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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같은 몸 / 이영광

창비시선 318 / ©이영광, 2010,『아픈 천국』

by 우란

장화 같은 몸 / 이영광



머리 아래에

가슴이 있고

가슴 밑엔 허리가,

허리 아래가 있다


어지러운 머리는 묻는다

가슴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허리 아래는 무슨 이유가 있는가


들끓는 풍랑이었다가

흐트러진 매무새로 기근처럼 지쳐 잠든

머리 아래는,

흙탕물이 괴어 벗겨지지 않는 장화 같은


몸은

왜 늘 몸부림인가


묻는다, 몸의 물음이라곤

한마디도 들어본 적 없는 허공의

대가리가




(주)창비

창비시선 318

©이영광, 2010,『아픈 천국』

100-101쪽


나는 그래


답답할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도 좋다
손가락이 10개고, 발가락이 10개고,
20개의 자아가 각자, 알아서,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딱 한 개뿐인 머리로 읽어나가면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가 없다

긴,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왜 늘 몸부림'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대화를 떠올리며
심히 어지럽지만 중심을 잃지 않기로 하자.

다시 숨죽인, 말을 잃은 몸을 깨우고
그렇게 발광하며 머리를 일으키면
다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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