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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석 Jun 05. 2017

인간과 환경, 그 사이를 고민하는 시선들 (1)

제 14회 서울환경영화제

당신과 내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서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것과 우리의 관계는 지금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5월 18일 이화여대에서 개막작 <유령의 도시>와 함께 문을 연 서울 환경영화제가 24일 <종말의 시대>와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브런치 패스’를 통해 영화제 프레스 아이디를 발급받을 수 있었던 나는 주로 학교 수업 이후의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영화들과 만났다. 환경, 특히 환경운동에 무지한 나에겐 단어들을 생각하면 통상적으로 떠오르는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있었다. 무심결에 그런 이미지들을 기대하며 만난 15개의 작품들은 그런 이미지들에 갇히지 않는, 더 큰 맥락 속의 환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배경이 되는 ‘환경’, 영화들 속 카메라는 환경을 고민하다 필연적이라는 듯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었고 그 공간에서의 상호작용, 나아가 삶 자체를 탐구하고 있었다. 그러한 고민들과 마주하는 것, 영화라는 형태로 감독들이 탐구한 ‘환경과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두근거리는 경험이었다. 단편들을 포함한 총 51개의 작품들을 모두 만나지 못한 것은 굉장히 아쉽지만 이 글을 빌려 내가 만날 수 있었던 15개의 작품들을 통해 느꼈던 두근거림 들을, 그들의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5/19 <올 리브 올리브> 김태일, 주로미

<올 리브 올리브>는 영화제에서 첫 번째로 만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수업 때문에 개막일인 18일에 상영된 영화들을 볼 수 없었고, 19일엔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시간대의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동시간대 다른 작품과 고민한 끝에 <올 리브 올리브>를 보았다. <올 리브 올리브>는 이스라엘의 점령촌이 점점 늘어나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공간 속에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져준 올리브 나무는 그들이 자랑스럽게 역사를 얘기할 수 있는 그들의 땅 위에 계속해서 열매를 맺어 가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왕래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대에 허락을 맡아야 하며 정해진 시간 동안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영화는 올리브 농사를 짓는 위즈단 부모님의 모습뿐 아니라 점점 척박해지는 자신들의 공간에서 계속해서 노동을 하고, 기도를 하고, 서로를 돌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소개하듯 비추며 절망적인 상황보다는 그 안에서도 빛나는 삶의 힘을 보려 주려 한다. “당신들은 정말 이 땅이 누구의 땅이라고 생각하나요?” 올리브 농사를 짓는 농부는 인터뷰 도중 카메라 뒤 감독들을 향해 질문한다. 그 장면에서 감독들은 즉각적으로 대답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지만, 나무를 계속해서 뽑고 태우는 외부의 힘에서도 계속해서 열매를 피워내는 올리브 나무가 대답을 대신해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후 김태일, 주로미 감독님들과 함께 얘기를 할 수 있는 guest talk가 있었다. 가족이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가서 그곳의 삶들과 만나려고 한 노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는 감독님들을 보며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졌던 카메라의 시선들이 그 삶들에 대한 감독님들의 애정에서 나온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리브 올리브>는 감독님들이 기획한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본인들도 이 시리즈를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로 하긴 했지만 그들이 담는 ‘민중의 삶’의 모습을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5/20 <울림(Resonances)> Jeon-Julien Pous,  <랫 필름> Theo Anthony

사실 아침부터 시간이 되는 주말을 이용하여 하루 종일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나 너무나 게으른 나 자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한번 틀어진 계획과 한심한 내 모습 때문에 그냥 집에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다행히 몸을 움직여 나갈 수 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인 <울림>을 만날 수 있었다.     

<울림>은 제주도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와 프랑스 산마을에서 젖을 짜고 치즈를 만드는 양치기의 삶을 담는다. 영화는 이들의 삶을 교차해서, 때론 화면의 분리를 통해서 동시에 보여주는데 이 부분에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정중앙을 정확히 분리해서 왼쪽에는 양치기의 모습을 오른쪽에는 해녀의 모습을 담는 화면은 자칫 굉장히 난잡하고 집중할 수 없는 구도라고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두 개의 삶을 노동이라는 공통된 역동성으로 하나로 묶으려 하였고, 이 시도가 단절된 화면을 하나의 움직임으로 나아가게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굉장히 놀랍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이 외에도 물속에서의 해녀들의 움직임을 담은 장면, 양치기가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장면에서의 움직임 등이 인상에 남았고 환경과 하나 되어 노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인 음악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울림>은 원래 상영용이 아니라 전시회에서 전시를 목적으로 한 영상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실험적이게 느껴지는 화면과 이미지로서 이야기를 하는듯한 다큐멘터리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Guest talk에는 감독님과 음악감독님이 함께 하셨는데 감독님이 큰 스크린에서의 상영이 처음이라 음향적인 부분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고 하시는 게 재밌었다. 각각 분리된 화면 속 움직임의 역동성이 화면 가운데 투박하게 나눈 선을 삼키는 모습은 계속해서 종종 생각이 날 것 같다.     

<울림>을 보고 난 후 간단히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고, <랫 필름>을 보았다. <랫 필름>은 단순히 영화를 소개하는 글의 쥐들이 모여 있는 이미지가 관심을 끌어서 보게 되었는데 영화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다. 영화는 인간이 쥐를 가지고 벌인 실험의 역사와 현대 도시 속에서 쥐가 가지는 여러 인식들을 따라간다. 언뜻 연결고리가 없는 것 같은 이미지들을 나열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 자체도 인상적이었고 스릴러처럼 긴장감을 조성하다가도 감정하나 없는 나래이션과 함께 시뮬레이션을 보여주고, 쥐를 대하는 인간들의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뱀의 먹이가 되는 쥐를 보여주는, 몰아치는 리듬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이미지들을 나열하며 직설적 은유로 넘쳐나는 영화는 막바지에는 그 상징들의 과함에 약간 지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환경에 따라 다른 존재가 되는 쥐들을 탐구하며 결국에는 인위적으로 그어지는 선들이, 조성된 환경이, 인간과 쥐에게 가지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설득력 있으면서 흥미로웠다.  다시 한번 차분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영화다.     


5/21 <다이버> Esteban Arrangoiz, <핵의 향연> Smriti Keshari, Eric Schlosser, Kevin Ford

         <너의 작은 노랑 장화> John Webster, <유령의 도시> Matthew Heineman     

일요일에도 하루는 늦게 시작되었지만 다행히 마음을 다잡고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날 첫 번째로 본 영화는 <다이버>와 <핵의 향연>인데 단편인 <다이버>와 장편 중 상대적으로 짧은 <핵의 향연>을 묶어놓은 시간이었다.

<다이버>는 16분 정도의 단편이지만 <울림>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가진 영화였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단순한 쓰레기 더미라 생각되던 ‘땅’ 이 열리며 그 안의 공간으로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은 사람이 쓱 들어가는 이미지를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 굳어있던 내가 생각난다. 카메라는 이어서 멕시코시티 하수도 장치의 다이버인 훌리오 세자르 꾸 까마를 따라 하수 처리장으로 들어가는데 그 안은 완벽한 어둠이다. 이것을 영화는 어둠 그 자체 그대로 보여주며 ‘치익 치익’ 거리는 훌리오의 잠수복 소리와 함께 그가 외부와 교신하는 음성만을 들리게 한다. 이미지가 ‘없지만’ 잠수복을 통한 훌리오의 흐릿한 음성과 함께 미지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증폭시키며 아주 충만해지는 이 모순적인 화면을 보는 것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훌리오는 이 공간을 아주 무게감 있지만 아늑하다고 묘사하며 ‘우주’ 같다고 말하는데 이 암흑의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공간을 만질 수 있고 자부심을 느끼는 훌리오에게 어떤 종류에 부러움이 느껴졌다.     

<다이버>가 끝나고 이어진 <핵의 향연>은 말 그대로 지구에 존재하는 핵무기와 군대 이미지의 향연이었다. 빠른 템포의 일렉트로닉 음악인 것 같은 신나는 음악에 덧붙여진 형형색색의 군대와 핵무기들의 행진은 그 에너지 자체로 왠지 모를 희열감을 주었는데, 영화는 이러한 리듬을 초기 냉전시대의 핵 선전 영상들의 조잡함과 일련의 폭발 장면으로 넘어가며 이질감으로 인한 반전의 효과를 얻는 것 같았다. 영화는 장편의 뮤직비디오처럼도 보였는데 더 크고 강력한 무기에 집착하고 경외감을 보이는 인간에 대한 경고 같이 느껴졌다.      


이어서 본 <너의 작은 노랑 장화>는 왠지 모르게 기대를 많이 한 영화였다. 해수면이 상승한 미래의 공간에 놓인 노랑 장화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고 그 끌림에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영화상에 직접 등장하는 감독님은 미래의 해수면이 상승했을 위치에 증손녀의 노랑 장화를 올려놓고 증손녀에게 말을 건넨다. 영화는 환경문제에 대한 현재 인간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면 잃게 될 것들에 대해 걱정하면서 왜 인간은 환경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걸까? 그리고 왜 개인들은 환경문제에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라는 고민으로 나아간다.

 <너의 작은 노랑 장화>는 매끄러운 장면들과 감각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고 환경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모인 개인들과 그들의 성취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하지만 앞서 영화 스스로 던졌던 질문들에 대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구조를 바라보려는 시도보다 이러한 감동으로 답을 내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일요일의 마지막 영화로는 <유령의 도시>를 보았다.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작품이라 더욱 기대가 되었고 역시 화제작이라 그런지 극장은 꽉 채워져 있었다. <유령의 도시>는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북부 도시 ‘라카’의 참혹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민 저널리스트 단체인 RBSS(Raqqa is Being Slaughtered Siliently)의 활동을 그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RBSS 멤버들의 생활과 그들의 삶에 대한 위협은 너무나 실제 하면서도 현재진행형인 것이어서 화면을 바라보는 것은 놀라움, 공포, 존경심이 혼재한 경험이었다. 다만 스릴러처럼 매끄럽게 편집된 화면들은 어떠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스릴러라는 단어로 절대 표현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RBSS 멤버들의 위태로운 매 순간들이 편안한 극장에 앉아서 보게 될 관객들의 긴장감을 위해 매끄럽게 그려진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의 삶은 너무나 대단하고 현재의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용기를 수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게 그려져 있지만 IS의 모습 또한 너무나 무자비하면서 무서운 것이었다. 무분별한 폭력과 증오가 난무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떠한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제 14회 서울환경영화제는 브런치 패스를 통해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2부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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