고 모두 심장 중의 심장인 영남루로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걸로 보였다. 그러면 밀양사람들은 영남루를 매일매일 생각하지 않을까? 굳이 그러지는 않다면 마음 한구석에는 늘상 두고 있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다. 내 벗인 밀양의 새신부도 영남루를 보러 오라 자주 말했었고, 영화 "밀양"의 종찬도 영남루를 소개하는 데에 열성이었으므로.


종찬 : 저 오른쪽에 보이는게 영남루입니다. 저게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에 하나 아입니까. 3대 누각이 하나는 영남루고, 하나는 진주 촉성루고, 또 하나는.. 뭐라카더라


 영남루에 직접 올라보니 밀양의 자랑이 무색하지 않게 밀양 전경이 훤히 보였다. 한편 누각 경내에는 조선시대에 외간 남자의 강간살해 피해자인 아랑을 모신 사당인 아랑각이 있었다. 그러면 영남루와 마찬가지로 오며가며 밀양 사람들은 아랑각을 떠올릴지 생각하였다. 밀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밀양아리랑의 연원에는 아랑의 이야기가 있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밀양사람들은 아랑각이나 아랑을 힘써서 떠올려내지 않더라도 마음속 한 켠에는 두고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영화 "밀양"의 유괴 살해된 어린 아들을 잃은 신애가 주저 앉아 우는 모습을 나는 떠올렸다. 그 위에 고통 속에 죽어간 아랑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아랑전설(阿娘傳說)은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원령이 되어 자신의 원한을 푼 뒤 변고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아랑은 경상도 밀양부사의 딸로, 이름은 윤동옥(尹東玉)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서 자랐는데, 어느 날 밤 통인(通引)과 작당한 유모의 꼬임에 빠져 달구경을 나갔다. 통인 주기가 아랑을 겁간하려 했고, 아랑은 끝까지 항거하다가 끝내는 칼에 맞아 죽고, 대숲에 버려졌다. 부사는 아랑이 외간 남자와 내통하다 함께 달아난 것으로 알고 벼슬을 사직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밀양에 오는 신임 부사마다 부임하는 첫날밤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어 모두 그 자리를 꺼리게 되었다. 이때 이상사(李上舍)라는 담이 큰 사람이 밀양부사를 자원하여 왔다. 부임 첫날밤에 나타난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죽음을 들은 그는 원한을 풀어주기로 약속하였다. 이상사는 곧 주기를 잡아 처형하고 아랑의 주검을 찾아 장사를 지내주니 그 뒤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영남루 밑에는 아랑의 혼백에게 제사지낸 아랑각(阿娘閣)이 있고, 《밀양아리랑》도 이 영남루 비화(悲話)에서 발생하였다 한다. - 위키피디아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 밀양아리랑 가사


한편으로 나는 밀양이 "밀향(密鄕)"으로도 들리기도 하였다. 사실 밀향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말이지만, "몰래(密) 고향(鄕)에 돌아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영화 탓인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영화 속 신애가 가족들 몰래 죽은 남편의 고향에 내려와 사는 것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신애는 아버지 모르게 밀양에 "밀향"하면서 서울이 아닌 어느 누구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 했었다. 마치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 속 주인공  윤희중이 무진에 내려온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밀양은 딱 신애의 "밀향"을 위한 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신애 : 난 서울이 싫어. 난 여기가 좋아. 여기가 왜 좋은지 아니?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나 여기서 새로 시작할거야.


 어느덧 밀양을 뒤로하고 나는 열차에 올랐다. 밀양이 고향인 친구를 닮아 티 없이 해맑은 결혼식은 무사히 끝이 났다. 결혼식을 떠올려보니 미소가 났다. 여느 신부답지 않게 친구는 하객을 향해 승리의 부케를 흔들며 입장했고 축가가 불러질 때에는 춤을 추기도 했다. 밀양의 볕을 받고 자란 덕인지 늘 해처럼 맑은 친구에 어울리는 결혼식이었다.

 한때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면서, 영남루를 닮은 동네 누각에 자주 드나들었었다. 동네 누각에 밤 몰래 들어가서 경찰 아저씨한테 혼나기도 하고, 누각 경내에 지난 일은 다 묻자고 정말 빛바랜 물건을 묻기도 했었다. 밀양과 친구를 뒤로하면서 생각해 보니 이런 추억들도 밀양의 볕을 담뿍 받은 그 친구의 덕 아닐까 하고, 그 친구에게 함께 지냈던 동네가 볕 따스한 밀양 같은 동네로 기억에 남았길 바라본다. 그리고 신애가 밀양으로 "밀향"하면서 아들 준과 함께 바랐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싶다.


신애 : 애아빠가 평소에 밀양 내려와서 살고 싶다고 그랬었거든요. 애는 땅에 흙 밟으면서 커야된대요. 그래서 그냥 내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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