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3.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시공간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
안티에이징 눈부신 성과 이뤄
초고속 교통수단 개발도 도전
메타버스 실현 꿈 이뤄 질 것
시그널, 터널, 고백부부, 라이프 온 마스, 아는 와이프, 그리고 신의. 시간을 오가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이른바 ‘타임슬립’ 드라마 중 기억나는 몇 편을 적어 보았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물리법칙을 벗어난 상상을 실제처럼 표현한 드라마가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예술이 관객에게 제공하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가 제약을 극복하는 줄거리에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는 서로 다른 시간을 한 번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해서 오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작년에 개봉했던 테넷(Tenet) 같은 영화가 그렇다. 주인공은 엔트로피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는 인버전이라는 기술을 가진 세력들이 세계를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복해서 같은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이라는 드라마 역시 과거로 돌아갈 기회를 얻은 사람들이 1년 전으로 돌아가 예기치 못한 운명에 빠져드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되돌리는 사람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로 인해 끊임없이 충돌하고 서로를 의심했다.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결코 문제의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거스르고자 하는 욕망이 여전히 꿈에 가깝다면, 보다 현실적으로 노화를 되돌리려는 사람들의 욕망은 날개를 펴고 있다. 주름을 없애주고 피부를 탱탱하게 해준다는 안티에이징 화장품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유전자가 갖고 있는 노화와 질병의 비밀을 해독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눈부신 성과를 보여주고 있고, 그러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질병의 발병을 막기 위한 선제적 수술과 처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에게 막막함을 주는 또 다른 장벽은 바로 공간이다. 통근이나 해외여행 같은 공간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려는 몸부림은 고속 교통수단을 꿈꾸게 하고 있다.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는 대각선 양 끝을 불과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GTX라는 교통수단 건설이 한창이다. 이미 KTX와 SRT가 서울에서 부산과 강릉까지 두 시간 안에 연결하고 있고, 서울∼제주 루트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여객기 항로가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는 조바심에 빠져 교통에 소요되는 시간을 끊임없이 단축하려 하고 있다. 이제 눈만 깜빡이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공상과학영화의 장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진공 튜브를 통해 캡슐 형태의 고속열차를 타고 시속 1000km 이상으로 이동하는 ‘하이퍼루프’ 시스템 개발에 여러 기업이 사활을 걸고 덤벼들고 있다. 2013년 8월에 일론 머스크가 진공 튜브를 이용한 초고속 교통수단을 얘기할 때만 해도 우리는 그것이 너무 위험하지 않겠느냐, 가능은 하겠느냐는 회의론을 가졌었다.
공간에 관한 새로운 도전은 화성이주계획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염된 지구 하나에만 의존하기에는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SNS를 통해 “이론적으로는 2050년까지 100만 인구의 화성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개발 중인 ‘스타십(StarShip)’ 우주선 1000대면, 대당 100명씩만 해도 10만명씩 태우고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공간 개념전환의 정수는 가상공간에서 실재감을 마음껏 맛보는 ‘동물의 숲’ 같은 게임에서도 드러난다. 무인도에 정착해 집을 짓고, 낚싯대를 들고 나가 심해물고기 산갈치를 낚다가 심심하면 바닷속을 잠영하며 문어를 잡아 올리는 가상공간으로의 이주가 게임상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심지어 이 게임에서는 가상공간상의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관광을 갈 수도 있고, 다른 섬의 동물을 내 섬으로 초대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동은 아무런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게임이용자들은 마치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탈출을 꿈꾸고 있는가. 2002년 우리는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쳤다. 앞으로의 세계는 가상공간을 오가고 시간역전이 자유로운 메타버스(Metaverse)의 실현을 보여주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실제 일어나는 것이든, 우리의 경험을 조작하는 것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