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8.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이번 선거도 네거티브 얼룩
정치권 구태 이제는 끊어야
정당 메시지·후보자질 검증
대토론·대설득의 장 되어야
열띤 공방전이 벌어졌던 보궐선거일이 끝났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원인 분석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선거기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일단 쉬어야겠다는 마음일는지도 모른다.
선거캠페인도 하나의 설득과정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관여도)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와 조금만 거리가 있는 메시지를 접하게 되더라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한 생각 끝에 설득 메시지를 거부하게 될 확률도 높다. 반면 정치관심도가 낮은 사람들은 설득 메시지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정하게 될 확률이 높다. 다만 이들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닌 이데올로기나 지역색에 자신의 정치적 결정을 의지해서 오히려 정치적으로 완고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권은 갈등과 비방의 구도를 통해 서로를 끌어내리려고 발버둥치게 된다. 오직 한 표라도 더 얻어야 살아남는 선거판에서 정책논쟁이 주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잡아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자칫 지루하기 쉬운 정책논쟁보다 유권자의 시선을 끌기 쉽기 때문이다. 언론도 누가 이기고 있는지에 집중하여 스포츠 경기 보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를 경마(競馬)보도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세가 약한 후보들에 대한 보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중도층마저 상대편으로 보이기 쉽다. 그래서 중도층을 포용하려 하기보다는 상대편으로 몰아붙여 궁지에 몰려고 하는데, 이러한 열렬지지층의 행태는 오히려 중도층의 반감을 사기도 한다. 중도층은 마치 살 물건이 없는데도 백화점에 들러 이 물건 저 물건 살펴보다가 우연히 좋은 물건을 찾았을 때 지갑을 여는 소비자와 비슷하다. 정치적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스스로의 편안한 사회생활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을 감추고 표면적 중도층 행세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치권이 중도층을 견인하기 위해 자주 활용하는 기제가 바로 루머나 가짜뉴스를 동원하여 상대방을 반사회적 행위를 일삼는 악당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이 가짜가 아닌 진짜 정보를 통해 상대를 비판하더라도, 일반 대중에게는 그것이 선거 때면 의례적으로 돌아다니는 모함성 정보인지 후보의 진정한 결격사유인지를 판단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래서 당선되고 나서야 후보의 결격사유가 진실로 드러나 선거 후에 더 큰 혼란이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랜 지역구도와 메카시즘이라는 반이성적 토양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선거판은 더욱 복잡하다. 선거 때면 지역감정과 맹목적 이념 공세에 불을 붙여 이득을 보고자 하는 정치권의 구태는 광복 이래 7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SNS의 발달로 이러한 선전선동 메시지는 약간의 사실과 버무려져 빛의 속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백악관으로 몰려든 극우 지지자들이 어떤 일을 벌였는가 생각해보자. 그들도 동네에서는 평범한 이웃인 경우가 많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항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N스크린’ 환경에서 인공지능을 핑계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동영상을 집요하게 공급하는 SNS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극단적 사고에 마르지 않는 샘을 제공한다.
선거기간은 정책의 유효성과 후보의 자질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대토론, 대설득의 장이 되어야 한다. 유세차 주변에서 묵묵히 후보의 메시지를 접하고 있는 유권자의 마음에는 자신만의 나무가 자란다. 그 나무가 건강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유권자 본인과 정치권, 언론에게 달려있다. 유권자가 스스로 선거를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만 관심을 갖지 않고 상대 정당의 메시지도 냉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려가면서 고민하는 시간,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소통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원의 혈세가 드는 선거를 영리하게 활용할 때가 왔다. 선거는 설득과 토론의 과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