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말을 언제부터 자주 했는지 모르겠다.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결혼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왜 안 만나? 남자에 관심 없어? 지금 딱 좋은 나이인데 왜? 더 적극적으로 소개시켜 달라고 해! 마흔 넘어가면 그때부턴 정말 힘들어진다? 다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일 것이다. 30대 중후반, 결혼을 해야겠단 생각도 없고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도 딱히 아니다. 대화를 빨리 끝내려고 '그냥 포기했다'고 말했는데그 때문에 잔소리성 조언을 한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모르겠다, 실지 나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을. 하루하루 보통 사람들처럼 출근하고 퇴근하며 구실하는 자체만으로기적처럼 느껴진다. 지금 나는 밑바닥을 다 끌어 살아가고 있다.모른다, 결혼의 마지막의 마지막 골든 타임이 지나서 언젠가 후회하게 될까. 그러나 더 이상 쓸 수 있는 마음이 없는탓에 감히 결혼이라면 할 만큼 해 봤다고 말해버리고 싶다.
사무실에서 운동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나를 예로 들며 말했다. 저도 예전에는 저런 몸이었는데, 조금씩 달라지는 몸을 보면서 운동에 조금씩 재미를 붙였어요. 여유분의 지방도, 힘줄도, 근육도 없어서 일상생활을 따라가는 것만도 벅찬 나는, 운동에 대한 기초적인 의무감조차 희박했다. 근육을 만들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지만 운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육조차 부족한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꾸준함 이상의, 재활에 가까운 판타지적인 희망이 필요한 것이다. 대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농담처럼 저는 그냥 포기했어요, 라고 말해버린 나를, 누군가가 척 끄집어냈다. 보통 포기라는 말은 잘 안 하지 않아요?잘 보여야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책 말고 좋아하는 거 없어요? 사는 게 너무 무미건조한 거 아니에요?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미건조한 삶을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매일매일의 지금이 나에게는 휴가라고, 또다시 계약이 끝나는 날에 나는 언제 어떻게 막막한 죽고 싶음 속으로 내던져질지 모른다고…….
지인과 저녁을 먹다가 받지 못한 알바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놀랍게도 나는 거기서도, '포기'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었다. 동종업계 지인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전화든지 뭐든지 해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의 너는 이렇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그제서야, 당연히 싸워서 받아내야 할 돈을 내가 '포기'했단 사실이, '포기했다'고 말하는 내가, 퍽이나 낯설어졌다. 세상의 불의에 모든 걸 걸고 악을 쓰며 싸워대던 사람과 지금의 내가 동일인이라니, 그걸 자각조차 못하고 있었다니……. 한때 내가 얼마나 미친 여자처럼 세상과 싸워댔는지에 대해 뭐라고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을 한다는 게 다 무슨 소용일까. 더 이상 누군가를 맹렬하게 불신할 힘도 없고, 멱살을 흔들며 몰아붙힐 힘도 없다고. 세상에 대한 원망 또한 누수중이라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확정된 실업, 확정된 집 없음, 확정된 배고픔. 어찌 내려놓을까. 그게 내 삶인데.포기라는 말 대신, 뭐라고번역해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