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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22. 2024

오매불망!


어느 날인가부터 새벽은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길가에 늘어선 전봇대보다도 더 긴 그림자일런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한 뼘씩 야금야금 키운 키가 어느덧 하늘을 찔렀다. 새벽은 그래서 하루의 절반쯤을 차지하고도 남았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새벽을 깨우는 건 길고 지루했고 그만큼 힘겹기도 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수월할 거야. 막연한 기대에 기대어 힘을 내다가도 여전히 까만 창과 마주하는 순간에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두드려도 그랬다. 길어진 새벽을 꼬깃꼬깃 구겨 접을 수도 없었으므로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었다.

"팔자도 참.... 이번 생애에는 제대로 꼬였구나."

끌끌 혀를 찼다. 입안 가득 고인 침을 퉤 하고 뱉어냈다. 고인 침은 쓰디썼고 끈적했다. 물 몇 모금에서 태어난 놈이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올망졸망한 것들이 바짓가랑이를 움켜쥐고 매달렸고 집채만 한 것 두엇은 무등을 타고 앉아 어깨를 짓눌렀다.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다 이구동성 입을 모아 얘기했으므로 삿대질을 할 이유는 없었다. 살아온 이야기들이 깨어나 새벽 난장을 쳤지만 눈을 흘기지도 않았다. 그래,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오래된 생각주머니 하나 꺼내 들고서 두런두런 이른 수다를 떨었다. 고구마줄기였다. 줄줄이 매달린 고구마처럼  추억은 끝도 없었고 새벽은 길었다. 사소한 이야기들이야 입가에 미소 한 줌 지으면 그만이었다. 잔잔하고 고요했다. 귓전을 맴도는 노래 한 자락 흥얼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쁠 것도 없었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이야기 하나 만지작대다가 울컥 눈물을 퍼올리는 것만 아니라면 새벽을 깨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러 밀쳐두었던 생각은 눈치도 없이 슬금슬금 다가와 가슴을 수시로 찔렀다. 그게 문제였다. 생각하지 말자 다짐을 해도 하루를 지키지 못했다. 모래성이었다. 사르르 밀려드는 파도 한 조각에 맥없이 무너지는 다짐이었다. 소용도 없는 다짐이 와르르 무너지는 새벽은 그래서 징그럽고 사나웠다.

"오매불망! 그리움 밀려드는 새벽은 잔뜩 키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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