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역 카페
오랜만에 책이 읽고 싶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렸다. 서점 한 바퀴를 돌며 읽으려던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 그리고 표지가 예쁘던 에세이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서점 한 귀퉁이에 앉아 책을 조금 읽다 가려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주변 카페를 찾을 겸 교보문고 밖을 나와 걸었다.
아이들의 장난치는 소리와 책 냄새 가득한 곳을 벗어나 걷자, 황금색의 D 타워가 보였다. 예전에 친구와 밥 먹으며 봐 두었던 카페가 생각나 발길을 재촉했다.
호주식 브런치 카페인 bills
빌즈 안으로 들어서자 큰 창으로 흘러 들어온 햇빛에 좀 더 청순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에메랄드 색 의자, 핑크빛이 드는 대리석 테이블, 고급스러운 골드 페퍼 빌, 안 어울릴듯했지만 채도 높은 소품과 옆에 올려진 오렌지가 감각적인 느낌을 더해주었다.
점심을 걸렀던 터라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하는 리코타 핫케이크를 주문했다. 핫케이크의 온도에 녹아내리는 허니콤 버터 위로 메이플 시럽을 뿌리자 기분마저 달콤해졌다. 몽글몽글한 식감 속 느껴지는 리코타 치즈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먹으며 책을 읽으려 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랜만에 온전히 먹는 것 아니 맛보는 것에 집중했다.
핫케이크를 먹고 빠져들듯 책을 읽었고 고개를 들었을 때 햇살이 감싸던 공간엔 반대편 건물의 조명과 빌즈 안의 고급스러운 조명이 어우러져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만 일어날까 생각하던 중 옆 테이블에 남녀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보아도 첫 만남인 남녀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중이었다. 곧은 자세인듯하지만 약간은 앞쪽으로 몸이 쏠려있는 남자는 여자가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예전에 소개팅 했던 남자가 생각나 커피 한잔을 더 주문했다. 그때의 나는 좀처럼 상대에게 집중되지가 않았다.
소개팅, 미래를 전제로 만나는 관계. 다른 언어를 사용해 너는 나의 미래에 어떤 존재가 될 테니라고 묻는 시간. 옆 테이블의 남녀는 내가 오늘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르듯 서로가 가진 의미를 맞춰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리코타 핫케이크를 받아 들었을 때처럼 상대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정하는 중일 것이다. 저 둘은 이 공간을 나서는 순간 결정할 수 있을까?
결정했다면 집중할 것. 시간의 흐름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대에게 그리고 사랑을 하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커피는 조금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빌즈는 영화 캐롤과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