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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Nov 09. 2022

글쓰기의 최소한

작가, 독자, 해석자의 입장을 빈번하게 왕래하는 일, 작가의 일이다

짧은 글을 쓸 때도 어법을 지키는 편이다. 가끔 어긋날 때도 있지만 그건 의도가 아니라 나의 우리말 구사 능력이 떨어지는 탓이다. 인터넷이 널리 쓰임에 따라 평범한 사람들도 소셜 미디어를 많이 사용한다. 나 역시 대표적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의 시작과 함께 10년 이상 많은 글을 쓴 적극적 사용자였다. 내 기준으로, 남 쓴 글만 읽으면 소극적 사용자, 자주 글을 쓰면 적극적 사용자다.

브런치에는 대략 2년 전부터 글을 쓰고 있다. 내게 있어 브런치의 용도는 일종의 '글 저장소' 같은 것이다. 모두 10개의 매거진으로 분류해 놓았는데 각각 출판이 가능할 정도의 분량과 내용이 확보되면 서책으로 출판하려고 한다. 내 전담 편집자가 말하길, 몇 해 전에 쓴 교육 콩트가 너무 좋다고 그걸 단편집으로 내자고 한다. '지훈이의 캔버스', '시발 롤모델' 같은 콩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계획하고 있는 글들을 어느 정도 소화하고 나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브런치의 글을 즐겨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온라인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배설'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내 취향이 아닌 글을 읽는데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분들은 일단 예비작가로 일차 검증을 거친 분들이고, 적어도 자기 글에 대한 책임성을 가진 분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몇 번이고 수정을 거쳐 완성된 글을 선보이고 싶은 욕구도 보인다. 다른 SNS에 비하여 타인의 시선을 끌고자 무리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자주는 아니지만 훌륭한 글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럴 땐 반갑다. 브런치 작가들은 조용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자기 글을 완성해가고 있다. 이런 까닭에 브런치는 좋은 글쓰기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공짜로 쓸 수 있고 광고도 들러붙지 않는다. 지난번 카카오 접속 대란이 있었을 때 카카오톡 같은 서비스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브런치는 상당히 조용했다. 그저 자신의 글이 완전히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이는 브런치 작가들의 내적 성향을 잘 드러낸다.

브런치 작가들의 문장과 행간을 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관심받고 싶은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나쁜 것이 아니다. 글쓰기에서 인정 욕구는 자연스럽기도 하고,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글은 '일기'다. 타인이 보지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에 일기 앞에선 솔직해진다. 글쓰기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솔직함'이다. 있을 법한 거짓말을 구사하는 소설가들도 자기 삶 앞에서는 솔직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브런치의 글들은 '공개를 염두에 둔 일기' 같은 느낌이다.

드러내지 않을 망정 드러낸 부분만큼은 정직하고자 하는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역시 브런치 작가들의 특징이다. 브런치가 최소한의 글쓰기 능력을 보고 작가로 등록해주는 정책은 그런 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올라간 글은 솔직하고 싶다는 욕구를 지닌 분들이 절제하며 쓰는 글이기 때문에 순하게 읽힌다는 점도 있다. 여기까지는 브런치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솔직한 찬사이다.


이 글의 첫 문장을 "짧은 글을 쓸 때도 어법을 지키는 편이다"라고 썼다. 이건 분명 내 취향이다. 취향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른 작가들의 경우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하다 보면 간혹 비문도 어울릴 때가 있고, 때로 어법에 충실한 글에서 느끼는 거리감도 있기 때문이다. 어법에서 이탈하여 비문을 구사하더라도 많이 읽히면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꼭 틀린 것도 아니다. 사실 요즘에는 누구도 어법이 잘못됐다고 질책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복은 습관이 되고 이내 고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나중에는 그 작가의 특징이 될지도 모른다.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면 최소한 글쓰기의 법칙은 지키는 것이 좋다. 젊은이들이 대화를 할 때 축약어를 많이 쓰고, 또 기성세대는 알 수 없는 자기들만의 언어를 쓴다. 어느 시대나 그랬다. 이 분들도 글쓰기를 시작하고 경력이 늘어나면서 자신만의 말글을 정돈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타인에게 공표하는 것을 목적으로 글을 쓰기로 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바른 어법을 구사해야 한다. 나 같은 독자는 비문이 자주 등장하거나 어법에서 심하게 이탈이 된 글을 만나면 대개는 읽기를 중단한다.

때로 경력이 있는 기성 작가가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어휘들을 글에 등장시켜 젊은 세대와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설프게 흉내를 내는 것으로 소통의 밀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방식은 이것 말고도 다양하다. 젊은 세대가 즐겨 쓰는 유행어나 축약어를 쓰지 않고도 작가 자신의 문장, 내용, 묘사로 충분히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안 좁혀진다고 애석해하지 말라.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리하게 된다. 글쓰기에서 무리는 좋지 않은 결과를 예약한다.   


브런치 작가들이 종종 받는 지적인 '감정 과잉'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좋은 글은 아니다. 내 감정 상태를 말하는 대신 그 감정에 이르게 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해 보라. 작가의 묘사력이 있다면 독자는 공감할 것이다. 감정이 잔뜩 들어간 글을 읽을 때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더 좋은 글쓰기를 하긴 힘들겠구나 이런 느낌이 온다. 글쓰기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상황 묘사로 풀어내면 글쓰기도 늘고, 마음 수련도 할 수 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을 어찌하란 말이냐. 바로 그 느낌이 내 글쓰기의 에너지란 말이다."라는 분들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마음을 차분이 가라앉히고 그 상황을 문장으로 옮겨보라. 묘사는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을 글로 풀어놓는 과정이다. 간혹 글을 읽다 보면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를 글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읽다 보면 저절로 연민의 마음이 생길 정도다. 역시 그 경우도 작가로서 지켜야 할 원칙은 글을 쓰는 작가와 글쓰기 소재로서 대상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작가가 되기로 한 이상 거리두기를 하고 그 상황을 문장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거리두기는 장기간의 훈련의 필요한 사항이다.


타인의 글을 읽는 것은 내 글쓰기에 도움을 줄까? 모든 글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의 입장에 공감하는 과정을 거쳐, 내 입장에서 다시 생각하는 해석, 누적된 경험을 내 안에서 숙성하여 나만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순환적이다. 작가의 입장, 독자의 입장, 또 해석자의 입장을 빈번하게 왕래하는 일, 그것이 작가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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