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프로젝트]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역삼역 카페

by 명조

일요일, 출근을 했다.

늘어지게 자겠다고 마음먹고 자는데 아침에 걸려온 상사의 업무 전화에 회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명조씨~ 부탁해!

급한 일도 아니건만, 상사는 얄밉게도 기어이 나를 회사로 불러드렸다.


P_24-225x300.jpg 회사 건물 밖

사무실로 들어와 모니터를 켜며 앉았다.

나와 같이 출근한 이들의 신경질적인 타자 소리에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메일을 확인하다 더 이상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없겠다 싶어 급하게 노트북만 챙겨 회사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직 5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날씨는 또 왜 이리 더운지 숨이 막혔다.

주변 카페나 가자 싶어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멍 때리며 걷다 먹자골목을 지나 주택가까지 들어서게 되어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색다르다 싶은 주택을 발견했다. 카페였다! 저곳이다 싶어 걸음을 서둘렀다. 돌과 올리브 그린색의 천막 그리고 크고 작은 화분들이 입구에 놓여져있었다.


S_2-2.jpg 카페 413 프로젝트 외관


어서오세요. 친절한 직원의 인사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카페 분위기에 일그러졌을 내 표정이 조금은 펴졌으리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오렌지쿠헨 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고 왼쪽을 슬쩍 보던 순간 시선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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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럽다!’ 투박한 철제 선반과 얼음과 함께 있는 맥주, 잎 사이사이로 빛이 든 이름 모를 식물을 보는 순간 치밀어 오르던 감정이 모두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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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친절하게도 음료는 가져다주신다는 직원분 말씀에 카페 1층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로스터기와 8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는 넓은 소파, 작은 화분들이 어우러졌다. 2층까지 넓게 뚫려있는 천장 덕분에 내 마음도 조금 뚫리는 듯했다.

1층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2층에 자리를 잡으려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 눈앞에 꽃 길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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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칸씩 계단을 오를 때마다 1층과는 또 다른 2층이 한 발자국씩만큼 보이기 시작했다.마치 비밀의 화원 같았다.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고 잠시, 잊고 있던 일을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커피와 데워진 오렌지쿠헨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고, 아메리카노의 산미와 향긋한 오렌지쿠헨의 조합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입안이 행복했고, 그 순간 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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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오늘 귀찮음과 피곤함을 이겨내며 출근한 것도, 사무실이 참을 수 없어 노트북을 챙겨 밖으로 도망친 것도, 이 카페에 온 것도, 상사의 요구에 따른 것도 나는 틀리지 않았기에 화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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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Bluebird, Paul McCartney-This Never Happed Before, Sweet & Holy Gift-We Are One, Aversion Extra Edition-Take A Picture 잔잔한 노래가 순서대로 흘러나왔고 집중하는 어느 순간 음악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모두 녹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오늘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다.

네, 말씀하신 자료 수정해서 메일로 보냈습니다. 아니에요.
아, 회사 근처 괜찮은 카페를 찾았어요. 다음에 같이 와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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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에밀리 대사를 읊조렸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얄밉지만 나의 상사에게 분명 배울 점이 있고, 그저 나의 진심을 스스로 알아차려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을 나오면서 딱 작년 이맘때쯤 떠났던 스페인 론다가 떠올랐다. 카페 413프로젝트는 론다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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