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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Aug 04. 2024

기필코 그만 읽기까지의

#일기

몸 여기저기가 기연가미연가 눅진했지만, 정확히 어디가 어떻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총체적으로 그렇게 아프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환부가 평균적으로 미열의 강도에 수렴하는 겨우 그 정도로 세상의 고통이라는 대열에 낄 수는 없는 것이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에조차 모종의 자신감이 필요한 현실에 지쳐버린 나는, 미망하리만큼 조용하게 견뎌내었다.


칠월이 그렇게 지나갔다.




이사는 환장하도록 엉망이었다. 집 구하기부터 대출, 정산, 집주인, 부동산, 날씨까지 뭐 하나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주말 알바를 마치고 밤새 곰팡이 바다 속에서 땀을 흘리며 짐을 쌌으나 집주인이 전 세입자에게 보증금 정산을 해주지 않아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삿짐을 세워두고 한없이 대기해야 했으며, 기존에 있던 가구들을 빼주기로 해놓고 연락 두절되어 밤이 될 때까지 들어갈 수도 없었다. 용달 업자는 시간 지연에 대한 추가 비용을 요구했고 부동산 중개인은 갑자기 가족이 아프다며 애초에 가고 없었다. 게다가 이사 당일에 전입 관련 증빙 서류들을 보내지 않으면 힘겹게 승인받은 대출이 취소되었기에 나는 그야말로 난장판 속에서 슬리퍼를 신고 빗속을 철벅철벅 걸어가 내가 바로 앞으로 이 집에 살게 될 사람이라고, 우거지처럼 풀죽은 심정으로 고하였다. 저녁에 연락이 닿은 중개인은 미안하게 됐으니 하루만 모텔에서 자라고 했으나, 나는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해결 방안을 내놓으라고 읍소했다. 결국 뒤늦게 출처 불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섭외해 기존 짐을 빼주었으나 내 짐을 올려줄 수 없다고 하여 한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했고, 이차저차 설치까지는 해 주었으나 그동안 깨끗하게 닦아가며 써 온 가구들이 거친 손길에 의해 함부로 상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기본적인 세면도구와 옷 따위를 다 찾지 못해 회사에 지각했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팀장님이 업무 시간은 상관없으니 나가서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이후 이사비와 복비를 정산하면서 못 주겠다 어쩌겠다 하며 기싸움을 벌였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집 한구석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이었다.




팔월이다. 여름은 한층 짙어졌고, 나는 나의 뒷면에 거칠게 스크래치가 새겨진 기분으로 매일매일 일하러 간다. 여름날 햇살 아까운 줄 모르듯이, 흔한 날들 대하듯이, 산다는 느낌 없이…… 살아내고 있다. 나로부터 얼마나 떠나고 떠났는지, 이제는 내가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생각 속에서 이른 아침, 지각 없이 출근했다. 내가 나인 것 모른 채, 흔한 여름을, 나에게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이마가 그리 뜨거운 느낌도 아니었는데 기운이 없었다. 점심을 먹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초점 잃은 눈동자에 문을 닫아주었다. 암막 같은 시야 위에 실낱 같은 스크래치들이 어지럽게 새겨졌다. 그렇다고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섬망과도 같은 착시 속에 나를 방치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선배가 병원에 다녀오라고 나를 깨우자 갑자기 와락 눈물이 났다. 저, 그렇게까지 아픈 건 아니에요…… 이 정도로는.


병원에 가는 대신 잠시 휴게실에서 눈을 붙이고 오겠다고 했다. 커튼이 쳐지고 문이 닫히자 오직 혼자가 되었다. 밀폐된 공간은 무턱대고 어두웠다. 천장 아래로 기약 없이 먼 곳까지 걸어 나가다 체념하듯 허랑허랑 걸어 돌아온 날들이 한떼거지처럼 스쳐 지나갔다. 상상이란 없었다. 내가 한때 직접 보고 듣고 맡고 만졌던─ 작약, 도라지꽃, 수레국화, 인동, 수선화, 백일홍, 로즈마리, 버드나무, 금빛 벼이삭, 얼음호수와 설강화, 그리고 다시 매화, 진달래, 꽃잔디, 살구나무, 아카시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길 위에 있었다. 그러나 단지 거기였다. 수백 일에 달하는 실업자의 시간 동안 내가 정말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고 정연해서 나는 외려 서운했고, 마침내 초라한 마음이 들어 어둠 속에서 컹컹 울고 말았다.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내가 있는 그곳이 숲이며 바다라고 자위했던 날들조차 단지 거기였던 것이다. 그토록 넓다자부했던 나의 세계가, 아는 꽃과 아는 나무의 이름을 다 불러보아도 너무도 좁게 느껴져서……


나여, 이제사 바깥의 삶에 미련이 돋아난다고 쓸 텐가. 한떼거지의 아픔을 외면하고 방 안에 틀어박혔던 지난날들에 나는 무능했다고. 비쩍 마른 채 탕아처럼 걸어 다녔던 시간이라도, 다시 붙잡고 싶다고…… 과연.




다음 날 점심시간에 선배가 알려준 병원에 수액을 맞으러 갔지만, 막상 가보니 하계 휴가였다. 실망해야 할 때에 웃음이 났다. 언제 웃어야 하고 언제 울어야 하는지, 나는 출력값이 고장 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뜨거운 도심 속을 걸어 다녔다만 삶과 한바탕 드잡이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상태였단 걸 알아줄 테지.


근방의 다른 병원에서 약만 처방받아 나왔다. 대도시 브랜드에 걸맞은 병원답게 엄청난 종류의 알약을 처방해 주었고, 나는 괴물 같은 약들이 싫었다. 받아놓고 먹지 않았다.


감기는 더욱 성화를 부렸고, 목이 끊어질 것 같던 어느 날 아침에 받아놓았던 약을 통째로 삼켰다. 몇 시간이 지나자 가공할 기운이 혈관 끝까지 파고들며 고장난 나를 요리조리 끼워맞추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기연가미연가했던 일체의 환부가 거짓말처럼 끔히 소독되며 마침내 영혼까지 펑! 뚫렸다.


아, 이게 아프지 않은 상태였구나. 아프지 않은 상태는 이거구나.


그날 이후 나는 며칠 동안 '아프지 않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 자신의 너무도 맑은 정신에 중독될 것만 같았다. 그것이 의당 병원이 나에게 내린 처방이었다.




토요일, 오랜만에 하루 쉬었다. 약은 먹지 않았다. 지독한 폭염 속에서 오후 늦게까지 시들시들하게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반신을 일으키고 한참 동안 기대어 앉아 있다가 오랫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책을 읽지 않는 상태는 이거구나…… 이게 읽지 않는 삶이구나……


읽지 않아도 삶은 얼마든지 그대로였다. 생의 환부마다 읽기라는 것을 반창고 마냥 자질구레하게 부착하고 다녔으나 사실 그만큼 흔한 처방전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었나,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나는, 책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나 자신을 몰아붙여서야 겨우 내려놓은 것 아닐까. 문장을 향한 미숙한 애착이 나를 단지 한 장의 백지 위를 맴돌게 한 건 아닐까. 가장 넓은 세계라고 굳게 믿었던 그것이, 책이라는 내가. 나라는 착각이.


그만하고 싶다.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책아, 이제 네가 나를 읽어라. 언제나 나를 너의 앞에 불러 세우지 않았더냐. 비로소 읽기를 그만두고 여기에 나, 펼쳐져 있으니.


이사를 하며 자취방 곳곳에 괴벽처럼 덧붙여 놓았던 수백 개의 시 조각들을 모두 떼어 냈다. 한때 절망적으로 매달리고 의지했던 나의 문장들. 나의 시인들. 그러나 이제 다시 붙이지 않으리. 나는 결국 어떤 문장도 기억하지 못한 채 흰 벽을 마주 보며, 새로운 백지의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 있다. 또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어디로도 돌아가지 않으리. 단지 이곳에서 이제는 읽고 싶음을 내려놓고, 먹고 싶음도 내려놓고, 자고 싶다고 쓰련다.  이상 통증하기 싫다. 그리고 통증 없음조차 스르르 잊어버리고……




(자니?)




……모른다, 이것도 한떼거지의 약발일는지, 혹은 오만일지.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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