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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깰 무렵 / 이영광 시인

창비시선 318 / ©이영광, 2010,『아픈 천국』

by 우란

잠 깰 무렵 / 이영광



나는 드디어 떠나온 것일까

아득한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침대의 시간

낮은 공중의 시간

몸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 시작하는

숨결의 시간 위에서


눈만 뜬 그 몸이,

몸보다는 아직 가벼운 몸이 내려다보는

화사하디화사한

헌 이부자리


나는 또 이렇게 웅크린 채로

나타났다

아침 혹은 저녁

어느 임이 날 낳아주셨나, 꿈도 없이


창틈엔 빛의 영혼 같은 먼지들이 노랗게

산 채로,

꼿꼿이 선 채로 막

또 한번의 생을 점화하고 있다




(주)창비

창비시선 318

©이영광, 2010,『아픈 천국』

70-71쪽


나는 그래

새 사람이 되는 기분
새로운 자로 태어나는 아침
틀렸다, 우린 아침이 오기도 전에
'잠 깰 무렵'에 새 사람이 된다

지나온 길을 되새기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이정표를 예감하는 시간
체감은 정말, 찰나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촉감을 느낄 새도 없는
너무나도 짧은 순간

가끔은 너무나 많은 머뭇거림에 파묻혀
잠을 잃은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긴데, 그만큼 또 짧은, 그래서 아찔한.
그럴 땐 서로를 보고 있지만, 못 본 척하며
술술 넘어가는 잠꼬대를 친구 삼는다
새롭게 태어나는 기적을 바라는 걸, 잊지 않으면서

매일 밤 잠에서 깰 무렵마다
우리는 찰나를 관통하려 무던히 애쓴다
'꼿꼿이 선 채' 온몸을 비트는 영혼들이
매일 밤, 그렇게 스스로를 태워, 또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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