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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lly Dec 07. 2017

종신보험 타령

그 흔한 보험 하나 없다. 

내 남편 얘기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의 전화, 그리고 이내 보험에 들으라신다. 아들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내가 남편 보험을 들으라는 얘기다. 수년을 지겹게 아들을 설득했는데도 되지 않았던 일을 결혼했으니 내가 해 낼 줄 아셨을까. 결국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보험은 무슨 보험이냐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리고 그 후로 잊을 만하면 전화가 온다. 그리고 보험 타령이다. 당신이 얼마 전 아는 보험 설계사를 만났는데 계약자는 엄마가 할 테니, 피 보험자인 남편은 나보고 설득하란다. 똑같은 레퍼토리다. 


오늘 또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다. 


실은 남편은 진단명을 가지고 있다. 20살에 허리가 극심히 아파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디스크다 아니다 갖은 고생을 하고 결국 알아낸 병명 '강직성 척추염'.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척추가 딱딱히 굳는 병이다. 아직 원인을 알 수 없어 치료약이 딱히 없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다행히 초기 발병할 때에 비해 남편은 예후는 좋은 편이다. 일 년에 두세 번 허리 아래 엉덩이 깊숙한 어딘가가 아프고, 그때마다 엉거주춤 걷고, 누워있지도 앉아있지도 못한 며칠을 지나고 나면 말끔히 괜찮아진다. 물론 아침저녁으로 진통제를 들이붓는다. 


몇 년에 한 번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하고, 상태가 어떤지 관찰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다. 그런 남편은 보험 가입 자체가 안된다. 어느 보험사에서 진단명이 있는 사람에게 보험을 가입시켜 주겠는가. 그런데 어머니는 포기가 안 되시는 모양이다. 나중에는 굳이 병명을 밝힐 필요하 없지 않냐고 하신다. 왜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못 하겠는가. 전화로 잘 설명을 드리면 알았다 하시지만, 일 년 후 다시 똑같은 내용으로 전화를 하신다. 


위에서 밝힌 것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가입 할 수 없는) 이유라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사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신념이다. 실손보험이 뭐가 문제겠냐마는... 사망보험이 주 목적인 종신보험에는 더더욱 가입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다. 보장성 보험이지만 교묘하게 저축성 보험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20년간 4천 만 원 납입하면 죽을 때 천만 원 붙여 5천 만 원 준다는 내용의'이 보험'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혹시 아플지 모르는다는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혹시'라도 큰 병에 걸리면 그 비싼 입원비,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염려 때문일까. 나라에서 보장해주는 것의 한계를 알고 있기에 누구나가 매월 작게는 3,4만 원에서 많게는 몇십 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내고 사는가. 이것이 내가 사는 사회의 모습이다. 돈이 없으면 죽을병에 걸려도 치료받을 수 없는 현실. 그래서 현재는 아프지 않아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월 꼬박꼬박 보험사를 배부르게 해주고 있다. 


10년을 넘게 부어도 100% 원금 보장도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보험. 그 혹시 모를 불안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보험이 그 정답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기에 나 역시 보험에 들자고 남편을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매월 십만 원씩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적금을 쌓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다. 


이토록 불안한 인생인데,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보, 종신보험 정말 안될까? 당신 죽으면 내가 5천만 원 잘 쓸게.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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