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2017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매력은 대화에 있다. 영화의 대화는 정돈되어 있지 않게 느껴진다. 어떤 말은 메아리처럼 돌아오거나 잘 전달되지 못해 인물들 사이에 흩뿌려지고 대화 사이는 불규칙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인물들이 내뱉는 문장은 시종일관 한 번에 끝 맺히지 않는다. 말하자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대본은 매끄러운 대화, 정확히 전달하는 ‘말’을 지향하는 글쓰기는 아니다. 배우들이 대단한 발성으로 전달하는 대사들은 명확히 우리 귀에 들어오지만 어쩐지 인물들의 생각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게 느껴진다. 영화는 그 어색한 순간들을, 어딘가 빠진 그 상태를 온전히 보여주려는 듯 아무런 건드림 없이 고정된 움직이는 사진처럼 그것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현실 속 대화들과 닮아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대화들은 물리적인 신체 거리만큼, 결코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없는 인간들 사이의 빈틈을 숨기지 않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자신의 상황에 대한 홍상수 감독의 변명으로 읽기란 아주 쉽다. 현실의 상황과 매우 닮아있는 영화와 그것을 이루는 날것의 대화들은 영화를 현실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기 아주 쉽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현실이 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영화는 지금 보이는 것이 현실이 아님을 제시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현실과 꿈의 경계, 현실과 너무나 닮았지만 결코 현실이 되진 못하는 영화라는 것을 생각하다 <인셉션>이 생각났다. 홍상수의 영화와 전혀 대칭적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인셉션>은 꿈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면서 여러 장치를 이용한 촬영으로 꿈이라는 이미지 자체를 구현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또한 현실과 꿈의 경계를 오가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특별한 장치 없이 줌-인, 줌-아웃 하나로, 기이한 검은 옷의 사나이의 존재 하나로 긴 대화가 오가던 장면들을 낯설게 하며 현실과의 괴리를 불러일으키고 결코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하지만 또한 결코 꿈만은 아님을 보인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장면들을 구분 짓는다면 대화들의 장면, 그리고 영희(김민희)가 혼자 남게 되는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말’들로 꽉 채운 장면이라면 후자는 김민희가 그리는 영희라는 존재 하나로 채워진다. 홍상수의 롱테이크 대화들은 인상적이고 흡입력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결국 홀로 있는 영희로 돌아온다. 모든 것을 겪으며 혼자 무심히 음악을 연주하는, 다리를 건너기 전 문득 절을 하는, 담배를 피우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쪼그리고 앉아 꽃을 어루만지는, 해변에 누워있다 혼자 해변을 걸어 나가는 영희의 순간들에서 영화는 가장 충만해지며 조곤조곤 얘기하다가 갑자기 폭발하듯 말하던 대화 속의 영희보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아무런 대사 없이 더 많은 것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영희가 홀로 화면에 비칠 때 그녀는 지금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dagio의 선율이 주 테마에서 조금씩 변주되며 진행되듯, 가끔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며 때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그런 계단을.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그런 영희를 지긋이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