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앱과 기록
빌리고 싶은 책이 있어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렀다.
검색을 하자 책의 정보가 나왔다.
망설임 없이, 모니터에 대고 사진을 찍었다.
책의 표지와 제목, 저자와 출판사, 청구기호까지 한 큐에 '내가 소장한 정보'가 됐다.
그러고 도서관을 찾았고, 책을 찾자마자 사진은 삭제했다.
자잘한 정보를 적어두려 종이로 된 메모장을 꺼내는 일보다, 휴대폰을 들이대는 게 더 편해진 삶. 이런 방식이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놀랄 만치 이에 익숙하다. 어쩐지 한참 전에 사둔 예쁜 포스트잇이 줄지를 않더랬다. 휴대폰이 아닌, 굳이 여기에 적어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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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착하다'의 의미 중 하나는 '기록하다'일 것이다. 눈 앞의 장면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생생한 기록이 된다. 그런데 이제는 '포착하다'는 곧 '기록하다'를 의미한다. 반대로 '기록하다'는 우리의 생활습관에 비춰 '포착'하는 행위와 다름없게 되었다. 이전에 '기록하다'엔 연필로 끄적거림, 키보드로 두드리기 등도 포함되었을 테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내 삶의 많은 부분들에서 기록 행위의 대부분은 사진 찍기로 대체되어 있다.
단연 첫번째는 간편함 때문이다. 메모장과 연필을 꺼내는 그 사소한 행동이 번거롭게 되어버렸다. 직접 메모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귀찮다. 때에 따라선 메모 내용에 맞는 적절한 크기, 재질의 용지를 찾아야 하기도 한다. 내 필체가 맘에 안 들 수도 있고, 적다 보니 공간이 모자라기도 한다. 무엇보다 몇 글자 안 되는 걸 '쓰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거다. 예전엔 그래도 스마트폰 메모장에 입력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카메라 앱에 주도권을 뺏겼다. 항시 내 옆에 놓여 있는 폰을 들고, 켜고, 앱을 누르고, 찰칵- 찍으면 그만이다. 어쩔 땐 급하게 다시 그 메모(사진)를 봐야 하는데 앨범 저 멀리 어딘가에 있어 찾아야 하거나, 심지어 폰을 껴는 그마저도 번거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서술하고 보니, 나 좀 심각하다. 귀찮은 건 건너뛰고 빨리빨리.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끝없는 욕심이 바람직한 건가 싶기도 하다.
생각을 넓혀보면 꼭 간편함과 신속함 때문만은 아니다. 폰으로 사진을 찍어두면 공유가 가능하고 원하는 용도에 따라 폰 안에 정리해두기도 편하다. 이 기기 하나에 필요한 정보들을 오롯이 모아둔다는 장점도 있다. 아날로그 메모의 장점들은 잃었지만, 새롭게 창출된 가치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생활 속에서 그것들을 편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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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의 하루 중 이런저런 조각들이 대부분 스크린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곱씹어볼 만하다. 이 순간 미래를 다룬 SF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 영화들은 미래 세계의 거대함을 강조하고 장황한 담론을 펼치지만, 내 삶이 달라진 지점들은 사실 매우 사소한 데서부터 일어나고 경험되고 있다.