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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n 16. 2024

고향


몇 해 뒤면 수몰될 마을 복판으로 푸른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넘실대는 갈대와 머리를 풀어헤친 버드나무가 짝을 이뤄 인사를 했고 하얀 배를 들어낸 참나무들이 군무를 췄다. 여기저기 산밤나무는 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었는지 샐쭉 돌아앉아 본체만체다.

어제 흩뿌려진 빗방울에 하늘은 말갛게 멱을 감았다. 파란 하늘과 초록의 산줄기가 만나 동네 하나를 만들었고, 거기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마를 맞대고서 새끼를 낳고 부지런히 키웠다. 얼마나 이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고 자란 마을이다. 마음 같아서는 늙어 저무는 날에 수구초심首丘初心 머리를 두고 싶다만 그럴 수가 없단다. 안타깝고 아쉽다 할 밖에 달리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아름으로도 모자라게 자란 은행나무며 꽃그늘 아래 새록새록 추억이 쌓인 벚나무와도 이별을 해야만 한다. 마당 가득 복스럽던 철쭉꽃과 꽃처럼 함박웃음 지으시던 어미가 중첩되는 곳, 벚나무 그늘에 앉아 씁쓸하게 웃었다.

아주 오래전 아비가 손수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렸던 집 마당엔 서너 길 깊이의 우물 하나 맑은 물을 연신 내어줬다. 두레박 가득 우물물을 퍼올려 등목으로 더위를 식히던 여름이 아득히 그리웠다.

"깨끗한 새집에서 한 번 사셔야죠!"

손때 묻은 구옥을 허물던 날 어미는 한바탕 눈물을 훔치셨다. 좋던 나빴던 켜켜이 쌓인 추억이 사라진다는 건 늙은 어미에겐 눈물바람이었다. 마당에 앉아 나도 울었다. 어디 어미에게만 눈물바람일까.

고갯마루에 올라 바라보던 마을은 언제나 그리움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진대 더는 바라볼 마을이 없단다. 댐이 세워지고 마을 복판을 흐르던 개울물이 마을을 집어삼키려면 아직은 몇 해쯤 남았겠지만 벌써부터 서운하고 아리다. 고향집 마당엔 종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너무 서운해 마라. 토닥토닥 등을 토닥여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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