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논의를 넘어 학교혁신의 동력과 개혁을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안전하고 평화로운 교실에서 열정적인 교육활동을 하고 싶은 것은 모든 교사들의 소망이다. 내가 하는 교육활동이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에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은 교사들의 정체성 확립과 직무 효능감을 위해 꼭 필요하다. ‘나는 이 학교에서 꼭 필요한 존재야’라는 느낌은 교사에게 지속적인 열정을 발휘하는 동력이다.
2023년 한국의 학교는 교육활동 침해라는 구체적 경험을 통해 교사의 정체성과 효능감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위협은 어느 한 가지 요인이 아니라 여러 층위를 통해 구조적으로 상당 기간 누적되어 온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는 학교의 안정화를 위한 최소 조건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에만 과잉 의존하면 학교 본연의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 학교를 학교답게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느 기간 집중해야 할 특별한 조치가 아니라 지속적 관심과 노력, 구체적 조치의 이행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지금 학교는 교육활동 침해에서 비롯한 기능 위축 외에도 다양한 위협 요인들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구조의 변화, 심화하는 교육격차, 전인적 발달을 외면하는 대입 중심의 평가 체제, 균형을 잃은 교육재정 투입, 디지털, 인공지능 등 에듀테크의 도입, 여전한 투입산출 기반의 교육행정, 사교육의 창궐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교육문제는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좋은 학교라는 통념은 ‘우수한 학생을 뽑아 더 많은 학습을 투입한 후 상위권 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우수한 성취를 보이는 학생들은 선발권을 가진 소수의 학교에 입학하여 집중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한다. 학교를 정상화하는 노력은 ‘공부를 덜 시키는 학교’라는 왜곡된 프레임으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서 후 순위로 밀린다. 학교효과보다 선발효과에 기대는 것은 한국 교육의 오랜 병폐이기도 하다. 이러한 질곡의 상황은 학교개선을 위한 노력을 무색하게 한다. 고등학교에서 혁신학교가 정체 현상을 보이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내외의 위협과 난관은 포괄적이며 강력한 교육개혁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미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은 양극화되어 있으며,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해결책을 내어놓고 경합한다. 조정과 중재의 역할을 맡은 국가교육위원회 역시 그 위상을 제대로 세우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정부의 성격에 따라 교육의 방향은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일선 교사들을 포함한 모든 교육 구성원들은 오랜 시간 교육에서 균형과 안정, 그리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앤디 하그리브스와 딘 핑크의 ‘지속가능한 리더십’은 이러한 교육적 위협을 학교 리더십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극복하고자 한다. 그동안 교육 리더십에 관한 학술적 정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권한의 분산(empowering)’을 통한 학교 교육력 제고에 대한 주장도 꽤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같은 추상적 논의를 넘어 어떻게 하면 학교혁신의 동력과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 중단 없이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묻는다.
혁신학교의 성공을 위협하는 것 중 하나는 핵심 동력의 부재 혹은 일시성이다. 매 5년마다 학교를 바꾸는 전보 시스템(물론 초빙과 유예 제도를 활용하고 있긴 하다), 학교관리자의 잦은 교체 등은 구성원의 노력에 의한 지속가능한 혁신을 어렵게 하고 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리더십의 발휘를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책 본문에서도 언급하듯이 개인의 재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혁신의 절차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그가 학교장이든, 핵심 활동가 교사이든 자신이 있는 동안 존재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 지속가능한 혁신을 위해 조직의 규범과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즉 개인의 능력과 네트워크에 기반한 혁신은 초기 성공을 담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학교의 문화에 스며들지 못했을 경우 이들이 학교를 떠나면 퇴행의 길을 걷는다.
한국의 학교 문화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학교장의 경영 철학’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더십 교체기를 맞은 학교가 ‘탁월한 교장이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 저자들은 리더십의 승계 과정에서 두 가지의 근거 없는 신화에 맞서자고 한다. 새로 오는 리더는 모두를 구원할 것이라는 구세주 신화, 전임자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레베카 신화가 그것이다.
저자들은 리더십의 승계 과정은 교체기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처음 계획 속에 이미 들어있어야 한다는 말한다. 이를 우리 식으로 풀면 열정적인 교사들, 탁월한 교장이 학교에 들어옴과 동시에 그 이후 리더십의 지속가능성까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카리스마와 문제해결력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리더의 역할로만 한정되었을 때는 오히려 위협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탁월한 리더는 구성원에게 역할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들을 성장시키고 특별한 영감을 준다.
권한 위임은 단순히 리더의 권한과 책임을 구성원에게 분산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권한을 위임받은 구성원은 단지 그것을 동일하게 행사하는 것을 넘어 그 경험이 자신의 성장은 물론 리더를 향한 구체적 피드백으로 동반 성장의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지속적 동기부여는 리더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구체적 경험과 끊임없는 체감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저자들은 교육에 대한 애정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교육 개선을 위한 제안을 많이 해왔다. ‘
학교교육 제4의 길’ 시리즈의 저작자인 앤디 하그리브스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2020년 서울교육 국제웨비나에 참석하여 코로나 시기 교육개혁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딘 핑크는 교사 출신으로 교장과 교육감까지 역임한 교육전문가이자 행정가이다. 흔히 정책에 반대하는 논거를 수집하는 것은 쉽지만 그에 대한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적 대안과 제안으로 독자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있다.
번역을 맡은 세 분 역시 교사대에서 예비교사와 현직교사를 위해 실천적 교육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 ‘현장 친화적’ 교수들이다. 그동안 교육청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 많은 제언과 아이디어를 주셨으며, 끊임없이 교사들과 교류하면서 대학에 현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리더십’의 번역 작업은 시기적절한 때에, 읽기 쉬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학교리더를 포함한 현장교사들은 물론이고, 대학에서 교육학을 수강하는 예비교사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추천사_교실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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