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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r 30. 2024

공감의 반경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감정이 풍부하다. 또 한 사람은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사람이다. 우리의 선입견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타인의 입장에 대하여 더 쉽게 공감하고 문제 해결에 빠르게 동참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이성적인 사람은 문제에 직면하여 이것저것 재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나머지 상대 입장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과 이성을 대비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나는 지난 글에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공감은 빈껍데기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 빠르게, 깊게 이입하는 것은 '나는 당신의 편'이라는 시그널을 주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당신이 지금부터 내 편'이라는 인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내 편, 네 편을 넘어서는 메타인지적 대화는 가능할까. 사실을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성마르다. 대화의 기술을 강조하는 이쪽 방면의 전문가(내가 보기엔 기술자)들은 우선 상대의 입장을 경청, 공감하고,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저 주의깊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반은 해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관계의 유지에 비중을 둔 해법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경청, 어떤 공감이냐다. 내 생각에 그냥 듣기는 경청이 아니고, '그렇구나'를 반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진정한 공감이 아니다.

공감이라는 문제를 따질 때는 개인과 사회, 정서와 이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아울러 그것들의 양과 질, 방향과 폭 등이 두루 개입한다. 단순하게 '이것은 이렇다'라고 쉽게 판단 내리기 힘들 만큼 양상은 복잡하다. 그동안 공감은 주로 심리정서 영역에서 많이 다루었다. "당신 문과야 이과야?"라는 물음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인지, 논리와 이성으로 따지는 사람인지를 묻는 다른 방식이다. 조금은 어긋난 시선으로 공감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수학에서 '반경(radius)'은 원의 중심에서 원주까지의 거리를 의미한다. 반경이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쓰일 때는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라는 의미를 갖는다. '공감의 반경'을 쓴 진화학자 장대익은 반경을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로 표현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공감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저자는'감정적 공감'이라 말한다.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저자는 '인지적 공감'을 통해 공감 대상을 넓힐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반으로 한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딱 이 경우에 어울린다. 인지적 공감을 통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들과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느낌의 공동체는 감정적 공감에 기반한 공동체이다. 구성원들은 서로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공유하며,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느낌의 공동체는 공감의 반경이 좁고,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우며, 우리와 그들의 구분이 심화한다.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빠르게 교류할 수 있고 이에 따른 동류의식을 느낄 수 있지만 감정에 휩쓸려 이성적 사고를 제한한다. 아울러 공감 대상에 따라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여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고의 공동체는 인지적 공감에 기반한 공동체이다. 구성원들은 서로의 입장과 관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공감의 반경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사실과 논리에 기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다.


공감의 반경, 장대익 지음 


공감의 힘은 두 방향으로 작용한다. 공감 능력이 우리를 '나'와 가까운 사람들로 묶어주는 힘은 구심력이다. 이때 공감 능력은 우리가 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힘은 공감의 원심력이다. 이는 인지적 노력을 필요로 하며, '나'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을 포함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영역에서 '공감의 반경'에서 제시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입장에 따라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매우 좁다. 이는 갈등과 혐오로 이어진다. 대화와 타협이 말라버린 건조한 사회에서 구성원 간 갈등이 심화한다. 기업은 대체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하다. 개인주의의 심화는 공동체 의식이 약화로 이어지고 성별, 나이, 외모, 장애 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하다.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에 대한 어려움과 갈등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인지적 공감을 위한 노력, 비판적 사고 능력 함양,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지침이기도 하다. 이 책 '공감의 반경'은 느낌의 공동체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사고의 공동체를 통해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 사회 발전에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인지적 공감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노력은 혐오와 분열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공감력은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씨앗이지만 싹트려면 자극이 필요하고 어떤 자극과 경험이냐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며 이성적 판단으로 그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공감 능력은 선한 마음으로 상대의 편에 서는 것 이상이다. 공부와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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