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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00일

중간을 잃었다

[다시, 상담일기] 1,2회차

by 세라

알코올에 절어 지내던 어느 여름밤, 나는 지난날의 내가 쓴 상담 일기를 발견했고, 혹시나 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마침 딱 청년 심리상담 프로그램 신청 기간이었다. 술김에 신청했는데 덜컥 돼버렸다. 이후 적어도 5번 이상은 '그냥 취소해야겠다'와 '아니, 가야겠다'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했다. 그러다 10월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순전히 우연히, 매우 드문 확률로, 전에 배정되었던 선생님이 또 배정되었다.


(지난번에 쓰던 상담 일기 브런치북에 이어서 정리해 두고 싶지만, 완료된 브런치북에는 글 추가 기능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다 쓰는 일기장에 이렇게 막 던져둔다.)




1회 차 때는 회사에서 현재진행중으로 연루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여기 자세히 쓸 순 없지만, 한 가지, 그는 내게 저지른 일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실은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상담을 신청한 거였는데 나는 여름이 식은 후 내 힘으로 금주를, 그것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실천하고 있다.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목적을 잃었다. 선생님은 다른 데 가서는 말하기 힘든 속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가라고 했다.




"잘 지냈어요? 요즘 기분은 좀 어때요?"


나는 웃으며 얼버무리듯 말했다.


"음, 저는 그냥요…… 다 버거워요."


그러니까 무엇이? 그냥 다. 모든 게 다. 아침에 일어나 문 밖으로 걸어 나가고, 지옥버스와 지옥철을 타고 회사에 가서 멀쩡한 척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도록, 나를 작동시키는 것. 나의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것. 내 존재에 스위치를 켜는 것.


버 겁 다 , 순간적으로 튀어나간 대답이었는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왠지 울고 싶은 마음이 돼버렸다. 내 말에 내가 휩쓸리는 건 아닌가. 나여, 울지 말자. 나는 본능적으로 내 감정을 억제시켰고, 그러므로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상담센터만큼 울어도 되는 장소가 또 없겠지만, 사람이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전 요즘 점점 이상해져 가는 것 같아요. 그냥 화가 나요. 작은 것에도 너무 화가 나요. 재수 없는 일이 꼭 저한테 다 걸리는 것 같아요. 원래의 저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 튀어나올 때도 있어요."


정말이다, 나는 요즘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던 지영이처럼,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 자신의 이질적인 모습에 흠칫 놀라곤 한다. 컵이나 그릇을 깨먹으면 맨날 이렇게 좁은 방에서 벗어나질 못하니까 여기저기 걸리고 넘어지는 것 같고, 버스 안에서는 꼭 나만 이렇게 자주 밟히고 밀리는 것 같다. 세상의 무례한 사람들은 나처럼 작은, 젊은, 착하고 만만한 인상의 여자를 우선 타깃 삼는다.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같은 상황에서 여러 명이 있으면 십중팔구 내가 걸린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나는 지나치게 가만히 있는 사람인데, 세상은 너무 가만히 있는 사람을 참아내지 못하는 걸까? 가만히 있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말하게 함으로써 그토록 천편일률적인 중도를 찾으려 하는 걸까?


그렇더라도, 나는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면이 와글와글…… 와글거려서는…… 수백 개의 자아가 마치 깔깔거리듯 불협화음으로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억울한 채로 못 살겠어, 나 이제 못 살 겠 어…… 나도 나도 나도…….


최근에는 속으로만 하던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도 있었고(당신 진짜 이상한 아줌마네요?), 공공장소에서 내가 사용 중인 기계를 갑자기 뺏아간 사람에게, 나도 말없이 다시 뺏아오는, 나로서는 엄청나게 대범한(거의 내가 아닌) 행동을 하기도 했다.(물론 그러고도 큰소리로 떠들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 건 그쪽이었다.) (선생님은 그게 좋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가만히 참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잘한 거라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서투르더라도 뭔가 대응하고, 그게 아니면 집에 와서 욕이라도 실컷 하라고 하셨다.)


회사에서는 눈을 감고 통곡을 할 정도로 억울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 말만 반복해서 했었다. "저 억울해요, 저 진짜 억울해요." 나의 억울함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나는 가슴 언저리에 자주 통증을 느꼈다. 어쩔 때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뜬금없이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리기도 했다. 친한 여직원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나 여기 있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이 모든 게 어색한 거다.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됐지? 방금 그거, 누구였지?


너…… 누구야?

(내 삶을 계속해서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친절이라는 너…… 도대체 누구야?)


나와 나 아닌 것, 그 중간을 모르겠다. 원래 알았던 것을 잊어버린 건지, 사실은 알았던 적조차 없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평생 편협하게 살아왔던 건 아닌지, 도무지 모르겠다. 최대한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는 일상에 무언가 예상치 못한 하중에 실렸을 때, 나는 그것에 더 쓸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냥 툭, 그 모든 걸 툭 놓아버리고 싶어진다. 중간을 모르겠다. 한마디로 다 그만두고 싶다, 이거다. 버거워서. 너무 피곤해서.




"희망이 없다고 느끼나요?"

"(미소 지으며) 네."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상의할 사람이 있나요?"

"아니요. (그래서 이 모양 이 지경이 된 건 아닐 거예요.)"


"내가 자살할 가능성은 0~10중에?"

"0이요. (보세요, 저 너무 정상이라 힘듭니다.)"




"제가 볼 때 그 답답함은 아주 오래됐을 것 같아요."


나는 최근 본의 아니게 연루된 사건, 그리고 좀 더 이전에 본의 아니게 연루된 사건들을 떠올렸다. 전세사기, 알바사기, 갑질, 실직, 실연, 집주인과의 갈등, 층간소음 소송, 가까운 이의 자해 등등. 그러나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된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릴 때는 어땠어요?"


선생님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생각보다 더 많이, 우리의 내면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셨다. 옛날의 나였다면 그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중간의 나는, 성인이 된 뒤에 받는 상처 또한 그 못지 않게 크다고 주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글쎄, 내가 아직 중간 부분인지 끝 부분인지 잘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나는 이상하게도 어릴 적 기억이 거의 휘발된 사람이다. 이유는 모른다. 선생님의 질문에 따라 대략 상기시켜 보면, 10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고, 초등학교 때는 이사와 전학을 자주 다니며 이미 형성된 집단에 끼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다. (그때도 사람을 어려워했다.) 나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아침에 우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그러면 그냥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한 적은 없어요?"

"네, 없어요. 아니, 그러기 전에 그냥 제가 울면서라도 학교에 갔던 것 같아요."


나는 울면서 제 발로 학교에 가는 모범생이었고, 그때도 이미 부모에게 의지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때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아이였다.) 집에서는 동생들에 비해 소외되어 있었고,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말하는 애도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생물학적 부친이 물건을 우당탕 집어던지던 기억이 좀 있고, 그와의 연은 영원히 끊어졌다. 고등학교 때도 초반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건 비슷했다. 나에겐 언제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충분히 숙성되기만 한다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무난하게 잘 지낼 수 있었고 그중 몇몇과는 깊이 교류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그만큼의 긴 시간은 잘 주어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거의. 나는 세상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했던가.


이제는 다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이사하고, 이직했다. 최근 20년 동안 도합 30회가 넘을 것이다. 그게 내가 원한 것이었는지, 흘러가는 대로 살아져 버린 결과인지, 이제는 구분도 되지 않고 구분하는 것도 덧없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우당탕 지나가 버린 한세월, 게중에 나는 도대체 언제 아이였을까? 태어나자마자 어른이 된 것만 같다. 순수한 아이의 기억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울음을 참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했던 나라는 시절이, 언젠가 있었을까?


나는 울고 싶을 정도로 회사에 가기 싫을 때도, 사기를 당하거나 폭력에 휘말려도, 제 발로 회사에 간다. 나는 아무리 살기 싫은 하루라도, 어떻게든 살아낸다. 나는 태어난 이래로 아직도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두렴과 불안을 친구 삼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심각하게 그만두고 싶어질 때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 채 독서와 음주, 다도, 음악, 산책, 자연에 파묻힌다. 몇 시간,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유령 상태로 지내다 보면 고향에서 푹 쉬다 온 것처럼 점차 안정을 되찾게 된다. 고독이란 내게 가장 안락한 장소였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기댈 곳 없었음에 내게 고향이란 '고향 없음' 그 자체다. 세상과 차단된 채 완전한 고독 속에 있는 것, 그것이 나를 가장 안정되게 한다. 고독이야말로 나를 다독여주는 나의 엄마, 나의 고향인 것이다.


긴 시간, 그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고 비싼 것을 갈구하느니 언제나 상수인 고독을 곁에 두고 의지하며 살기를 택하겠다. 기쁨도, 슬픔도, 어느새 길어진 고독과 함께 나눈다.


긴 시간.

긴 고독.




살아오면서 파격적인 선택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집도 없이 보헤미안처럼 돌아다닌다거나, 홀로 남미로 훌쩍 떠나버린다거나. 오히려 남들보다 파란만장하게 산 편에 속한다. 그러니 이 삶은 내게 내내 불편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낭만이라 칭송하는 삶의 여정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코 닿을 수 없는 별, 안정, 긴 시간은 아니었을까.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한 힘듦에 대해 얘기하다가 시간이 끝나버렸다. 주어진 6회가 짧을 듯하다. Time flies. 그 안에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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