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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07. 2024

봄날의 단상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많은 것이 변하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그만큼 변화한다는 거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을 하자면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이 천양지차로 달리 보이게 된다는 거다. 오늘 멀쩡했으므로 당연히 내일도 멀쩡한 하루를 맞이하겠거니 담보할 수 없을 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보다 절실하게 다가설 수밖에는 없다. 그게 세월일 터였고 세월의 무게이기도 하다.

초등학교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선산에 올랐다. 연분홍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산을 단장하고 있었고 나무마다 물을 길어 올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연초록의 살갗에 툭툭 불거진 잎눈이 올망졸망 키재기를 했다. 봄날이었다. 이유도 없이 한가롭다거나 빈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는 말도 안 되게 여유로움이 매만져지는 시간, 고향의 4월은 막연한 배부름이 햇살처럼 쏟아졌다.

부모님 앞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잘 자란 잔디는 생각보다 더 푹신했다. 오랑캐꽃 기다란 이파리 몇 잎엔 어김없이 보라색 꽃송이 몇 개 수줍게 매달렸다. 마른 잔디에 숨어 꽃을 피웠다. 저 좀 보시어요? 소리치지도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햇살에 스며 잎을 틔웠고 꽃을 피웠을 뿐이다. 그런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숨을 헐떡거리며 오른 산소 앞에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울긋불긋 치장을 한 학교가 예뻤다. 한때는 세상모르고 뛰어놀던 학교였다. 지금은 아름드리로 자란 은행나무 어린 묘목을 심었었다. 나무가 등치를 키우는 동안 나는 그만큼 늙어버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달래꽃 곱게 피는 선산을 몇 번이나 더 오를 수 있을까? 어머니 아버지 잠든 산에 몇 번을 더 올라 지금처럼 술 한 잔 올릴 수 있을까? 먹먹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몇 번을 뒤돌아봤는지 모른다. 세월은 무심하고 인생은 보잘것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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