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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00일

태양의 입구에 내려주세요

D-259

by 세라

퇴근길입니다. 서쪽 하늘 저편에 노을의 진액이 고여 있네요. 바로 저기, 태양의 입구에서 나는 내려야겠습니다. 하늘에 다다르기 전, 하차벨을 누릅니다. 지이잉. 기사님, 저는 다음 정차역인 태양의 입구에서 내리겠습니다. 미리 하차벨을 눌렀으니 헷갈리지 않으시겠지요? 언제나 그랬듯이 안전하게 정차해 주시겠지요? 아무래도 저기가 저의 종착역인 것 같아요. 기사님, 저기까지 같이 가주실 거지요?


어쩐지 오늘은 아무도 없네요. 예, 승객이라곤 저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마는요, 그래도 저기까지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나 버스 요금도 1인분만치 틀림없이 냈습니다만. 나 결코 도둑질한 적이 없습니다만. 아시잖아요, 제가 오늘 약속이 없었을뿐예요. 다들 친구를 만나랴, 저녁을 먹으랴, 여기저기서 내렸나 본데요. 평소엔 다들 저기가 종착역이지 않았습니까.


거의 다 왔네요. 곧 내릴 거라는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럴 때야말로 신호가 걸릴까 봐 괜시리 조급해지기도 한다는 거, 당해본 사람들은 아시지요? 부끄럼이야 여하한 일이니 지금은 애원을 좀 하겠습니다. 오오, 태양이여, 조금만 더 기다려주오. 아직은 저쪽으로 넘어가지 마오. 내가 이리 달려가고 있지 않소. 오늘 하루 어떻게든 견뎌내지 않았소.


두둥실……


내 몸 하늘 향해 떠오를 때……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구름 위, 태양 속으로 돌아간다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네. 나는 당신에게 내 몫만치 요금을 지불했다네. 마지막으로, 언제나 방랑하는 나에게 길을 안내해 준 세상의 모든 버스 기사님들에게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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