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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y 02. 2024

뒷것 김민기,
그가 노래하지 않는 이유

저는 앞으로 더 조용히 음악을 할 거예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가수가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하는 이유는 본인이 생각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라는 호칭은 가수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으며 그만큼 능력이 입증된 가수라는 상징으로 통한다. 그런데 '뒷것 김민기'는 작사, 작곡, 가창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또 대중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노래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도 그가 직접 노래하는 영상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 함께 활동했거나 공연을 보았던 극히 일부분이다. 심지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원년 멤버들도 "선생님께서 직접 노래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다.


'시에 가까운 우리말'을 낮게 읊조리는 그의 발성은 다른 가수에게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으며, 부분적으로라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경지였다. 대중 앞에 드러나지 않으려는 개인적 취향, 정치적 문제, 뒷것이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조력자에 확실하게 머무르려 하는 자신의 위치 선정 등이 알려진 이유로 꼽히긴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이유로는 뒷것 김민기가 노래하지 않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알려진 이유를 추적한 후 나의 의견을 보태는 방식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원래 이 글은 김민기를 주제로 한 세 꼭지 중 맨 마지막을 예정하고 있었던 것인데 오늘 아침에 발견한 김민기를 포함한 공연실황 희귀음반 영상으로 인해 두 번째로 당겨 쓴다. 음반에서 김민기의 노래 '새벽길'을 들을 수 있다. 

동료 가수들이나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노래를 부르지 않는 이유는 다분히 복합적이다.
그러나 그 이유들 조차 당사자가 그대로 인정하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아마도 내 생각에 어떤 이유가 나오더라도 확실한 오해가 아니라면 뒷것 김민기는 무응답으로 일관할 것 같다. 먼저 세간에 알려진 그가 노래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해 본다.


20대 김민기, 사진출처: 나무위키


첫째 정치사회적인 이유이다. 김민기가 활동을 시작할 당시는 이른바 유신정권 시기였다. 소외된 자를 위로하는 노랫말은 그의 노래 전편에서 일관되게 흐른다. 당연히 정치사회적으로 비판적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본인 스스로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었다고 말한다. 또한 많은 경우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투쟁 현장의 노래로 쓰였다. 상당 기간 금지곡으로 묶였던 아침이슬,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가 그러했다.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은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에 바탕한다. 김민기의 노래 역시 전곡에 걸쳐 짙은 인간애를 깔고 있다. 두 지점의 연동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어쨌든 김민기 입장에서는 만든 의도와 다르게 쓰이고 있는 본인의 노래들에 대하여 부담을 가졌을 법하다. 결과적으로 김민기는 저항을 직접 선동하지 않았으나 피억압자의 마음 속에 내면의 불을 지폈다. 인터뷰에서도 살짝 언급한 바 있는 노래를 만든 의도와 그 쓰임이 다를 때 취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직접 부르지 않는 쪽을 택했을 가능성이다.


물론 이 가능성은 그가 노래하지 않는 이유 중의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공장의 불빛'에서  보듯,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하려 했다. 탄압에 두려움을 느낀 것 같지는 않고, 만들었던 노래 다수가 금지곡으로 묶일지언정 그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30대 김민기, 사진출처: 나무위키


두 번째로, 상업적 쓰임에 대한 비타협의 방식을 택했다는 분석이 있다. 대중가요는 필연적으로 상업적이고, 노래를 만드는 사람, 부르는 사람 역시 상업적 성공을 꿈꾼다. 최근 아이돌 가수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업형 에이전시를 봐도 가수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기획된다. 그것은 김민기가 활동했던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직적으로 기획하지 않았을 뿐이지 가수, 작곡가, 음반사 모두에게 '상업적 성공'은 중요했다.


김민기의 성정으로 보아 주류 대중음악계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가 상업적 쓰임과 무관하게 돌아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적어도 자신의 음악에 대한 가치부여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고, 상업성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자기 다짐이 아니었을까.

50대 김민기, 사진출처: 나무위키


세 번째는 정체성에 관한 설명이다. 노래하는 사람이 아닌, 노래를 만들고 극을 연출하는 지원자로서 역할을 부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접근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처음으로 밝히는 것이라 하면서 자신은 노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의아해하는 손석희에게 자신은 가수로서는 음역대가 너무 낮아 가수로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대중들은 낮게 읊조리는 듯한 그의 노래에 감동했다는 점에서 고음을 매끄럽게 내지르는 가창 위주의 가수는 아니기 때문에 가수로는 맞지 않다고 한 것일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노래할 계획이 없습니다. 전 원래 가수의 꿈은 없어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은 제 역할에 맞지 않습니다. 만드는 역할을 해야죠." 


조용필과의 만남을 주선했던 한 대중음악평론가는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필을 받은 조용필이 아침이슬을 포함하여 무려 열 곡을 부를 때까지 김민기는 노래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는 것이다. 답가를 불러야 했던 관습까지도 물린 '노래 거부'에 대한 그의 단호한 의지였다. 손석희와 인터뷰할 때도 자신은 무대 뒤에서 조력하는 스태프, 즉 '뒷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쯤 되면 '앞것'에 영광을 돌리는 지원자로서 완벽하고자 했던 것일까.

최근 김민기, 사진출처: 나무위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치사회적 이유, 비상업적 가치관, 뒷것으로서 자신의 역할 고수 등이 세간에 알려진 김민기가 노래하지 않는 이유다. 자료를 살피고 글을 쓰면서 과연 이것만으로 설명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위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조금 더 내면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란 의견을 보태고 싶다. 나는 그것을 김민기 특유의 '자기부정의 세계관'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김민기 노래를 들으면서 고음역대의 매끄러운 가창을 기대하지 않는다. 김민기를 찾는 이유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위로를 구하는 마음으로 듣는 김민기의 노래는 모든 영역에서 '구원의 메시지'로 읽힌다. 물론 다른 분들은 다른 동기가 있을 터이다. 어쩌면 더는 직접 들을 수 없는 한계성을 논리 때문에 그의 노래에 집착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김민기는 자신에게 대중이 허락한 구원의 메시지를 줄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것일까. 그 지점에서 김민기의 자기부정이 나온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했다. 또한 그 부담을 떨치기 위해 부단히 여러 시도를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부정함으로써 다시 새로운 나를 모색하는 과정 자체가 그의 삶이었고 조용하게 분출하는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결국 자기부정은 그 이후의 새로운 실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대중들이 더욱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다. 김민기는 상업적인 음악 활동보다는 예술적인 작업에 더 집중하고 싶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단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으로는 그가 가진 생각과 철학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결국 그것이 다분히 내향적인 그의 성정과 결합되어 무대 뒤에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노래부르지 않으면서 노래한다. 그것은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김민기의 노래가 단순히 상업적 대중음악이 아닌 예술활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는 직접 노래부르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이 자신의 예술적 소양을 한 단계 높일 것을 끊임없이 주문한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예술 행위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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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김민기 이야기  - 주여, 이제는 여기에

https://brunch.co.kr/@webtutor/800


아래는 1972년 공연실황을 녹음한 것이다. LP음반의 잡음까지 생생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U3zX2emOidw

맷돌 실황음반,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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