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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조 Jul 05. 2016

[빌즈] 분위기 좋은 곳에서 소개팅 할 때

광화문역 카페

오랜만에 책이 읽고 싶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렸다. 서점 한 바퀴를 돌며 읽으려던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 그리고 표지가 예쁘던 에세이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서점 한 귀퉁이에 앉아 책을 조금 읽다 가려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주변 카페를 찾을 겸 교보문고 밖을 나와 걸었다.

아이들의 장난치는 소리와 책 냄새 가득한 곳을 벗어나 걷자, 황금색의 D 타워가 보였다. 예전에 친구와 밥 먹으며 봐 두었던 카페가 생각나 발길을 재촉했다.



호주식 브런치 카페인 bills

빌즈 안으로 들어서자 큰 창으로 흘러 들어온 햇빛에 좀 더 청순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에메랄드 색 의자, 핑크빛이 드는 대리석 테이블, 고급스러운 골드 페퍼 빌, 안 어울릴듯했지만 채도 높은 소품과 옆에 올려진 오렌지가 감각적인 느낌을 더해주었다.


사진출처(@ssung_d, @yeg.k)


점심을 걸렀던 터라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하는 리코타 핫케이크를 주문했다. 핫케이크의 온도에 녹아내리는 허니콤 버터 위로 메이플 시럽을 뿌리자 기분마저 달콤해졌다. 몽글몽글한 식감 속 느껴지는 리코타 치즈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먹으며 책을 읽으려 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랜만에 온전히 먹는 것 아니 맛보는 것에 집중했다.


사진출처(@sieym)


핫케이크를 먹고 빠져들듯 책을 읽었고 고개를 들었을 때 햇살이 감싸던 공간엔 반대편 건물의 조명과 빌즈 안의 고급스러운 조명이 어우러져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사진출처(@musesong, @29.fevrier)


이만 일어날까 생각하던 중 옆 테이블에 남녀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보아도 첫 만남인 남녀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중이었다. 곧은 자세인듯하지만 약간은 앞쪽으로 몸이 쏠려있는 남자는 여자가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예전에 소개팅 했던 남자가 생각나 커피 한잔을 더 주문했다. 그때의 나는 좀처럼 상대에게 집중되지가 않았다.



소개팅, 미래를 전제로 만나는 관계. 다른 언어를 사용해 너는 나의 미래에 어떤 존재가 될 테니라고 묻는 시간. 옆 테이블의 남녀는 내가 오늘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르듯 서로가 가진 의미를 맞춰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리코타 핫케이크를 받아 들었을 때처럼 상대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정하는 중일 것이다. 저 둘은 이 공간을 나서는 순간 결정할 수 있을까?

결정했다면 집중할 것. 시간의 흐름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대에게 그리고 사랑을 하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커피는 조금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빌즈는 영화 캐롤과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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