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할머니는 마당의 잡초를 뽑고 있었고 어린 손주는 곁에서 빙빙 맴을 돌았다. 댓돌에 내려앉은 햇살은 5월의 바람처럼 투명했고, 화로에 남은 잔불처럼 따뜻했다. 한낮의 시간은 무료하리 만큼 한가롭고 느렸다. 마을을 관통하는 신작로에 먼지 풀썩이며 오가던 자동차도 종적을 감췄다. 고작해야 하루 몇 번에 그치는 버스며 전방으로 향하는 군용 트럭이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끊긴 듯한 날이면 안개처럼 드리워진 정막이 징그럽기까지 했다. 북상하는 봄을 따라 찾아든 새들이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인적 드문 나뭇가지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둥지를 틀었지만 잔뜩 심통 난 꼬마에겐 시끄러운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부뚜막을 차지한 늙은 고양이는 천 근 만 근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고,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바둑이는 김매는 할머니의 옷자락을 물고서 겅중거렸다. 강아지와 다르지 않았다. 할미의 옷자락에 매달려 겅중거렸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다 보면 할미마저 눈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덩그마니 남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찰싹 들러붙어 재잘거렸다.
"할머니, 할머니? 이건 뭐예요? 아, 그렇구나....."
눈에 뵈고 들리는 모든 것들이 궁금할 나이였고, 그래야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봄을 준비해야만 하는 어른들에게야 짧은 해였지만, 마당을 종일 오가며 하루를 보내야만 하는 꼬맹이에겐 결코 짧지 않았다. 안마당에서 바깥마당으로 강아지와 뜀박질을 하다 지치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개미구멍을 후벼 파기도 했다. 꼬물꼬물 까만 개미 몇 마리 줄을 지어 기어 다녔다. 미동도 않고 개미들 노는 꼴을 지켜보다가 개미 한 마리 냅다 잡아서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톡톡 손가락으로 건드려도 보았다. 놀란 개미가 달아나려 하면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길을 막았다.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개미의 발이었지만 손바닥이 제법 간질거렸다. 바깥마당 한 구석엔 커다란 대추나무 한 그루와 대추나무에 기댄 널따란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 언저리엔 개미구멍이 있었다. 좀처럼 할미의 치맛자락에서 떨어지지 않던 꼬맹이가 유일하게 움켜쥐었던 치맛자락을 놓는 시간은 개미구멍에 정신이 팔리는 때였다.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며 개미들을 구경했다. 죽은 개미를 물고 가는 개미가 있었고 하얀 유충을 물고 가는 개미도 있었다. 때로는 이사라도 가는 건지 줄줄이 늘어선 개미들이 화단을 가로질러 철쭉꽃 탐스럽게 피는 마당 구석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여름 내내 구슬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일하는 성실함의 대명사가 개미라지만, 길게 이어진 행열을 보고 있으면 빈 손으로 빈둥대며 대열을 따라가는 개미도 있었다. 마실이라도 다니는 것처럼 하릴없는 걸음이 우스꽝스러웠다. 빈둥빈둥,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온갖 참례질에 해가 졌다. 그러고는 이사를 마친 개미굴로 돌아가 짐짓 모르는 척 얼굴색을 바꾸고 이마에 땀을 훔칠지도 모르겠다. 그런 개미들이 재미있었다. 무엇이든 금방 싫증을 내는 꼬맹이였지만 어쩐 일인지 개미를 구경하는 것만큼은 좀처럼 싫증을 내지 않았다.
때를 놓치면 낭패를 보는 일이 농사일이다. 오늘이 번거롭고 귀찮다고 해서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온갖 아양을 떨고 사정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계절이 사람을 기다려주는 일은 없었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거둬들여야만 아궁이에 군불 지펴가며 겨울을 살아낼 수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대로 허리 한 번을 펴지 못해 앓는 소리를 하다가도 흰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겨울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고서 봄을 기다리고는 했다. 좁은 방에 갇혀 긴 겨울을 보내다 보면 온몸에 좀이 쑤셨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창문을 빼꼬미 열어 봄을 기다렸다. 그런다고 기척도 없는 봄이 얼굴을 내미는 일이 없다는 걸 모르지도 않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먼산 고갯마루를 넘겨다 봤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눈코 뜰새 없는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길게 기지개를 켜고서 해토한 논이며 밭에 거름도 내어야 했고, 겨우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소의 고삐를 틀어쥐고 쟁기질을 해야만 했다. 이랴 이랴.... 어디 어디.... 소를 다그치는 사내의 목소리가 산비탈 밭에서 쩌렁쩌렁 길게 이어졌다. 알아서 일을 찾아야 했다. 남정네와 아낙네가 따로 없었다. 젖먹이를 둔 아낙도 예외일 수가 없어서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면 하다못해 마른 덤불 우거진 밭두렁에 쥐불이라도 놓아야만 했다. 농번기에는 그래서 아궁이을 지키고 있는 부지깽이도 허리 펼 틈이 없었고, 부뚜막을 차지하고 있던 고양이도 품을 보태야만 했다. 모두가 종종걸음으로 마을을 오갔다. 허리 곧게 펴고서 마을을 어슬렁댈 수는 없었다. 쳐다보는 눈이 무서워서라도 잰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동네 아낙들의 입방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온몸을 흠씬 두들겨 맞아 초주검이 될지도 몰랐다. 보는 눈이 매서웠고, 말하는 입이 무섭기까지 했다. 작은 산골마을은 엉덩이 서넛 들이밀면 더는 앉을자리가 없듯이 말은 언제나 사람의 걸음보다도 빨리 사랑방을 차지하고 수다를 떨었다.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서기 전 어미는 낫을 들고 개울가로 나갔다. 한참 물이 올라 이파리가 돋아난 버드나무 얇은 가지 하나를 베었다. 버드나무는 가지며 이파리 모두 초록이 물들어 있었다. 봄이 한창일 때 물오른 버드나무를 비틀면 나무와 껍질이 손쉽게 분리됐다. 비튼 버드나무 가지의 한 끝을 손에 꼭 쥐고 껍데기를 잡아당기면 나무는 옷을 벗듯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벗겨진 껍데기를 손가락 크기로 자르고, 잘라낸 한 끝을 조금 벗겨내면 버들피리가 완성됐다. 삐익 삑.... 그저 단순한 그 소리가 좋아서 종일 삐익 삑 지치지도 않고 불었다. 종일 집을 비워야만 하는 어미는 낫을 움켜쥐고서 거친 손마디 위에 버들가지를 올려놓고 피리를 만들었다. 하나, 둘, 셋, 넷.... 하얀 사기 사발 내어다가 한가득 물을 붓고 버들피리 서넛 동동 띄워놓고서 사립문을 빠져나갔다. 어미를 대신해 꼬맹이를 달래줄 버들피리였다. 버드나무 껍질이 마르면 더는 소리가 나지 않아 소용이 없었다. 정안수 한 그릇 곱게 떠놓서 안녕을 빌던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하얀 사발에 동동 떠다니던 버들피리는 그래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마르지도 않고 맑게 울었다.
"엄마 금방 다녀올 테니 할머니랑 놀고 있어. 울지 말고.... 알았지?"
"네, 엄마...."
아이는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지만 울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신 온종일 강아지처럼 겅중겅중 할미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응석을 부리고 수다를 떨었다고 했다. 짝을 찾는 할미새처럼 어찌나 수다스럽던지 무던히 듣고 있던 할미가 혀를 내두르며 그랬다고 했다.
"요 녀석은 누굴 닮아 이렇게 수다스럽누? 이다음에 뭐가 되려나 모르겠네!"
놀다 지치면 어미 멀어진 고갯마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업어달라 보채기도 했을 터였다. 그럴 때면 할미는 꼬맹이의 등을 쓸어주며 사발에 동동 떠다니는 버들피리 하나 꺼내 입에 물려주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자장자장 잘도 잔다' 깡마른 할미의 등에 업혀 이제나 저제나 어미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봄날이 버들피리처럼 삐익 삑 울었다. 그 소리에 놀란 개미 한 마리 가던 길을 멈추고 빤히 바라보았다. 댓돌 밑에서 졸던 바둑이가 친구 되어 멍멍멍 울었다. 먹는 둥 마는 둥 물에 만 밥은 모래처럼 까끌거리고, 남자는 여전히 봄이 되면 물오른 버드나무를 찾아 개울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녹이 벌겋게 슨 낫은 얇은 나뭇가지 하나 제대로 베지도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