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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pr 25. 2024

화성을 보유한 도시, 수원

나를 포함한 시골 출신들은 처음으로 본 도시에 대한 인상을 오래 간직한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 도시는 인천이다. 시골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어머니와 함께 인천 생활을 몇 개월 했었다. 시골집에서 버스로 비포장 도로를 두 시간 남짓 달리다 보면 아스팔트 도로가 나타났고 저 멀리 인천의 공장 굴뚝이 보였다. 인천교 인근 공장 굴뚝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어린 마음도 설렜다.


가정동, 송림동, 배다리를 거쳐 시내 구간을 30분 정도 더 달리면 그 당시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었던 동인천에 도착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경유를 태운 버스의 배기가스 냄새가 뜨거운 공기와 함께 훅 들어왔다. 동시에 터미널 주변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냄새가 밀려왔다. 내 어린 날 도시에 대한 첫 느낌은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아이스크림 냄새가 섞인 '인천냄새'였다.


그제 병원에 다녀왔고, 어제는 수원에 갔다. 수원은 살면서 열 번 이내로 간 도시다. 익숙하지 않은 도시다. 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경기도청 소재지이자 12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도시라는 것 말고도 기초자치단체로는 가장 많은 국회의원 선거구를 가지고 있는 곳이며 무엇보다 수원은 문화유산 '화성'을 보유한 도시다. 어제 수원에 간 목적도 화성을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수원역까지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무궁화호를 이용하면 영등포에서 수원역까지 가기에 가장 저렴하고도 빠르다. 동력을 전기로 하는 지라 소음도 없고 시속 150Km까지도 달리니 우리 집에서 수원에 갈 때는 참 좋은 이동 수단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열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올 때도 물론 이 열차를 타고 왔다. 26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옛날 기차여행을 떠올리며 창밖을 바라보니 고속열차에서는 도저히 맛보기 힘든 풍경을 보았다. 오랜만이다.  


수원역에서 35번 버스를 타고 팔달문에 내려 인근의 전통시장 투어를 하였다.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남문시장, 영동시장 등의 이름이 있던데 각기 다른 시장인지 같은 시장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인지는 시장을 빠져나올 때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전통시장 구경은 언제든 재미있다.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먹고 화성 탐방 시작.


간간이 내리던 비도 그쳤다. 걷기 시작하면서 화성의 돌담 성벽과 하늘, 그리고 성 안, 성 밖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했다. 화성에 몇 번 와 보았지만 이렇듯 방학이 아닌 평일에 온 것은 처음인지라 안내문까지 꼼꼼하게 읽어가며 성곽을 따라 걸었다. 서울 한복판을 따라 청계천이 흐르듯이 수원에는 성 안팎을 가로지르는 수원천이 있다. 완연한 봄 햇살과 가지마다 연두색 이파리를 밀어내는 나무들은 수원천을 돋보이게 했다. 사진도 잘 찍혔다.


화홍문에서 바라본 수원천


훈련터로 사용됐던 연무대나 각종 포루와 누각을 거치면서 정조의 생각을 헤아렸다. 성 안쪽의 생태와 바깥쪽을 번갈아 보면서 수성자와 공성자의 생각도 가늠해 보았다. 정조는 이전에 있었던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화성을 축조하였지만 성 축조 이후 큰 전쟁은 없었다. 탐방 내내 이토록 성곽과 도시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풍경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동행자는 연신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와서 반대편으로 걷자고 얘기했다. 행궁도 바깥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연무대


성은 기본적으로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돌 등을 높이 쌓아 만든 군사적 목적의 건축물이다. 그러므로 방어하는 입장에서 쌓게 되며, 최대한 공격자의 침입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설계한다. 그런데 수원 화성은 본래의 목적을 충족함과 동시에 그 모습이 빼어나다. 현대에 복원한 수원 화성 역시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성안팎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다는 것이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 놓았겠지만 그것은 아주 잘 한 처사라 생각한다. 성곽과 고층 아파트아무리 생각해도 조화스럽다.



수원역에서 영등포까지 26분간의 무궁화호 열차의 너른 좌석에 앉아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꼈다. 그게 어제 일이었는데 규칙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는 요즘 시간의 흐름에 무감각하다.  주변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의사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저 담담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면 3개월 정도만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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