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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의 갈라파고스화

[20.2.5.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언론 중요한 역할은 의제설정

국가 격조 의제 수준서 나타나

환경·기후변화·지속가능발전

글로벌 어젠다 자주 다뤄야


작년 가을 싱가포르에 가서 세계 최상위권으로 떠오른 현지 대학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싱가포르 국립대를 방문해서 한 강의에 참여했을 때에는, 한국과 한국기업에 관해 쏟아지는 질문을 들으면서 무척 뿌듯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관료들과 기업인들로 구성된 대학원생들이 한국이 먼저 성취한 경제발전의 과정에 관해 진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싱가포르를 오가는 기내에서 여러 아시아 국가의 영자지들과 우리나라 신문들의 기사들을 비교해 보았다. 놀랍게도 우리보다 경제적으로는 한참 뒤처진 나라의 영자지들도 유엔의 지속가능 발전목표(SDG), 기후변화, 환경문제와 같은 글로벌 어젠다에 주요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문들은 어디나 할 것 없이 한 장관 자녀의 입시제출물 진위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이슈도 생명체처럼 출현에서 소멸까지 생태적 주기를 거친다. 어떤 이슈는 등장하자마자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키며 사회를 들었다 놨다 하는 반면, 대부분의 이슈는 생성에서 소멸까지의 시간이 매우 짧다. 예전에 대중매체의 관점을 다른 이들에게 설파하던 시절에는 사회에서 유통되는 이슈의 수도 적고 변화의 폭도 작았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이라는 전쟁터에서 다양한 버전의 이슈와 해석이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에게는 사회적 이슈를 곰곰이 따져 보고 상반된 견해를 비교해볼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특정 이슈로의 쏠림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게 된다.



특정 이슈에의 집중이 가져온 치명적 결함은 여기 있다. 장관 임명 과정에서 비슷한 시기에 임명된 다른 여섯 명의 장관(급) 공직자 후보에 관해서는 언론과 국회가 거의 검증을 수행하지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 언론이든 국회든 이러한 무신경과 태만에 관해 어떠한 자기반성도 없다는 점이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국가의 격조는 의제의 수준에 나타난다. 한국의 언론보도는 살아있는 권력 비판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인류의 문제, 글로벌의 문제를 방기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어젠다는 결코 경제적 국력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의 어젠다는 엘리트와 일반 국민의 어젠다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보다 먹고살기 더 어려운 나라들도 환경문제, 기후변화, 유엔이 정한 인류문제 등에 관해 아낌없이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언론들은 대한민국의 국격에 적합한 수준의 의제를 다루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언론이 사회에서 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의제설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무엇에 관해 생각할 것인가 제시할 수 있는 역할을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어떤 틀에서 그러한 의제를 바라볼 것인가에도 영향을 준다.



누구나 어린 시절,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사각형을 만들어 그 틀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틀짓기(프레이밍)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에도 여전히 의미있는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언론에 바란다. 글로벌 어젠다가 우리 국민의 입에 많이 자주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해 대한민국을 이슈의 갈라파고스화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국가의 수준은 언론의 수준이고, 언론의 수준은 바로 어떤 기사를 헤드라인에 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는 건 당연하다. 더 많이, 더 깊이 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국내 문제만 집중하면서 글로벌 시야의 부족을 방치하지는 말기 바란다. 각 분야에서 세계를 이끄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어젠다에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만 다른 얘기를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이슈의 갈라파고스화를 벗어나는 데 많은 이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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