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ce exceptional child
"걱정마! 나도 네 딸이랑 아주 비슷했어!"
본인 분야에서 꽤 유명한 과학자인 친구가 큰 아이를 보면서 자주 하던 말이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2번 내 아이를 보는 그녀였으니 위안이 되고는 했지만 여전히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이전 교실에 있는 시간들보다 디텐션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으니 말이다. 전과목 다 A인데 태도 점수는 C-F를 벗어나질 못하는 아이를 보며 도와주고 싶었다. 물론, 아이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아이는 보통 2학년 때 실시하는 영재 평가를 유치원 때 받았으니 긍정적으로 작동한 점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면 친구는 "내가 어릴 적 딱 네 아이 같았어. 근데 클수록 좋아져. 그니깐 너무 걱정 마. 나도 네 아이처럼 똑똑하고 이해력 빠른 아이는 처음 보는 거 같아. 영재라서 그래. 보통 영재들이 힘들어."라고도 말했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나면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기도 했다.
남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아이지만 한편으로 같은 일이 본인에게 일어났었던 경우에는 그 공감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났다. 얼마나 아팠고 본인이 놀랐던 경험을 말하며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라고 동생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자폐와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용되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나의 아이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아이는 언어 혹은 운동 신경이 늦다기보다는 또래보다 훨씬 빨랐다. 만 8개월 아이가 첫걸음을 떼고 돌쯤에는 계단도 쉽게 오르고 내렸으며 만 5세에는 두 발 자전거를 탔으며 언어 쪽은 무섭도록 빠르게 습득해서 만 6세에 해리포터를 읽던 아이였다. 유치부 때 실시한 테스트에서는 초등학교 4-5학년 언어를 이해하고 쓸 수 있었고 현재 영어는 대학교를 다녀도 될 정도이다. 단순히 언어뿐만 아이라 수학, 과학.. 모든 걸 쉽게 이해하는 아이다. 본인이 해야 하는 과제가 있는 경우 구시렁거리면서도 스스로 스케줄을 짜서 해내는 아이다.
진단을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을 하던 때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고 정말 모든 게 많이 바뀌고 있어서 그와 관련된 고민은 살짝 집어넣었다.
아마, 내 아이가 언어 혹은 지적인 게 느린 아이였다면 좀 더 빨리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이게 바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아주 조금 필요한 자폐인들이 진단을 안 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미국 자폐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분인 Dr. Temple Grandin 역시 어린 시절 자폐 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2021년 5월 일론 머스크가 (2013년부터 자폐스펙트럼 안에 들어가 더 이상 진단명으로 안 쓰이는) 아스퍼거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여러 뉴스에서 자폐증과 아스퍼거 증후군의 다른 점 이런 소리를 하며 마치 다른 것처럼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안에 포함된다. 일론 머스크의 SNL오프닝 을 보고 내 아이도 어쩌면 일론 머스크 같은 자폐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미국에서 시골 중의 깡시골이라 가장 가까운 소아청소년 상담이나 정신과 의사를 만나려면 왕복 5시간을 가야 했기에 쉽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2021년 5월에는 12세 이하 코로나 백신이 나오기 전에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은둔을 하다시피 했었다. 큰 아이가 알레르기 증상으로 천식이 따라오는 아이라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해 12월 아이들 백신을 맞은 후 학년이 끝나고 여름에는 진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쯤, 아이는 수업 시간에 재미로 한 게임에서 한 아이가 한 잘못된 행동에 완전히 꽂혀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처음 몇 주간은 하루에 3-4번씩 하고 그 후에는 적어도 한 번씩 6주가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줬고 그게 한 달이 지나가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미국 보험은 인네트워크와 아웃네트워크가 있는데 인네트워크인 경우 보험 적용이 더 쉽다. 그래서 그쪽으로 알아보니 대기가 1년반이었다. 1년 반을 그냥 허비하느니 보험이 적용되는 말든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어떻게 진단이 이뤄지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한 번이 아니라 한 달 가까운 시간 매주 한번 정도는 가야 했다.
미국에는 학교 심리학 의사들( school psychologist)이 있다. 다른 주 카운티 정신건강 담당자분이 추천해주신 분이 있어서 그분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서 메시지를 남겼다. 반나절이 지나고 그분에게서 연락이 왔고 왕복 5시간이라는 거리라 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줌으로 하기로 했다. 물론, 아이를 만나는 부분은 줌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라 직접 가야 했다.
30분정도 첫 상담을 했고
우선 우리에게 600 문항이 넘는 질문지가 왔다.
우리 부부를 줌으로 만나서 1시간 정도 대화를 했다.
아이의 IQ 검사 즉, 학습 능력을 검사하는 테스트를 6시간 정도 했으며 (며칠에 나눠서)
아이의 학습 능력을 검사하는 동안 아이를 관찰하셨다.
400 문항 정도의 질문지가 또 우리에게 왔고
그리고 다시 우리 부부를 줌으로 만나서 2시간 정도 대화를 했다.
그리고 아이를 다시 만났다.
학기 중이라면 아이의 학교 수업을 참관까지 한다고 했지만 그건 방학중이라 생략.
그리고 마지막 부모와 1시간 반 면담.
이 과정의 총비용은 보험 적용이 안돼서 $3,000불이 넘었다.
삼백만 원이라는 게 아주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비용이니 왜 똑똑한데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진단을 받는 비율이 낮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에서 자폐 진단을 받는 사람들 혹은 아이들이 보통 중산층 이상인 백인 가정이라는 통계는 아마 이 비용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특히 도움이 많이 필요한 자폐인 경우는 진단 비용을 포함해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비용이 들어간다.
내 아이의 진단 이후 '걱정 마, 나도 저랬어.'라고 말하던 친구는 본인은 진단받지 않은 성인 자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 일론머스크의 아스퍼거 증후군 고백 후 그 친구 역시 자폐 스펙트럼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했는데 그 이유는 친구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상대의 얼굴을 1초 정도만 쳐다본 후 이곳저곳 보다가 다시 스치듯이 얼굴을 바라본다. 자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눈 마주침을 피하는 행동이 그녀에게도 보였기 때문이다.
본인 역시 자폐 스펙트럼에 있음을 깨달은 친구는 슬픔보다는 기쁘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동안 스스로에게 물음이 많았던 점들에 대한 해답을 찾은 기분이라고 했다. 늘 남들은 쉽게 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자신에 화가 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지 않으려고 했던 본인 아이들의 자폐 성향들도 보인다고 했다. 그녀의 쌍둥이 아이들은 또래에서 제법 똘똘한 아이들이다. (내 큰 아이 보다 두살이 많지만 절친들이다.)
그녀의 쌍둥이 아이들은 곧 만 13세 남자아이들인데 몸무게가 25kg 미만이라 뼈와 가죽만 있다. 음식 냄새, 식감 등에 아주 까다롭게 반응한다. 둘 중 한 명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까치발로 걸어 다닌다. 그 둥이들은 알게 된 지 4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아이들이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적이 없는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이 둘 역시 학습 장애가 없는 아이들이기에 내 친구 역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녀에게 아이들의 식습관과 보행을 보고 자폐 진단을 받으라고 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며칠 전 나에게 우리가 만난 심리학자의 연락처를 물어봤다.
의사 선생님이 부모의 양육방법이 달라져야 하는데 '엄마는 그냥 지금 그대로 하시면 될 거 같아요.'라는 말을 해주셨다. 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지도 명령하지도 않고 도움이 필요한 작은 인간으로 대해 왔기에 큰 변화는 없지만 조금 더 공감 관련 세세하게 신경 써주면 될 것 같다.
진단 후 크게 달라진 점은 남편의 태도이다.
"알만한 아이가 왜 저래. 일부러 저러는 거지?" , "네 양육법이 잘못된 거 아니야? 네가 아이에게 때리지도 않고 소리도 안 질러서 저렇게 예의가 없는 거 아냐?" 등등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들은 입으로 배설하고는 했었다.
"네 나이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동생도 하는 것을 넌 왜 못해?" 등 해서는 안 되는 비교를 하고 그런 말을 아이게 종종 하고는 했었다. 그는 이제 아이가 일부러 그를 열받게 하려고 혹은 게을러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며 그것을 하기 위해서 아주 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터널 속을 걷다가 끝에 빛이 보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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