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과 폐쇄가 하나의 플랫폼에서 이뤄지도록 설계한 그 친구의 상상력
페이스북은 사용자마다 다른 타임라인(개인화 페이지)을 갖는다. 그 타임라인에는 어떤 글들이 뜨는가? 타임라인에는 내 친구의 글, 내가 '좋아요'를 눌렀거나, '댓글'을 남겼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람들의 글을 노출한다. 나와 교류가 활발한 사람들의 글이 먼저 보인다.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은 사용자마다 보는 화면이 다르다.
상단에 있는 '알림' 기능은 접근 기회를 높이는 용도로 쓰인다. 일견 페이스북은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고, 어떤 가능성도 열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완전 개방형 네트워크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플랫폼은 사실 '관심 사항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반폐쇄형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여기에 페이스북의 성공 요인이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긴 페이스북의 태동 자체가 남녀 간의 연애 네트워크였음을 상기한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실세계의 협력과 갈등, 음모와 배신, 개방과 폐쇄를 잘 조합해 놓은 SNS는 이렇게 작동한다. 페이스북만큼 사용자의 심리를 잘 활용하는 플랫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최근에는 젊은 취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페이스북 작동 알고리즘은 때로 착시 현상을 부르기도 한다. 나와 내가 관계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선택인지하거나 확증편향할 가능성을 높인다. 예컨대 교사들에게는 거의 교사가 올린 글만 보인다. 그 이유는 자신이 페이스북을 교육적 관심사를 나누는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친구가 대부분 교사들이거나 나누는 이야기가 교육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사들의 특성, 교직을 직업으로 사고하기보다 일종의 소명, 즉 '삶 자체가 교육'인 이유도 있겠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페이스북을 '교육적 공론의 장' 쯤으로 인식한다. 물론 교육적 공론의 장이라는 측면은 페이스북의 극히 일부분이며, 역시 이런 점들 때문에 젊은 교사들은 보다 빠르고 간결한 플랫폼을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페이스북의 광고 정책이 있다. 어떻게 내가 관심 갖는 광고들이 노출될까 궁금하겠지만 이미 사용자가 페이스북에 가입할 때 나의 인터넷 사용 로그, 쿠키 등을 수집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온라인에서 북쇼핑을 주로 하는 사람과 다른 종류의 상품 검색을 많이 하는 사람은 노출되는 광고가 다르다. 사용자의 취향을 지속적으로 추적하여 자연스럽게 구매로 유도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빅데이터의 힘 어쩌고라고 치장하는데, 그냥 데이터 고도화 정도다.
페이스북에서는 '제한된 스타'가 만들어진다. 친구 수를 5,000 명으로 한정하면서 그 안에서는 꽤 영향력을 갖는 '소영주'가 탄생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소영주 중심으로 링크가 활발하게 작동하는 사이, (기술적으로는) 특정 페이지에 접속하는 횟수가 많은 곳에 배치되는 광고 전략이 있다.
그러니 스타급 유저들은 팬들을 모으고, 팬들은 그만큼 더 광고에 노출되는 것이다. 종종 (요즘은 매우 자주!) 포스팅을 가장하여 타임라인에 바로 광고가 뜬다. 처음엔 당황하지만, '공짜로 쓰는데 이 정도쯤이야'하는 특유의 심리가 발동한다. 그 교환적 작동 원리가 페이스북에 엄청난 수익을 안긴다.
블로그라면 바로 파워 블로거가 탄생하여 자기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거나, 여론화에 영향을 미친다. 링크와 노드 측면에서 블로그는 일대다 방식, 페이스북은 다대다 방식이다. 이 때문에 특별한 영웅을 만들어 내지 않고도 사용자들의 연결과 접속이 늘어나면 이 플랫폼의 창립자 저커버그는 수익을 창출한다.
이렇게 보면 왜 친구 수를 5,000명으로 제한하는지 답이 나온다. 친구 수를 5,000명으로 제한하는 것은 바로 사용자가 온라인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다. 왜 5,000 명일까? 현재로는 그 정도의 수치가 스타급 유저에게는 어느 정도 만족을 주면서 권력화는 막는 임계점 정도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갖는 또 하나의 반폐쇄적 네트워크 방식은 사용자에 의한 친구 관리다. 새로운 친구를 맺든, 기존의 친구를 끊든, 차단하든 오로지 사용자가 판단한다. 세속의 말로 '물관리'가 가능하다. 이것의 좋은 점은 생각이 다른 친구들과 불필요한 정신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나쁜 점은 위에서 언급한 한 측면의 현상을 과잉 일반화하여 생각의 폭을 좁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교육을 주 관심사로 하여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더 넓은 세계를 발견하고 본인의 관심사가 전체에서는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황스러움 같은 것이다. 개방돼 있되, 폐쇄적인 작동 원리 덕분이다. 이것을 나는 반폐쇄형 플랫폼이라 불렀다.
많은 사람들에게 페이스북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하루에도 수십 번 '좋아요'로 공감을 표하거나, 새 친구를 만들거나, 뜻이 다른 친구와 절교하거나, 혹은 누군가로부터 '페절' 혹은 '차단' 당한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온라인에서 형성된 '기분'은 현실로 이어진다.
SNS가 생활의 일부인 것은 맞지만 생활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 이것 하나는 팩트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에게 페이스북 사용 수칙을 묻는다면 더도 덜도 아닌 '자기 절제와 균형'이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글을 쓴다. 대체로 긴 글을 쓴다. AI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의도적으로 섞고 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 페이스북 유저들이 쓴 좋은 글을 읽는다. 광고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이 플랫폼이 나에게 주는 편익은 잘 활용하는 편이다. 누군가의 글에 공감하며, 댓글을 주고받고, 또 누군가와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종종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런 개방과 폐쇄, 때로 극심한 나르시시즘과 누군가와 주고받는 메시지가 하나의 플랫폼에서 이뤄지도록 설계한 그 친구의 상상력이다. 친구, 돈 많이 벌었잖아. 좀 나눠 쓰자.
*커버이미지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2/05/is-facebook-making-us-lonely/308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