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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석 Nov 23. 2017

믿음 안의 죄수들

<마더!> 대런 아로노프스키, 2017

잿더미의 공간에서 한 남성(하비에르 바르뎀)이 집과 세상을 창조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곤 그와 동시에 만들어진 한 여성(제니퍼 로렌스)이 그 집 안에서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스크린에 담는다. <마더!>는 영화가 공개되었을 당시 영화 후반부가 주목받았다. 남성이 새로운 시를 세상에 공개함과 동시에 남성과 여성 둘의 공간이던 집은 그 물리적인 공간성을 넘어서는 세계로 확장된다. 그리고선 난장판이라는 수식어가 자꾸 떠오르는, 다소 노골적이고 투박한 상징성을 가진 온갖 사건이 삽시간에 발생한다.

<마더!>의 장면들의 종교적 색채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며, 동생을 질투하여 형제를 죽이는 장면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며여성의 갓 태어난 아이가 시인을 신이라 칭송하는 자들에 의해 신의 아들이라 추앙받다가 처참히 희생되는 장면을 통해 예수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사건들의 소용돌이에서 카메라는 '여성'을 계속해서 비추고 그녀를 따라다니지만 스크린 중앙에 있는 그녀가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는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우기 힘들다.  


<마더!>는 영화 속 종교적 상징들을 그 사건을 겪는 '그녀'와 연결시키면서 종교라는 기계 속에 여성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큰 틀을 형성한다그녀의 얼굴은 답답함을 불러일으킬 만큼 극도의 클로스 업으로 스크린을 가든 채우며, 많은 경우 관객들은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시각이 허용하는 범위의 공간만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이러한 장면의 처리는 긴장감이 감도는 장면이 아님에도 그녀의 시각에 갑작스럽게 침입하는 물체에 대해 그녀와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놀라게 하고 반 강제적으로 일련에 벌어지게 될 사건을 그녀를 경유해서그녀에게 이입해서 바라보게 만든다스크린 속 그녀의 경험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경험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마더!> 속 여성은 집이라는 공간에그리고 함께하는 남성에게, 그가 멋대로 벌이는 사건들에 종속되어있다남성은 문밖에 세상을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여성은 문 앞 까지는 나아갈 뿐때로 남성에 의해서 혹은 다른 상황에 의해서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여성은 그만큼 철저하게 집과 자신을 동일시되며 그 사실을 의식하듯 집을 정성으로 닦고 꾸미고 고친다하지만 이마저도 남성에 의해 초대된 자들로 인해 파괴된다남성과 여성이 갈등에 마주했을 때 결국 원하는 대로 하게 되는 것은 남성이며 이는 또한 어떠한 폭력성이나 강제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갈등이 고조되고 상황이 폭력적으로 변했을 때 무기력한 쪽도 역시 여성이다.  임신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전개는 여성이 겪는 물리적 힘의 무기력감을 드러낸다. 그녀가 그러한 전개를 원했던 것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어떤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든 그렇게 될 것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성주의 신학자 메리 데일리는 성경을 설명하며 매체가 메시지다라고 얘기한다. 성경 속 신이라는 존재는 성을 초월하는 존재라고 여겨지지만 명백하게 매체 속에서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러한 메시지는 종교 내에서 여성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소외시킨다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페미니스트 진영에선 여성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반적인 실천으로부터 얼마나 자주 배제당했는지를 지적하기 시작했다신이 오직 남성적 이미지로만 묘사되는 것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빵을 굽고 자녀를 가르치는 일 이외의 모든 눈에 보이는 역할을 거의 남성이 독점하는 것 등을 문제 삼고 비판했다이러한 그녀들의 노력은 신의 말씀이라는,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차별하고 삶을 지배하는 기계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였다.


후반부에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을 그런 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고, <블랙스완>에서 광기에 대한 양면성을 드러냈던 것처럼 억압의 과정에서도 드러나는 모성애라던지 여성의 희생이라던지 아름다움에 대해 집착하며 묘하게 긍정하는 느낌은 우려스럽다. 하지만 '믿음'이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억압당하는 존재의 그 스크린의 답답함은 60년대 후반에 호소되었지만 아직도 유효하다. <마더!>는 억압하는 기구로서의 종교를, 혹은 더 큰 의미로서의 믿음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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