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 김민기 이야기
글쓰기의 자격에 대하여 생각할 때가 있다. 글이란 것이 어떤 소재이든, 누구에 관한 이야기든 제약이 없는 것이지만 가령 짧든 길든 김민기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면 스스로 내 자격을 검증할 수밖에 없다. 학전과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뒷것 김민기'에 대한 다큐를 한 지상파가 방송한 이후, 그를 기억하는 글들이 SNS에 많이 올라왔다. 나 역시 최근 천변을 걸을 때마다 김민기의 노래를 반복하여 들었다.
젊은 날, 전도사였던 누이를 따라 교회 청년부에서 활동했었다. 그 교회에서 세례도 받고 주일학교 교사도 했다. 남들이 믿지 않는 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중 하나다. 하나는 학교에 있을 때 '수학'을 가르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한때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이다.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을 당하고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늘 이야기와 관련이 없으므로 일단 넘어가자. 다음 기회에 털어놓을 때가 있을 것이다. 오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한때 세례교인'이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금관의 예수' 혹은 '주여, 이제는 여기에'로 불린 이 노래가 나에게 종종 글쓰기의 자격을 묻는다. 이 노래의 가사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하나가 글 쓰는 자로서 나의 정체성을 압도하는 느낌 같은 것이다. '얼굴 여윈 사람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과 같은 가사를 쓰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문학적 재능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체화한 '인간애'를 느낀다. 특히 '거절당한 손길들의...' 이 대목은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후렴구 '주여, 이제는 여기에'에 당도하여 이 노래의 주제가 다 드러난다. "주님은 무슨 일로 바쁘시길래 여기 버려진, 거절당한, 여윈 얼굴들이 핍박받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까..."라는 항변이다. 가시면류관 대신 금관의 예수라 하지 않았던가. 이 접근은 기존 성가나 민중가요의 문법을 동시에 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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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김민기'나 '예인 김민기'로, 혹은 조금 더 현대적으로 '아티스트 김민기'라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지만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것에 불만이다. 다큐에서도 천재라는 말이 몇 번 나오던데 천재 김민기라 부르면 그가 했던 말과 활동이 모두 선천적인 재능에서 비롯한 것만 같다. 그렇게 호명하는 순간 분명하게 모든 고비와 순간마다 그가 했을 고뇌와 노력을 가린다. 비슷한 말이지만 예인이나 아티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예술 분야에 가두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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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운동가는 부르는 즉시 코끝이 찡했다. 모질고 사납게 불러야 했다. 그 노래의 목적은 선동이었다. 투쟁을 하다가 혹여 잡혀 들어가더라도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는 동지적 연대의 마음이 알알이 담긴 노래들이었다. 김민기의 노래는 투쟁의 현장에서 많이 불렸으나 대중을 선동하지 않았다. 그 시절 사납게 몰아치던 투쟁가와는 많이 달랐다. 선동하지 않되,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내적 힘이 김민기의 노래에 있었다. 말하자면 나직하게 읊조리는 시였고, 그래서 문학이자 철학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금관의 예수, 봉우리, 작은 연못, 친구, 그 사이, 아름다운 사람, 철망 앞에서, 기지촌과 같은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면서 느꼈다. 대략 25년 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볼 때가 떠올랐다. 곧 내가 너무 일상을 무심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생각만 하고 글을 쓰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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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록의 욕구는 자기 성찰의 욕구를 종종 넘어선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가 천재나 예인으로 불리는 것에 나도 한마디만 보태고 싶어졌다. 꼭 한마디로 말해야 한다면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인간의 고유함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그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고, 노래를 부르게 했고, 연출을 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앞것'이 아닌 '뒷것'이라는 말은 그 생각을 함축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특별한 방식이 따로 없다. 가장 김민기 다운 모습으로 휴머니즘을 실천한 '김민기 선생님', 부디 건강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