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8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내 집 마련 꿈 멀어짐에 속상
부동산대책 냉소가 민심 지배
신뢰 없는 정부에 국민은 반감
불안이 팽배한 민심 다독여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다. 바이든은 7000만표를 넘은 최초의 당선자이자 역대 최다 득표자가 되었고, 트럼프 역시 역대 최다 득표한 패자가 되었다. 2008년 오바마 당선 이후로 가장 극적인 장면이자, 미국이 전통적인 소프트파워 강국의 면모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결정적 국면이라고 판단된다. 그렇게 민심은 변했다.
그런데, 우리 정치를 보면 집권여당을 향한 여론에서 반전이 읽힌다. 최근 서울과 부산 등지의 여론조사를 보면 부정적 견해가 증가하고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당연히 단체장의 성추문 논란일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부동산정책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현안대응형 정책이 남발되어온 과정에서 부총리마저도 전세 문제로 난항을 겪는 딜레마 상황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학벌, 고시 외에 신분 상승에 가장 큰 역할을 해온 부동산 ‘한탕’의 가능성이 흐려져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일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어차피 부동산 투자도 여윳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종잣돈도 없고 은행대출도 막힌 대다수에게 그런 ‘한탕’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국민은 가장 기본적 삶의 조건인 나와 내 자녀의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짐에 대해 속상해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갭투자’를 할 수 있었던 때가 그립다는 게 아니다. 그걸 막는 건 옳은 방향이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내 집 소유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는 불안이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평소 집은 천천히 사도 되겠지 하고 관망하던 사람들도 이젠 불안해서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이런 불안은 민심이라는 바다 위의 배를 뒤집는다. 지난 8월 15일 M방송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집값이 더 오를 거라는 불안’, ‘공급 부족’, ‘종부세 인상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냉소가 민심을 지배하고 있다. 같은 방송사의 올해 1월 1일 조사까지만 해도 부동산대책 “적절” (51.1%)이 “과도” (40.4%)에 비해 더 높았음을 감안하면 국민의 인내도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공공임대를 늘려나가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부동산 소유에 대한 집착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바로 경제도 문화이자 관습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여전히 ‘내 집 한 칸’은 있어야 가족도 편안하고 재산 증식의 기반이 마련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러한 관념은 정부가 캠페인을 한다고 깨어지지 않는다. 들쑥날쑥한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최소한의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책에는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에 대한 반감은 그러한 눈물을 먹고 자란다.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직주근접’ 선호의 트렌드다. 서울과 부산의 시간 거리는 두 시간 남짓. 이제 사람들은 출퇴근 거리 10분에도 민감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남을 틀어막자 전통적 부도심과 강북, 경기도까지 들썩거린다. 시공간 압축으로 강릉도 한 시간대에 갈 수 있는 시대에, 출퇴근 10분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시공간 개념의 변화를 간과하고 여전히 직장과 먼 곳에 지역주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지어대는 아파트는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심은 끓고 있다. 뚜껑이 들썩이는데 가스불을 줄이지 않으면 넘쳐 흐를 것이다. 미국의 성난 민심이 어떻게 표출되었는가 보아야 한다. 시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정부가 보란 듯이 싸게 아파트를 지어서 ‘소유’하게 해줘야 한다. 일정 가격 이하의 아파트에는 실수요 1주택에 한해 대출 장벽도 낮춰야 한다. 택지가 어딨냐는 변명 대신 초고층을 허락하지 않는 경직된 정책을 되돌아봐야 한다. 공공성과 신속성의 절묘한 조화가 필요하다. 불안이 팽배한 민심을 다독여야 한다. 여기에 주의할 것은 시간이다. 어느 정치인이 말했던 ‘몽골기병’의 속도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너지는 성곽은 재건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