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를 끼고 난 길은 실타래처럼 길게 이어졌다. 굽이굽이 개울을 따라 이어지다가 올망졸망 이마를 맞댄 마을을 매달고 내달렸다. 고구마 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작은 마을 몇 개가 골짜기에 기대 자리 잡고 있었다.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로 뿌옇게 들어차던 몇 평 하늘은 그래서 맵고 시렸다. 아궁이 가득 잔가지를 꺾어 넣으며 밥을 짓던 아낙네는 그제야 바쁜 하루를 마감했다. 쉬익 쉬익 무쇠솥이 숨을 뿜으면 꺼멓게 그을린 고무래로 알불을 긁어냈다. 무쇠솥의 밥은 불을 긁어내고 뜸을 들였다. 깜빡 딴생각이라도 할라치면 밥은 금방 숯검댕이가 되고 말았다. 타다 남은 불과 시뻘건 숯불을 적당히 긁어내고서 뜸을 들였다. 그래야만 타지 않고 누룽지가 눌어붙었다. 밥을 다 먹어갈 때쯤 내어놓는 숭늉은 구수하고 시원했다. 어쩐지 시원하게 숭늉으로 입가심을 해야만 제대로 밥을 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누룽지의 힘이었다.
대접 가득 밥을 눌러 담아도 하루 종일 노동에 주린 배는 한 번 마다하는 기색도 없이 게 눈 감추듯 뚝딱 먹어치웠다. 시장이 반찬이었고, 고된 노동이 반찬이었다.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식구 중 그 누구도 반찬 타령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게 부족하고 형편없는 시절이었지만 숭늉 한 대접에도 두런두런 이야기가 넘쳤다. 밥상을 물리고 담배도 한 개비 태운 아비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드렁드렁 코를 골았다. 뒤척임도 없었다. 힘들고 고단한 하루였지만 뭉근히 데워진 방바닥에 몸을 뉘이면 그만이었다. 봄볕에 잔설이 녹듯 하루의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따뜻하게 데워진 구들장처럼 좋은 명약은 없었다. 굽은 허리가 절로 펴지고 거친 손바닥이 섬섬옥수로 탈바꿈하는 기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는 바랄 것도 없었고 모자람도 없었다. 아이들은 올망졸망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수다를 떨었고, 백열등 하나 천장에 매달려 저 홀로 어둠을 밝혔다. 뭐가 그렇게 재밌고 우스웠던지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곁에서 멀뚱이 듣고 있던 꼬맹이도 덩달아 같이 웃었다. 부엌에선 달그락달그락 어미의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에 질세라 아비는 장단이라도 맞추듯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커다란 눈망울에 속눈썹이 긴 누렁이는 서글서글한 얼굴이 참 착하기도 했다. 입을 이죽거리며 여물을 씹을 때면 특히나 더 착하고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독오독 갈대라도 씹을 때면 어찌나 먹는 소리가 맛있게 들리던지, 입이 미어져라 풀을 물고는 누렁이처럼 오독오독 씹고 싶을 정도였다. 먹는 모습이며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좋아서 미처 손에 든 삼태기도 내려놓지 못하고 여물통에 기대 바라보고는 했다.
누렁이의 아침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동이 뿌옇게 트는 시간이면 삼태기 가득 여물을 눌러 담아 여물통에 부어주고는 시원한 물도 두어 두레박 길어다가 부어주었다. 긴 꼬리를 연신 휘둘러 등에를 쫓아내면서도 볼때기가 불룩하게 여물을 씹었다. 오독오독 주룩주룩, 씹고 마시는 소리는 세상 둘도 없는 이야기였고 노래였다. 그 모습이 좋아서 꼬맹이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가며 몰래몰래 꼴을 베었다. 부드럽고 먹음직한 풀을 골랐다. 이왕이면 맛있는 풀을 먹이고 싶었다. 억새 지도 않고, 너무 쓰고, 떫지도 않을 풀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논에 물을 대는 도랑가에는 늘 연하게 자란 풀이 가득했다. 어설프게 날을 세운 낫이었지만 아직 낫을 들기에는 꼬맹이는 말 그대로 꼬맹이였다. 뒤춤에 낫을 감추고는 꽁지 빠지게 집을 벗어나 달음박질쳤다. 그렇게 어른들의 눈을 피해 꼴 한 단 낑낑대며 베어다가 누렁이에게 주었고, 누렁이는 꼬맹이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참 맛있게도 먹어주었다. 아이 팔뚝만 한 긴 혀를 갈고리처럼 내밀어서 덥석 덥석 베어 무는 모양이 보기에 좋았다. 어떤 날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개미구멍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것처럼 오늘은 누렁이에 빠졌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길을 터벅터벅 걸어올 때면 아비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왔다. 무슨 노래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나지막이 입술을 겨우 빠져나온 노래는 웅웅웅 바람소리를 닮았다. 갈대 우거진 풀숲을 빠져나오는 서걱거림 같았고, 솔잎을 어루만지며 불어 가는 소낙비와도 닮았다. 하루의 고단함이 잔뜩 들러붙은 졸린 눈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때로는 가볍고 경쾌하게 담장을 뛰어오르던 고양이의 발걸음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되었든 거기에는 하루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차곡차곡 쌓여 이끼처럼 자라고 있었겠지만 누렁이를 앞세우고 돌아오는 걸음에는 콧노래가 한 자락 매달려 까불거렸다. 들릴 듯 말 듯 입술이 들썩이고, 알 듯 말 듯 한 노래는 목마를 탄 아이처럼 수다스러웠다.
일을 마치고 쟁기에 묻은 흙을 털어낼 시간이면 누런 양은 주전자 가득 막걸리 한 됫박과 김치 몇 조각 쟁반에 받쳐져 나왔을 거였다. 흙먼지 풀썩이는 밭을 갈자면은 목구멍에 쌓인 먼지가 못해도 한 줌은 되고도 남았을 테고, 먼지를 씻어내는 데에는 막걸리 한 사발이 제격이라며 밭뙤기의 주인은 막걸리를 내왔을 게 분명했다. 아비는 분명 막걸리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곁에서 멀뚱멀뚱 풀을 뜯는 누렁이를 불러 놓고 남은 막걸리를 따라주었을 터였다. 너도 한 사발 나도 한 사발 공평하게 마시자꾸나. 말 잘 듣고 머리 영특한 소는 주인을 따라 일을 배우고 봄이면 쟁기를 끌며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렇게 일을 가르친 소를 앞세우고서 아비는 봄이면 산비탈을 누비며 쟁기질을 했다. 일소가 없어서 밭을 일구지 못하는 이웃의 밭을 며칠이고 갈았고, 틈틈이 집안의 논이며 밭을 갈았다. 겨우내 오동통 살이 오르고 윤기가 흐르던 소는 봄을 지나면서 눈에 띄게 살이 빠지고 털이 푸석해졌다. 사람도 그랬고 소도 그랬다. 봄이면 언제나 이른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면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기울어야만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눈을 떴을 때부터 잠들 때까지 누렁이와 함께 일을 하고, 누렁이를 친구 삼아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니 고단함을 달래주는 막걸리도 같이 나눠야만 했다. 커다란 눈을 꿈뻑이던 누렁이도 결코 사양하지 않았다. 아비가 따라준 막걸리를 벌컥벌컥 시원하게도 마셨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지만 녀석도 어지간히 고되고 힘든 날들이었을 터였다. 넉넉하게 막걸리를 받아온 날에는 그래서 아비도 취했고, 누렁이도 덩달아 취해 건들건들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흠뻑 땀에 젖은 누렁이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이놈아? 그만 집에 가자. 응, 어서 가자!"
지게 위에 쟁기를 올려 짊어지고는 지게 작대기 툭툭 치며 재촉을 하면 누렁이는 저 먼저 알고 길을 잡았다. 굳이 이리로 가라 고삐를 당기지 않아도 집을 알았고 길도 알았다. 터벅터벅 뚜벅뚜벅 해걸음에 걷는 걸음은 무거웠지만 적당히 취기가 오른 두 친구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한낮이면 먼 언덕에 아지랑이 아롱아롱 흔들렸고, 저녁이면 누렁이와 아비가 아지랑이처럼 고갯마루에서 흔들거렸다.
"누렁아? 어여 집에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